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소설가 김영하6년 만에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출간13편의 이야기 윤리적 판단의 회색지대 사람들 그려

'도대체 뭘 추천하란 얘기지? 살짝 화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이름만으로도 이미 소름이 돋았을 독자들이 널리고 널렸을 테니까. 말하자면 베레타는 참 좋은 총이에요, 당연한 소릴 지껄이고 그걸 말이라고 해요? 핀잔을 들어야 하는 그런 기분이다.'

김영하의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에 실린 박민규의 추천사다. 거대담론도, 스타작가도, 새로운 문학 트렌드도 보이지 않던 90년대 후반, 이 세 니즈(needs)를 충족시키며 한국문학과 행복하게 만난, 그가 6년 만에 소설집을 냈다.

김영하가 돌아왔다. 원 샷, 원 킬.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토요일 오후 3시, 서울 홍익대 근처 카페. 음료를 주문하고 작가를 기다리며 혼자 공상하는 시간, 새 소설집의 제목을 작가에게 '대입'했다. 지난 몇 달간 몇몇 신문과 방송은 그가 2년간의 해외생활 후 한국에 돌아왔고, 그의 작품 중 하나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으며, 작가가 트위터를 통해 거부의사를 밝혔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는 해외에서 장편 하나를 썼고, 국내에 들어와 다시 장편 하나를 쓰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그의 소설은 꾸준히 번역, 해외에 출간됐고, <빛의 제국> 영문판이 조만간 미국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수첩에 그의 행적을 동그라미를 치며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는 카페로 들어왔고, 에스프레소와 페리에를 시켰다. 때문에 인터뷰는 예상하지 못한 대화로 시작됐다.

"그렇게 섞어 마시면 맛있나요?"

"…… 커피 마시면, 수분이 좀 필요하지 않나요? 섞진 않아요."

무릇 사건, 사고와 그와 관련된 자장 작용, 화학 반응은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집 제목처럼.

한국에 와서 어떻게 지내셨어요?

"일 년 중 11달은 집에서 소설 쓰고, 한 달 정도는 사람을 만나는데, 한국에 와서는 조용히 소설 썼어요."

조용히 작업하기에는 사건이 좀 있었죠. 올 초 교과서 관련해서 트위터 의견 올리고, 인터뷰 요청 많이 받으신 것 같은데요.

"대부분 전화로 인터뷰했고요, 가만히 집에 있다가 당한 일이라서…. 교육문제는 파괴력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제 본업도 아니고 빨리 지나갔으면 했는데, 문제가 잘 해결됐죠. 출판사에서 빼겠다고 했기 때문에. 헌법소원까지 갔으면 시끄러웠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고요."

소설집 묶는 데 6년 걸렸어요.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쓴 소설이 절반 정도 실렸고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작품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까?

"스타일은 모르겠지만, 인생관이 많이 바뀌었어요. 내가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은 걸 써서, 발표하고 싶을 때 발표한다. 몇 년 사이 많이 바뀐 거죠. 그렇게 '내 맘대로 쓸 거야'하고 쓴 게 대체로 앞에 있고요. 뒤로 가면 청탁받아 쓴 작품이 있죠. '조'나 '퀴즈쇼', '아이스크림'은 청탁받아 쓴 글이고요."

엽편소설이라고 하나요? 굉장히 짧은 작품도 있는데.

"가장 짧은 '명예살인'은 미국 <에스콰이어>에 실은 거예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미국에서 출간된 직후(2008년)에 '냅킨 프로젝트'를 하겠냐고 연락이 왔어요. 냅킨 한 장에 작가들이 쓴 소설을 매달 한 작품씩 잡지에 싣거든요. 이렇게 짧은 작품을 굳이 넣은 건 이 소설집의 정신하고 맞아서죠. 쓰고 싶을 때 내키는 대로 쓴 작품."

이상하고 특이한

제목은 이 책에 실린 단편 '밀회'의 한 대목에서 따왔다. 이 책에 실린 13편의 이야기는 누구도 최종적인 심판을 내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고 다음 사건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그린다.

예컨대 어느 날 사고로 가족과 친밀감을 갖지 못하는, 그래서 자신을 가짜 아내라고 의심하는 남편과 사는 여자(단편 '밀회'), 로봇과 원나잇스탠드 하는 여자(단편 '로봇'),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가수(단편 '악어') 같은 인물 말이다.

가장 최근 쓴 단편이 '로봇'과 '여행'이죠? 전 동의하지 않지만, 몇몇 기사와 출판사 보도자료에 'SF장르 요소를 차용한' 이란 소개가 나와요. 물론 전통적 기법과 다르다는 생각은 들지만요.

