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희 사진작가<아무도 보지 못했다>展 열고 고비사막의 다양한 모습 선보여

주홍빛이 감도는 언덕은 사구(砂丘)이기보다 차라리 선이 고운 여체를 닮았다. 작가가 그것을 의도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또한 그곳은 어두컴컴한 사막도 아니다. 회색의 사막이 숨기고 있던 수백 가지의 색 중에서, 그는 살굿빛과 주홍빛 사이 어디쯤에서 이 오묘한 색깔을 뽑아냈다.

그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던, 고갱이 그린 타히티 여인들의 젖꼭지 색깔에 최대한 다가가고 싶었다고 했다. 사막의 색깔, 의문이 나는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사막의 관능미를 포착한 듯한 사진 한구석엔 낙관인 양 위성사진이 자리 잡고 있다. 'Gobi Desert, Mongolia, N 43°, E 102°', 여기에 사구의 고도(1525m, 1527m, 1459m 등)까지 정확히 적혀 있다. 그는 진정 '구글어스 시대의 사진찍기'(김준기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까?

줄곧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분류되던 그는, 현재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展>을 열고 있는 김홍희 작가(51)다. 이번 전시는 다큐멘터리보다는 순수예술(Fine Art)에 가깝다. 다소 철학적이면서도 나름의 유머도 숨어 있다.

"내가 어디서 찍었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구라는 것이 계속 변합니다. 내가 언제 어디서 찍었다고 얘기해도 다음에 가면 그곳은 이미 없거든요. GPS를 달면 재밌겠다 싶었어요. 2006년에 사구에 앉아 있는데, 바람이 부니 모래 한알 한알이 벌레가 기듯이 굴러가더군요. 길이가 100km가 넘는 사구지만 그 밀가루 같은 모래가 구르면서 움직이는 거죠."

맑은 하늘과 여러 개의 사구만이 뾰족하게 솟아있는 고요한 장소이지만 모래 한 알로도 거대한 사구가 움직이는 가장 역동적인 장소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게다가 낙관처럼 붙여놓은 위성사진을 본 100명 중 99명은 '이게 무엇이냐'며 물어온다. 김홍희 작가에게 GPS의 흔적은 작품에 디자인적 묘미를 살려놓는 장치인 동시에 관람객과의 소통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한 셈이다.

낙타도 오르지 못하는 모래 언덕, 발을 디딜 때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그곳의 높이는 고작 동네 뒷동산 정도다. 길이 다져지지 않은, 아니 다져질 수 없는 까닭에 30분이면 충분히 당도할 수 있는 거리를 그는 한 시간 반 이상 낑낑대며 올라가야 했다. 한번 넘어져 구르기라도 하면 다시 20~30분을 올라야 하는 탓에 신경은 곤두설 수밖에 없다. 겨우 정상에 오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온몸의 진이 빠져 있었다.

극도로 피로해진 상태,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보이는 아득한 정신으로 셔터를 누른다. 이때 찍는 사진은 의도이기보다는 거의 본능적으로 촬영된 사진들이다. 20여 년간, 카메라와 함께 치열하게 살아온 저력이 가장 맹렬하게 발휘되는 때이기도 하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 미러가 올라옵니다. 사진을 찍는 순간만큼은 사진가가 정작 피사체를 볼 수 없는 거죠. 다시 말해서 실제로 보지 못한 모습이 찍히는 겁니다. 하지만 관람객은 사진가가 보았다고 믿습니다. 거짓말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셈이죠."

지금까지 펴낸 책만 30여 권. 사진 못지않게 글 잘 쓰는 작가로도 알려진 그는 말하는데도 막힘이 없었다. 자신을 학승보다는 '선승'에 가깝다고 표현하듯, 그가 거침없이 던지는 대답은 선문답처럼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게 한다. 그는 끝없는 배움보다는 깨달음으로 세상의 이치를 터득해 가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라는 전시 제목에서도 그의 '선승' 같은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김홍희 작가가 내게 물었다. '사물을 무엇으로 보느냐'고. '눈'이라고 대답했지만 아차 싶었다.

"눈은 매개체일 뿐이죠. 사람이 사물을 볼 땐 관념으로 보지요. 그렇다면 관념은 어디에서 올까요?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도 관념이 애초에 자신에게 비롯됐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습득된' 생각이 내가 세상을 보는 '창'을 만드는 겁니다. 엄밀히 말해 내가 보는 게 아니란 말이죠. 나라고 하는 인간은 깡통입니다. 사유의 틀이 빠져나갔을 때 김홍희는 과연 볼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말은 주황빛으로 물든 자신의 고비 사막 사진에 대해 "나는 저렇게 보았노라"라는 대답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다. 그가 사진 강의를 할 때면 늘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수강생들에게 던지는 것과 같은 선상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패러다임을 깨뜨리는 것, 그는 그것을 '관념의 샤워'라고 표현했다.

김홍희 작가가 가진 사유의 틀은 어느 나라,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한 호기심에 있지 않다. 그가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찾고자 하는 것은, 다른 환경 속의 인간들을 '살게끔 하는 원동력이 무엇일까'에 대한 답이다. 여느 사진작가들이 하나의 피사체에 몰두하는 것과 달리 피사체를 유랑하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 군상의 다양성이 아니라 내재된 힘의 보편성, 그 안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내면에서 진동하는 간절함, 진정성이다.

1988년 유학생 신분으로 일본 도쿄에서 첫 전시를 한 이래 1년에 한 번꼴로 개인전을 하면서도 NGO 촬영 봉사를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늘 부족한 NGO들을 돕기 위해 그가 내놓은 것은 시간과 카메라였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건강한 NGO를 찾아, 건강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홍보할 사진을 촬영하는 일을 한다.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 사이에서, 그는 다시금 생의 의지를 발견한다. 김홍희 작가가 삶에서 간절함을 확인하는 또 하나의 순간을 위해, 전시 마지막 날인 7월 13일 새벽, 그는 또다시 캄보디아로 떠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