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임채욱수평선 위 소나무 빽빽이 모인 풍경, 개발막기 위해 <월천리 솔섬> 출간

삼고초려(三顧草廬)를 넘어 사고초려(四顧草廬)였다. ''은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우연히 본 사진에 반해 눈길을 뚫고 찾아온 참이었지만 의 장관인, 데칼코마니한 것처럼 물에 비치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세 번 바람 맞고 네 번째 찾아갔을 때, 그것도 이제 그만 돌아가려던 해질녘에야 반영이 나타나기 시작하더군요. 하지만 빛이 없으니 촬영할 수가 없었어요. 카메라 노출한 채 기다리는 수밖에는요. 그렇게 눈으로 볼 수 없는 장면을 찍은 거죠."

사진작가 임채욱은 그래서, 을 찍으려면 "서너 번은 가보라"고 충고한다. 그제야 비로소 어떻게 찍을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찾아간 횟수는 지난 2년6개월 동안 스무 차례가 넘는다. 을 둘러싼 무수한 정경을 카메라와 마음에 담았고, 사진과 글을 엮어 책 <월천리 >을 냈다. 지난 21일까지는 동명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강원도 삼척시 월천리에 위치한 은 망망한 수평선 위에 소나무가 빽빽이 모인 특유의 모양부터 아름답지만, 그 주변의 시간과 공간이 더욱 경이롭다. 임채욱 작가가 경험한 바다. 을 오래 응시한 그의 작품에는 별이 지나간 자리가 그려졌는가 하면, 시시각각 변한 하늘의 색들이 겹쳐져 팔레트에서 만들어낼 수 없는 색이 칠해졌다.

"예를 들면 녹색 하늘은 밤하늘의 검푸른 빛과 가로등의 노란 빛이 합쳐져 나타난 거예요. 밤이기 때문에 당시에도 눈으로는 볼 수 없었죠. 카메라가 실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을 기록한 겁니다."

자연의 엄연한 이치도 담겼다. 눈 오는 날 반영을 볼 수 없었던 작가의 시행착오도 우연이 아니다.

"공기에 조금이라도 요동이 있으면 물이 흔들려 반영이 사라집니다. 지켜보니 하루에 두 번 물이 고요해지더라고요. 해가 지거나 뜬 직후에요. 이때는 바다와 육지 간의 온도차가 없어져 바람이 멈추는 거죠."

그러므로 작품들이 한결 같이 명상적인 인상인 것도 연출이 아니다. 세상에 희귀한 자연스런 평온인 것이다. 보는 이를 끌어들여 덩달아 정화시키는 풍경.

"저 스스로도 사업을 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자연을 통해 치유해 왔어요. 그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솔섬
이런 풍경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요즘 임채욱 작가의 가장 큰 고민이다. 삼척시에서 주변에 LNG 생산기지를 짓기로 한 것이다. 오는 2015년까지 이 있는 호산해수욕장이 지각변동을 겪는다.

을 사랑하는 사진작가들이 청원하고 또 청원해 올해 초 은 공사부지로부터 제외되었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은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멀찍이서 보는 곳입니다. 주변 하늘과 바다가 망쳐지면, 을 답게 하는 여백이 사라지는 것이죠.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을 둘러싸고 LNG 저장탱크가 잔뜩 들어서게 됩니다."

임채욱 작가는 자연을 대하는 행정적 발상의 수준이 안타깝다. 곧 월천리 이장을 통해 삼척시장을 만나볼 생각도 하고 있다. 이번 책 출간에도 을 지키려는 간절한 의지가 한몫 했다. 더 많은 이들이 에 감동받고, 을 아까워하게 되면 개발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다.

"월천리 이장님 댁에는 직접 구한 수석이 있습니다. 이 근처가 동해안에서 유일한 몽돌해변이기 때문이에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기도 해요. 장마철과 태풍이 오는 시기에 물들이 오가고 섞입니다. 덕분에 봄에는 황어가, 여름에는 연어가 회귀합니다. 낚시꾼들이 미끼도 없이 훌치기로 낚아도 걸려들 만큼 떼를 지어 오죠. 이토록 특별한 곳입니다. 공사가 진행되면 이 물고기들이 알을 낳을 수 있을까요?"

작품마다 애틋한 마음이 빼곡하다.

"대학 때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졸업 후 오랫동안 붓을 놓았어요. 그러다 카메라를 들었고 2008년에야 첫 개인전을 했죠. 첫 작품이 을 찍은 것이었어요. 보는 이들도 공감했는지, 다섯 개 에디션이 모두 팔렸어요. 은 제 작업의 고향인 셈이죠. 을 살리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