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턴트시리즈' 6년째 지속… 김남표 화가와 2인전 개최

"전 박제를 보면서 권력을 느꼈어요. 직접 버펄로 박제를 본 건 미국 뮤지엄에서였는데, 그것을 '트로피'라고 부르더군요. 그들에겐 사냥을 통해 얻은 전리품, 상패 같은 거죠. 제게 그것은 보기 좋다기보다 죽임을 당한 동물에 대한 폭력, 그것을 획득한 자의 힘의 표출로 보였어요. 우리 주변에서도 그런 권력관계는 수없이 목격할 수 있지요. 인식하지 못하거나, 억지로 보지 않거나 할 뿐이죠."

산업폐기물인 폐타이어로 세상에 없으나, 어디에나 숨어 있는, 뮤턴트'(돌연변이)를 조각해온 지용호 작가(32).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흐려지고, 진리가 왜곡된 시대, 그가 읽어낸 것은 그 안에서 힘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관계만이 아니었다.

2m 40cm의 거대한 버펄로가 등 근육을 한껏 부풀리고, 금방이라도 가슴팍에 꽂아 내릴 듯 사나운 두 개의 뿔을 곧추세운다. 발목의 힘줄 하나, 털 한 올까지도 팽팽한 긴장감이 서린 그것의 눈은 그러나 한없이 맑기만 하다. 이것은 과연 인간을 위협하는 괴수일까, 아니면 두려움을 숨긴 채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약자일까.

보는 순간 강렬함으로, 다독여진 본능을 꿈틀거리게 하는 공격적이고 에너제틱한 변종들. 그러나 그들의 눈에 어린 슬픔을 보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는지도 모른다. 2007년 뉴욕 필립스 경매를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의 전시와 경매마다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이런 '환기'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홍콩 중심가인 코즈웨이베이 타임스스퀘어에서의 야외 전시(이환권과 2인전)와 런던 사치 갤러리에서 '코리안 아이' 전시를 마친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서양화가 김남표와의 2인전 <나는 곧 세계다-두 세계의 만남>을 가나아트센터에서 열고 있다.

지용호 조각가와 김남표 화가의 두 세계의 만남
이 전시에서 지용호 작가는 신작과 함께 김남표 작가와의 협업 작품도 처음 선보였다. 붓이 아닌 파스텔을 손으로 문질러 초현실적인 작품을 완성하는 김남표 작가와 스테인리스 골조 위에 폐타이어를 일일이 잘라내 가죽 혹은 털처럼 한 장씩 붙여 가는 지용호 작가.

덕분에 한 작가는 손가락의 지문이 사라질 지경이고, 또 다른 작가는 나날이 팔뚝이 굵어지고 있다. 두 명의 노동집약적인 작가의 작품이 캔버스에서 충돌했다. 캔버스 위로 지용호 작가가 만든 말의 두상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캔버스엔 꿈처럼 나무줄기 위로 두 개의 얼룩말 머리가 교차한다.

"남표 형과 죽이 잘 맞아요. 전 조각이 백그라운드이지만 회화에 대한 욕심도 있었어요. 색이라든가, 화면 구성 같은 거요. 그런 면에서 조각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었고, 남표형은 회화를 하고 있지만 조각이 가지고 있는 역동성과 힘을 좋아해서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고 싶었던 거죠. 저도 이성적이기보다는 즉흥적이어서 남표 형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죠."

마음이 잘 맞는 작가이지만 두 작가의 작품을 한 화면에 구성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짧은 작품 준비 기간 때문에 큰 작품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시도였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지용호 작가가 6년을 지속해온 뮤턴트 시리즈는 대학 때부터 시작됐다. 현대사회를 담아낼 강한 재료를 찾던 중 우연히 발견한 것이 타이어였다. 그간 수없이 많은 폐타이어가 그의 작품 위에 입혀졌다.

가슴이나 허벅지처럼 면적이 넓은 부분은 트랙터 타이어나 공업용 타이어가 사용됐고, 상어처럼 늘씬하고 스피디한 느낌이 나는 작품에는 오토바이, 경주용 자동차 타이어가 올려졌다. 동시에 여러 작품을 작업하는 스타일이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대략 한 달에서 넉 달까지 걸리지만 거칠고 역동적인 이미지와 달리 찬찬히 살펴보면 의외의 섬세함도 가지고 있다.

"쓰다 버려진 타이어 자체가 현대의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는 오브제라고 생각했죠. 주제까지 담아낼 수 있는 소재지요. 지금껏 타이어로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고 있어요. 종류별로 다 사용해봤고, 색깔 있는 타이어도 찾아내서 사용했고요. 처음엔 동물을 작업하다가 반인반수를 하기도 했고, 이제 차츰 사람도 작업하고 있거든요."

홍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뉴욕대 대학원에서 학업을 마친 그는 미국에서 배움보다는 가능성을 보았다고 말했다. 세상의 뛰고 나는 예술가들이 모인 뉴욕에서 어떻게 하면 진정한 아티스트로 거듭날 수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고. 지금 그를 채찍질하는 것도 이 가능성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자신만이 찾아갈 수 있다. 누구도 알려줄 수 없고, 누구도 채근하지 않는, 한마디로 정답이 없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면 그는 학교에서 읽던 미술 이론서들을 펴든다. 중요하고 명백한 사실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는 일상을 깨우기 위해서다.

"뮤턴트 시리즈는 폐타이어로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본 후에 그만둘 생각이에요. 그 이후는 콘셉트에 따라 재료가 바뀌겠죠. 제가 회화를 할 수도 있는 거고요. 예술가의 몫이요? 정말 훌륭한 예술가는 시대를 반영함과 동시에 앞을 볼 겁니다. 전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걸 알기 때문에 공부를 하는 거죠. 지금까지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이젠 '열심히'를 넘어서야죠."

뮤턴트 이후를 위해, 머지않아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는 지용호 작가의 전시는 그럼에도 쉬지 않는다. 내년쯤 뉴욕에서 또다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