"장르적 요소라고 생각한 건 아닌데…. 이전부터 제 소설에는 그런 일관된 특징이 있었어요. '피뢰침' 같은 경우도 벼락 맞는 사람들 이야기를 쓴 거고, '흡혈귀'도 전형적으로 장르소설에 쓴 소재잖아요. 제가 그런 단편들을 한 10여 년 전에 쓸 때만 해도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그랬어요. 장편 <검은꽃> 쓸 때는 '애니깽이냐?' 이런 얘기도 들었고. <빛의 제국> 쓸 때도 북한 간첩 얘기 쓴다니까 다들 말렸어요. 저는 본격문학 밖에서 서성이는 인물이나 설정을 갖고 와서 좀 더 보편적이고, 문학적인 주제와 만나게 하는 데 흥미를 느껴요.

'로봇'도 중학교 3학년 때 로봇 3원칙이 들어있는 소설을 읽었거든요. 작가는 사실 어릴 때 읽은 책을 자기 식으로 다시 쓰는데요, 최근에 다시 떠올랐어요. 로봇 3원칙과 멜로를 붙이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으로 쓴 작품이에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소설가 김영하'하면 댄스가수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발라드 가수는 매번 똑같은 컨셉트 앨범이라도 잘 나가는데, 이효리나 엄정화는 컴백할 때마다 변해야 되잖아요. 그게 이효리, 엄정화의 정체성이니까. '김영하표 소설'도 마찬가지로 보였거든요. 사람들이 항상 '새롭다, 새롭다'고 말하는 그런 평에서 오는 강박이나 스트레스가 있지 않았나요?

"그럴 때도 있었죠. 등단하고 10년 될 때까지는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지금은 그런 생각 별로 없고요. 최근에 발견한 건데, 저라는 인간이 그냥 이상하고 특이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제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고민도 많이 했는데, 나이가 마흔이 넘어 보니 '나야말로 이상하고 특이한 인간이구나' 라고 깨닫고 있어요. 나답게 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새로운 뭐가 나타나면 호기심은 대단히 많거든요. 근데 제 소설을 자세히 보면 첨단이라는 게 별로 없어요. 제가 갖다 쓰는 건 거의 다 오래된 것들이에요.

'로봇'에서 차용했다는 아이작 아시노프도 1940년대 작가이고, '흡혈귀'도 18세기 푸시킨의 <스페이드의 여왕>에서 영감을 받았거든요. <빛의 제국>도 60년대 냉전시대 스파이 소설에서 영향을 받았고요. 셜록홈즈 시리즈에 빠진 적이 있는데 그래서 쓴 게 '사진관 살인사건'이에요. 다 오래되 것들이에요. 제가 낯설어 보인다면, 유행을 별로 따르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요소 중에 한국적이지 않은 게 많은데요. 많은 사람들이 새롭다고 얘기하지만, 새롭다기보다 이상한 것들이죠."

그래서 김영하 작가의 작품 중 <검은 꽃>과 <빛의 제국>은 유독 동떨어져 읽혔던 거군요. 소재가 굉장히 한국적이고, 그래서 오래된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었고요.

그 두 작품 경우에는 명쾌하게 주제가 드러나는 식이잖아요. 이번 단편집은 그렇지 않거든요. 어느 인터뷰에서 '파격적인 주제나 소재는 오히려 무심하게 이야기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렇다면 이 책 성공했네. 한 줄로 정의할 말이 없잖아' 라고 생각했거든요. 기사 몇 줄로 소개하기에 대단히 애매한 책이란 말이죠.

"단편은 작가로서는 훨씬 과감하게 이야기를 펼칠 실험적인 영역이에요. 일단 훈련된 독자가 주로 찾기 때문에 장편에 비해 많이 팔리지 않고요. 어떤 것을 총체적인 걸 보여주기에는 공간이 짧고요. 추구하는 방향이 전혀 다르죠. 장편이 총체적인 것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이야기라면, 단편은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보게 되는 풍경 같은 거죠."

회색지대의 사람들

지난해 말 그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 출간한 바 있다. 꽤 많은 작가가 외국 문학을 번역하고, 자신이 번역한 작품에 영향을 받는다. 주지하다시피 무라카미 하루키는 레이먼드 카버와 피츠제럴드의 가장 정통한 일본어 번역가로 알려져 있고 그의 작품에서 이들 작가의 스타일이 묻어있다. 배수아와 김연수의 독특한 문체는 번역가로서 세월을 담고 있다. 소설가 김영하가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고 했을 때, <개츠비>의 번역본보다 번역 작업 이후 그가 쓰게 될 작품을 기대했던 건 이런 이유에서다. "번역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가 말했다.

"하루키와 다르게 전 피츠제럴드의 문체가 그렇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번에 번역된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지인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중고등학생 때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 내용을 이해하게 됐다'고.

