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최종규사진 속 인물, 사진가, 독자의 인생 읽는 <사진책과 함께 살기> 펴내

디지털카메라 보유율이 90%대에 이를 정도로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이지만, 정작 출판계에서 사진책은 안 팔리는 장르 중 하나다.

한쪽의 반응은 너무 뜨겁고, 또 다른 한쪽은 너무나 차가워 도무지 연결하기 어려운 '사진 찍기'와 '사진 읽기'의 뚜렷한 경계.

이 둘의 심각한 온도 차를 줄이며, 안 팔리는 사진책과 함께 살아가는 이가 있다. 최근 <사진책과 함께 살기>를 펴낸 최종규(36)씨다.

그에게 사진책과 함께 사는 일은 이 땅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살다간 삶들과 마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진 속에 담긴 이들, 그들을 담아낸 사진가, 그리고 그들을 보는 독자, 이들 삼자의 삶이 마주하는 지점이 바로 사진책을 읽는 일이다. 더불어 이 책을 쓴 최종규씨의 소박한 삶이 거짓 없이 읽는 이와 대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강원도 산간지방 화전민들의 전통가옥, 굴피집(참나무의 두꺼운 껍질로 지붕을 이어 만든 집)은 안승일 작가의 시선을 통해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조촐한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인천의 골목길, 신흥동3가
그런가 하면 최민식 작가가 6·25전쟁 직후나 민주화 투쟁 속에서 촬영한 참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생명력은 지금도 보는 이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세상에 이름을 날리지는 못해도, 낮은 곳에서 묵묵하게 혹은 치열하게 살다간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사진책과 함께 살기>. 책장을 넘길수록 가슴이 따스해지는 이유일 거다.

"그림이나 글도 마찬가지지만 사진 갈래 또한 훌륭한 사진책이나 작품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배우면서 내 사진을 북돋우는 일이 드물어요. 아름다운 사진이 찍고 싶어, 제 스스로 사진책을 찾아 읽으며 사진을 익혀왔습니다. 그 책들을 하나하나 들추어 '사진하는 길'을 들려주려는 것이지요."

기획된 것이 아니라, 이십여 년 동안 저자가 이어온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가 묶인 책은 그의 '사진책 도서관 : 함께 살기'를 근간으로 한다. 서점가나 도서관에서도 보기 어려운 사진책이 그가 꾸린 도서관에는 즐비하다. 지난 19년간 전국 헌책방 순례를 하며 그러모은 책들 2만여 권이다. 좋은 책 혼자 읽기 아까워 2007년 고향인 인천에 도서관을 열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사랑한다는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으젠느 앗제,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책 하나가 완역 출판된 적이 없어요. 게다가 나라밖에서 나온 판으로나마 갖춘 도서관 또한 없습니다."

사진책 말고도 문학책, 인문책이 즐비한 그의 도서관이 '사진책 도서관'으로 특화된 이유다. 반대로 사진책 외에도 다른 장르의 책이 많은 이유는 책을 두루두루 읽어야 자기만의 사진 찍기의 방식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인천의 골목길, 학익2동
책 속에 묻혀 지내지만 그 역시 사진을 찍고 전시를 여는 사진작가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 한편에 자리한 책 쉼터 '나비 날다'에서 현재 '인천골목길 사진 잔치- 골목 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이 열리고 있다. 그가 지금껏 찍어온 인천 골목동네를 보여주는 사진전으로, 이번이 네 번째 전시다.

"인천이든, 서울이든, 골목길마다 아름다운 골목 빛이 있습니다. 골목 빛은 다른 무엇보다도 골목사람들 스스로 일구는 골목 밭과 골목 꽃에서 샘솟아요. 그래서 '골목 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이라는 이름을 붙여, 인천이라는 도시가 뜨내기 광역 항구도시 같은 데가 아니라, 이름과 힘과 돈이 적은 사람들이 아기하면서 아름답고 사랑스레 일구는 조촐하고 멋스러운 삶터임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는 책과 함께 젊은 날을 보냈고,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사진 찍는 일도 그랬고, 우리 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나 우리말 모임에서 시작해 1인 잡지 발행으로 이어진 <우리말과 헌책방>도 그러하다. 그는 <우리말과 헌책방>을 지난 6월 말쯤 9호 '작은 책방이 살리는 책마을'이란 제목으로 펴냈다. 8호부터는 시중 서점에 배본되지 않고 오직 정기구독을 통해서만 볼 수가 있다. 잡지가 옳은 소리를 내기 위해선 대형 서점에 기대지 않고 '조용히' 독자를 늘려가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의 우리말 사랑은 딸 아이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호적에선 어쩔 수 없이 '최'라는 자신의 성을 따랐지만 그가 지어준 딸 아이의 진짜 성은 '사름'이고 이름은 '벼리'다.

"아버지 성도 어머니 성도 안 쓰겠다는 뜻인데, 남녀평등을 말하며 어버이 성을 함께 쓰기도 하지만, 여전히 가부장 권력 틀거리는 그대로인 거죠. 우리는 새로운 성을 지어서 우리 아이한테 빛나고 슬기로운 꿈과 넋을 물려줄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최 사름 벼리'가 아닌 그냥 '사름 벼리'랍니다."

일련의 삶의 방식은 단지 '스스로 참되고 곱게 살고 싶어서 걷는 길', 이라고 그는 말했다. 텔레비전, 세탁기, 냉장고 같은 전기제품을 쓰지 않는 것도 남들 눈치 볼 것 없이 '쓸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냉장고 자리에 책장이 들어서고, 세탁기 살 돈으로 책 한 권 더 사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아내와 딸까지, 그들 세 가족이 글을 써서 버는 돈으로 살기엔 늘 부족한 살림살이. 어렵게 3년 남짓 인천에서 도서관을 꾸려왔지만 쉽지 않은 여정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구청과 시청, 문화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띄운 적도 여러 번이지만 답장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이제 더는 버틸 힘이 없다는 그는 최근 충주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집필에 몰두하면서 '사진책 도서관 : 함께 살기'도 여전히 이웃들과 나눌 거라고 했다.

벌써 10권의 책을 펴낸 그에겐 올해, 내년 줄줄이 출판 계획이 잡혀 있다. 2주 전에는 현재 전시와 같은 제목의 첫 사진책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이 출판됐고 다음 달이면 <푸른 책과 함께 살기>가 나온다. 한글날 무렵엔 <생각하는 영어>가, 내년엔 <사진책과 함께 살기> 2권과 <우리 말 바로쓰기 사전>도 볼 수 있을 듯하다.

"헌책방 이야기 사진책을 곱게 여미어 헌책방 사람들이 흘린 땀방울에 갚음하고 싶은데, 아직은 꿈만 가득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바지런한 그에게 이는 꿈이 아니다. 이미 시동도 걸렸다. 헌책방과 '사귄 지' 20년을 맞는 내후년, '헌책방 책 삶'을 다룬 책 한 권 낼 준비를 한다는 요즘. 그의 손가락에 말린 가느다란 펜은 지금도 신나게 종이 위를 달리는 중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