<예술에 주술을 걸다>의 저자 이지현예술작품 자신의 직관 믿고 즐겨야… 어린이 버전 출간예정

통섭의 영향일까, 각각 접근하기도 어려운 음악과 그림이 저자에 의해 조합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각자의 길'을 택했던 이들 장르는 최근 1∼2년 사이 출판되는 책에서 '동반의 길'을 선택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들을 때면, 푸른 숲과 강물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풍경을 떠올리기 마련이듯, 음악과 이미지(그림)는 원래부터 잘 어울리는 동반자였는지도 모른다. 칸딘스키는 잘 알려졌다시피 일찍이 시각과 청각의 연결고리를 찾아 작품에 투영하기도 했다.

최근 출간된 <예술에 주술을 걸다>는 음악과 미술의 조합을 차분하면서도 흥미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는 책이다. 저자인 이지현 씨(40)는 현재 서울시청 홍보담당관실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여느 전문가 못지않은 내공을 지녔다.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운 덕에 대학 시절 음대생 친구들의 피아노 반주를 해주기도 했던 이색적인 경험을 가졌다.

게다가 음악교육학으로 석사를, 나이가 들면서 관심을 두기 시작한 미술은 아예 학예사 시험까지 마스터했다. 음악과 미술 중 한 가지 장르에서 꾸준히 전문적인 식견을 쌓아온 저자들과 달리 음악과 미술을, 어느 정도의 전문성과 균형 잡힌 시각으로 해석해내지 않을까. 책장 속엔 아티스트 혹은 평론가가 아닌, 대한민국에서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직장인의 애환까지 녹아있어 색다른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음악과 그림의 무한 조합 이야기예요. 음악과 미술을 이렇게 보고 이렇게 들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예술작품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똑같은 그림을 보고도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 있죠. 열려 있다는 것, 물음표를 들 수 있는 게 예술인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이 제목으로 얼마든지 이 책과는 또 다른 글을 쓸 수 있죠."

막연하게 음악과 미술이 소통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좀처럼 마음먹기 어렵던 차에 개인적인 시련이 한 권의 책을 3개월 만에 완성케 하는 원동력이 됐다. 물론 그동안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아이디어를 자투리 글로 틈틈이 남겨온 덕이기도 하다.

'최소한 혹은 최대한'이란 소주제는 최소한의 음악은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최소한의 미술엔 자코메티의 조각을 끄적인 노트에서 출발했고, '살아가는 방식'이란 소주제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이런 글을 모아 그녀는 감성적인 글과 전문적인 글, 중간 즈음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제목을 직접 정했다. 예술이 가진 치유의 능력, 사람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주술성에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으면 편안해지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잖아요. 예술의 주술성에 사람이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예술 작품을 보면서 나 스스로 최면을 걸기도 하고 예술이 걸어오기도 하는 거죠."

몇 달 전, 덕수궁 미술관에서 예술의 주술성과 치유능력을 새삼 경험했다고 한다. 커다란 버드나무 아래 소년이 자그마하게 그려진 '봄을 기다리는 소년'이란 그림(박노수 작)을 보던 순간이었다. "강물도 흐르고 살살 바람도 불어오는 것 같았어요. 저 공간으로 쏙 들어가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덕수궁 미술관에서 나왔어요. 금요일 저녁이라 한가한 덕수궁에서 가야금 소리까지 은은하게 들리는데, 치유를 받는 느낌이었어요. 유토피아가 따로 없다 싶었죠."

예술에서 거창한 배움을 얻으려고 하면 예술과는 멀어지고 만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이 그 안에 자리를 잡고 있을 때, 그 존재는 친숙하고 특별해지기 마련이니까. 숙제로 혹은, 교양을 쌓는다는 심정으로 미술관을 찾는다면 즐길 틈도 없이 관람은 감상이 아닌, 짐이 되어 버린다. 이지현 씨가 전하고자 하는 말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교육이나 체험이 아니라 '자신의 직관을 믿고 즐기라'는 것.

"그림 보는 거나 옷 구경하는 거나 다르지 않다고 봐요. 봐서 좋으면 되는 거고, 느낌이 안 오면 접고 다른 걸 보면 되죠. 부담 없이 마음을 여는 게 중요해요. 누구나 직관을 통해 내 시각을 갖게 되거든요. 미술사조를 통해 그림을 이해하려 한다거나, 남의 설명을 통해 전달받으면 감동을 할 수가 없어요."

어릴 적부터 친숙했던 음악과 달리, 학창시절 두 시간의 미술시간이 불편하고 싫었던 그녀가 미술을 좋아하게 된 건, 색채 때문이었다. 선명한 색채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색깔이 예쁜 그림을 먼저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파울 클레가 처음이었고 호안 미로가 그다음이었다. 단순하고 동화적이면서도 유희적인 작품에서 시작된 관심은 무관심했던 그림에서 조차 매력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첫 책을 펴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두 번째 출간도 계획 중이다. <예술에 주술을 걸다>의 어린이 버전이다. 어른들을 위한 미술책을 쉽게 풀어쓴 책을 읽던 조카의 모습, 학교 숙제 때문에 미술관 앞에서 인증 샷을 찍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탓이다.

"아이들이 전시를 볼 때 어른의 시각에서 설명해주는 건 좀 아니다 싶어요. 그림의 미술사적 의미 같은 건 아이들한테 아무 의미도 없거든요. 선입견 없는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어요. 가령,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 하늘은 역동적이지만 그 아래는 정적이잖아요. 아이들의 해석이 다양할 수 있거든요. 질문을 유도하면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책을 쓰고 싶어요."

예술 작품을 대하는 데 있어 자기만의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녀는 예술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이들에게 "예술 작품 앞에서 주눅들지 말라"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