"<위대한 개츠비>는 캐릭터를 이해 못하면서 오역이 발생해요. 닉이든, 개츠비든 데이지든 작품 속 인물들은 어느 정도 한심한 인물이죠. 아리스토텔레스가 희극과 비극을 정의할 때 '희극은 독자보다 못한 사람들이 나와서 벌이는 일을 보는 것이고 비극은 관객보다 숭고한 인물, 높은 차원의 인물이 벌이는 일을 보는 것이다'고 했거든요. 저는 천재적인 정의라고 생각해요. 숭고한 인물이 나오면 그 인물들은 자연스럽게 비극으로 갈 수밖에 없죠. 숭고한 인물들은 남을 웃길 수 없어요. 그들이 겪는 일이라는 건 자신들의 숭고한 원칙을 지키려다가 파멸하는 것이거든요. 운명과 맞서게 되고, 더 높은 것과 대결하게 되고. 프로메테우스처럼. 인물이 낮으면 그 인물들은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르게 되죠. 돈키호테를 볼 때, 마음 놓고 볼 수 있잖아요.

<위대한 개츠비>가 특이한 점은 우리보다 못한 인물들이 우리보다 숭고하게 행동할 때가 있다는 거예요. 주인공 개츠비가 바보 같은 면을 견지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숭고함이 불쑥 나오거든요. 이런 밸런스를 기가 막히게 맞추고 있어요. 번역을 할 때 그런 밸런스를 정확히 이해해야 캐릭터에 맞게 톤을 조절할 수 있거든요. 복잡한 인물에 대한 비아냥도 아니고 찬탄도 아니고 감동이 없는 그런 이야기죠. 사실 <위대한 개츠비>에는 감동이 없어요. 한국 독자들이 추구하는 방식으로 '사랑의 위대함'으로 이 작품을 이해하면, 저는 이 소설을 오독하는 거라 생각해요. "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서 말하고 있지만, 사실 작가 자신의 소설을 말하는 듯한데요. 이번 소설집 인상이 사실 작가의 이전 작품도 관통하고 있거든요. 한국 독자들은 비극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거나, 희극을 보면서 웃고 뒤에서 욕하는 두 가지로 나뉘잖아요. 표면적으로는 감동의 문학을 좋아하는 거죠. 그러니까 김영하의 소설은 기사 몇 줄로 소개하기에 대단히 애매한 책이고 그래서 새롭게 읽혔다는 거죠.

"제가 요즘 관심을 가진 캐릭터들이 다 그런 캐릭터에요. 이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 같이 다 선인과 악인, 가해자와 피해자, 웃긴 인물인지 불쌍한 인물인지 파악하기 힘든 인물이에요. 분명히 알 수 없는 윤리적 판단의 회색지대에 있는 인물들이요. 밀란 쿤데라가 한 멋진 말이 있는데,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이다'. 돈키호테에 대해서 어떻게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겠어요? 웃을 수 있을 뿐이죠. 마담 보바리에 대해서 '죽일 년' 이렇게 얘기하면, 바보가 되는 거죠. 마담 보바리에게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음으로써 독자가 좀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는 거죠. 우리와 똑같은 인물로 고통받는 인물을 던져주면 관객들은 쉽게 감동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지만,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해외에서 썼던 작품, 지금 쓰는 장편도 회색 지대의 인물인가요?

"네. 근데 어두운 내용이고 쓰는 속도도 더뎌요. 해외에서 썼던 작품도 그렇고. 샐린저는 발표하지 않고 갖고 있었다던데 그것도 좋은 것 같아요."

춘향과 심청, 햄릿과 로미오 같은 평면인물이 '입체인물'로 바뀌는 순간 근대 소설이 출현한다. 인물이 입체성을 갖는 계기는 사건과 갈등이다. 이후 소설은 특정한 시공간 속 사건이 인물의 성정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집중했다. 말하자면 근대 이전 소설이 '그놈은 나쁜 놈'이라고 말한다면, 근대 이후 소설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라, 죄를 만든 사회를 탓하라'는 식이다.

김영하는 사건이 아니라 캐릭터를 앞세우며 우리시대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요컨대 '그놈은 원래 이상한 놈인데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성정이 드러난다'고 말하는 식이다. 때문에 작가의 손을 떠난 소설 하나 하나는 단독자가 된다. 그를 한국의 작가 김 아무개가 아닌 작가 김영하로 인식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세계 앞에서.

김영하… 1968년 출생,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만해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수상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랑은 왜>, <검은 꽃>, <빛의 제국>, <퀴즈쇼>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네덜란드, 터키 등 10여 개국에서 작품 번역, 출간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