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한방병원 국제진료센터 레이먼트 로이어 원장외국인 첫 국내 한의사 면허증… 양·한방 통합제 실시 제안

"한의학에선 환자의 아픈 부분만 보지 않고, 몸 전체의 상태를 봐요. 몸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거니까. 허리가 아프다고 허리만 보는 게 아니죠. 양방에서 치료가 안 된다며 찾아오는 환자들이 있어요. 우리 몸을 기계부품처럼 바라보는 서양 의학적인 접근으로는 치료되기 힘든 질환이 많습니다."

자생한방병원 국제진료센터 레이먼트 로이어 원장(Raimund Royer·오스트리아)은 동양인보다 더 동양인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국내 한의사 면허증이 있는 외국인이다.

1987년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벽안의 청년이 여행차 한국을 찾았다. 그런데 태권도 체험을 하다가 발목을 삐는 사고를 당했다. 그러자 태권도 사범은 "삔 데는 침 맞는 게 최고"라며 그를 한의원으로 데려갔다. 침의 효과는 놀라웠다. 로이어 원장과 한의학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후에도 그는 한의학에 계속 관심을 가졌고, 얼마 후 한국에서 정식으로 한의학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한의대는 외국인에게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한의대에 지원했으나 전부 그의 입학을 거절했다. 전에도 몇 번 외국인 학생을 받아들인 적이 있지만, 하나 같이 1학년 과정도 끝내지 못하고 포기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구의 한 한의대에서 한글과 한자를 먼저 배우는 조건으로 입학을 허락했다. 2년 동안 연세대에서 한글을, 강원대에서 한자를 익힌 그는 한의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입학 후엔 각고의 노력으로 예과와 본과 과정을 모두 마쳤고, 한의사 국가고시에도 합격했다.

서양에서 한의학 열풍

"서양에서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지금 이 병원에도 미국인, 영국인, 프랑스인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하루 20~30명씩 저를 찾아오고 있고요. 또, 독일의 경우 침을 놓는 양의사만 3만~5만 명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어요. 한의사까지 합치면 훨씬 많겠죠. 한국에 한의사가 1만 8000명 정도 있으니 서양에서 한방을 찾는 이들이 더 많은 셈이죠."

서양에서 한의학의 인기가 상승하는 이유는 뭘까? 이 질문에 로이어 원장의 설명은 길게 이어진다.

첫째, 서양의학은 만성질환이나 퇴행성 질환, 원인불명의 난치병에 속수무책이나 다름없다. 만성통증환자의 경우, 계속 진통제를 처방해주는 게 고작이다. 반면, 한방의 침이나 한약은 진통제보다 효과가 뛰어나고, 더 오래 지속된다.

그뿐 아니다. 진통제로 처방하는 한약은 진통효과와 재생효과까지 있다. 장기간 복용해도 부작용은 거의 없는 것도 한약의 장점이라고 로이어 원장은 강조한다. 물론 한방의 효과는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입증됐다.

"한방이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독일 의대에선 1970년대부터 심층적인 연구들을 진행해오고 있어요. 연구 결과 침이 무릎통증과 두통, 요통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밝혀졌고, 현재 의료보험에서도 몇 가지 질환에 대해서 침 시술을 인정하고 있지요."

그는 자생한방병원이 녹십자와 함께 지난 8년간 개발한 신약도 소개했다. 신약개발 절차에 따라 이 병원에서 통증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한약에 대해 독성, 동물, 비교임상 등 다양한 실험을 실시했다.

비교실험 결과, 한약은 진통효과도 있으면서 신경세포와 뼈, 인대 등의 재생효과도 있다는 게 입증됐다. 게다가 부작용은 기존 소염진통제의 4분의 1로 나타났다.

한국 전통의학 활성화·세계화하길

로이어 원장은 한국 전통의학을 보다 활성화하고 세계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독일에서처럼 양의사도 침을 놓을 수 있도록 허가하는 등 양·한방 통합제도를 실시하는 것이 그가 제시하는 한의학 활성화 방안의 한 예다.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장단점을 서로 보완하고 통합하면 시너지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또, 외국에서는 한의학을 중국의학으로만 인식하는데, 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전통의학은 중국의학과 유사한 점은 많지만 알고 보면 고유한 특징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상의학이 그렇고, 처방과 침술법도 약간 다릅니다. 그러면 왜 굳이 한국 전통의학의 존재를 세계에 알려야 하냐고 할 수 있는데, 시장성 때문이죠."

국내 제약회사에서 세계시장을 겨냥해 한약성분의 신약을 개발하면 어마어마한 시장성이 있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 한의학 심포지엄을 개최해 한국 전통의학의 존재를 알려나가고 한약재를 철저히 관리하고 감독하는 기관의 설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약재에서 중금속, 농약 등이 발견되면서 한약에 대한 불신이 커졌어요. 현재 한국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관리감독을 하고 있으나, 더욱 전문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국제적인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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