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대 주창윤 교수<대한민국 컬처코드>출간… 10년여 우리문화 5가지 코드로 묶어

"당대 문화의 흐름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주창윤 교수가 7~8년 전부터 연구해온 한국 현대문화사에 대한 일부분을 <대한민국 컬처코드>(21세기북스)로 출간했다. 그는 책에 '유목민 코드' '참여 코드' '몸 코드' '섹슈얼리티 코드' '역사적 상상력 코드' 등 10년 여 우리 문화를 다섯 가지 코드로 묶었다.

게릴라 전사들과 놀이족의 등장

주창윤 교수가 <대한민국 컬처코드>를 쓴 이유는 2002년 이후 한국에도 실천주의의 실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1960년대 말에 청년문화가 나오면서 히피족 등의 흐름이 있었다.

히피는 특히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특정 계층을 위주로 한 일부의 문화였다. 세대를 넘어서는 대중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2002년 우리나라가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는 게 주 교수의 주장이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실천적인 대중이 등장했어요. 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시대정신이 '게릴라 정신'과 '놀이 정신'이었죠. 저는 그 당시가 시대정신을 표현한 중요한 시점이라고 봐요."

주 교수가 말하는 게릴라 정신은 소규모의 공동체를 갖고 있는 단체를 뜻한다. 어떤 리더에 의해서 끌려가는 가는 것도 아니고, 특정 리더도 없으며, 주변인이면서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정신이다. 이런 '게릴라 문화'는 인터넷에서 공동체들이 형성되면서 확장됐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놀이족'은 '놀이정신'으로 형성된 집단으로,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세상을 놀이판을 보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즐기면서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집단으로 형성됐으며, 오늘날의 대중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정신과 집단이 참여문화를 만들어 문화를 이끌고 있다는 게 주 교수의 이론이다.

그는 책에 '참여세대는 이전 세대와 연결되면서도 다른 특징들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당대 문화가 일정한 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건이나 계기가 발생한 이후 어느 정도 유예기간을 거친다.

사회구조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서 곧바로 문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여세대 담론은 2002년 월드컵, 노무현 대통령 당선, 효선 미선 양을 위한 촛불집회가 발생한 이후로 곧바로 등장했다고 적었다.

주 교수는 이런 대중의 기운을 설명하고자 2002년 월드컵과 대선을 예로 들었다. 월드컵이라는 큰 행사가 대중의 에너지를 흡수한 이후에 소멸되지 않고 떠 있다가 분출해야 하는 다른 공간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해 대중의 형성된 에너지를 자신의 비전과 이념으로 끌고가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이런 실천주의 대중, 즉 게릴라 정신과 놀이정신으로 결집된 집단들의 향연이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로 다시 한 번 대두됐다. 이는 '의례를 통한 저항'으로 이어졌다. 한국 사회에 문화를 이끄는 계층이 형성된 셈이다.

"2009년 이후에 이런 흐름(참여세대)이 약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어요. 2010년 천안함 사건과 더불어 '침묵의 나선'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죠. 침묵했을 뿐 안에는 내파가 커져갔던 것 같아요. 이번 지방 선거를 통해 8년 전 시대정신이 살아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죠. 실천주의 대중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어요."

'OO녀'로 함축된 대중문화

주 교수가 <대한민국 컬처코드>를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제자들과의 수업 때문이었다. 지난 10여 년 간 학생들과 당대 문화에 대해 고찰했던 자료들이 책을 집필할 수 있는 모태가 됐다. 학생들에게 당대 문화의 흐름을 집어주고 싶었던 바람이 책으로 펼쳐 나온 셈이다.

주 교수는 학생들의 소중한 자료로 두 달여 동안 하루에 15시간 씩 책을 써내려 갔다. 그는 항상 "문화의 흐름을 알아야만 한다"고 학생들에게 상기시키며 그 중요성을 내비치곤 했다.

주 교수는 학과 수업에서 '올해의 이슈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했고 그 결과 문화, 사회적으로 'OO녀'라는 20대 여성들의 호칭이 매년 생겨났음을 간파했다. 지난 2005년부터 일명 '개똥녀'를 시작으로, 2006년 '된장녀' '강사녀', 2007년 '군삼녀', 2008년 '신상녀', 2009년 '루저녀'라는 말들이 등장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화장실에서 개념 없는 말로 세간을 놀라게 한 여대생 '패륜녀'까지. 그는 여성을 비하하는 호칭이 생겨나자 "이런 현상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꾸준히 이어갈 것"이라고 예견했다.

주 교수는 이들 'OO녀'들을 비교 분석한 결과, 이들은 주로 20대 여학생들이며 인터넷으로 급속히 퍼져 오프라인에 의해 신상이 공개되고, 이어 사이버 폭력 등이 가해진다고 했다. 또한 이런 패턴이 이어진 다음에는 조용히 사라지고, 또 다른 'OO녀'가 나오는 것이다.

"20대 여성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요. 요새 애들 버릇없다는 말이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20대 여성들이 부상한다고 봅니다. 직장에서도 20대 여성들이 급부상하고 있으며, 국가고시 등에서도 여성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지고 있어요. 이런 것은 다분히 사회적 문제가 아닌 젠더(Gender)의 문제로 보고 있어요."

주 교수가 말하는 '젠더 문제'란 젠더 관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자들도 문제를 안고 있다. 1980년대는 '아줌마'들이 공격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당시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지면서 무조건 반대하는 엄마, 즉 아줌마에 대한 반감이 공격적인 형태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아줌마 세대들은 이런 공격들을 극복하고 사회 속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탈바꿈했다. 또한 긍정적인 단어인 '줌마렐라' 등으로 승격돼 TV 드라마 상에서도 아름다운 여인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OO녀'라고 불리는 20대 여성들은 아직 그들을 공격하는 대상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본다. 주 교수는 20대 여성들에 대한 강력한 공격 계층은 바로 20대 남성들이라고 추론한다. 청소년들이 반감을 갖던 아줌마 세대를 공격했듯, 20대 남성들이 사회적으로 급부상하는 20대 여성들에게 반감을 보이는 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는 해석이다.

"이런 현상들은 문화 속에서 하나의 단면일 뿐이에요. 이런 흐름을 통해 우리의 당대 문화를 읽어나갈 수 있는 눈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다양한 문화의 모색

주 교수는 <대한민국 컬처코드>에 담아내지 못한 우리 사회의 '다문화 현상'과 '모바일 컬처'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2006년 미국 풋볼 선수인 하인스 워드가 등장했을 때 그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존재로 부각됐다. 그를 통해 다문화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0여 년 전부터 농촌을 시작으로 다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어요. 다문화 가정이 농촌 총각의 10%라고 하니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다문화 가정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또한 '모바일 컬처'를 주요 화두로 내세웠다. 인터넷만큼이나 모바일의 사용이 대두되면서 개인의 생활에도 지대한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모바일 컬처=아이 컬처(I Culture)'라는 공식이 성립할 정도로 '나'라는 주체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문화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싸이월드, 트위터 등에서 핵심은 바로 '나'라는 존재죠. '나'라는 주체가 중심이긴 하지만 ''나'에 대해 불안해하는 요소들로 인해서 스스로 인맥을 맺는 것이라고 봐요. 그에 대한 불안함을 분출하기 위해서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확장될 수밖에 없어요. 결국 소집단, 커뮤니티로 돌아가게 되는 겁니다."

주 교수는 앞으로 변해갈 문화 속에서 두 가지 측면을 주의 깊게 살피라고 말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건 실천주의 주체가 앞으로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중심에 서게 되면서 대중의 의식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참여세대의 게릴라 정신과 놀이정신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그는 "5월에 이어 6월과 7월도 계속 관찰 중"이라고 짧게 말했다.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을 지방선거의 결과로 표출했던 대중이 올 하반기까지 정치적,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다시 2002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월드컵으로 인해 젊은 사람들의 에너지가 뜰 것이고, 이것이 여론과 결합하게 되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다만 2002년에 노무현 정권이 그랬듯 어떤 정치세력이 비전을 제시해 이들을 끌고 갈 수 있다면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을 거예요. 그 과정이 참으로 궁금하네요. 또 하나의 문화현상이 나올 테니까요."

주 교수는 또 하나의 욕심이 있다. 한국 문화사 100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책을 집필하는 것이다. 그는 이미 '한국 현대문화사의 사회사'라는 책을 어느 정도 정리해 두었다. 이 책에는 192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현대문화사의 역사를 담아낼 계획이다. 10년 후에는 한국 현대문화의 100년사를 짚어볼 예정이다. 내년에는 4~5권이 먼저 출시된다.

"문화 역사서를 정리하는 게 저의 업보인 것 같아요. 더불어 시인으로서 12년 만에 시를 써보고 싶네요. 그간 눈문과 책을 쓰면서 감성적으로 메말라 시를 쓰기가 힘들더군요. 마음의 안정을 찾는 대로 시 쓰는 작업에 몰두해 보려고 합니다."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