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더듬>전 통해 이름 없는 죽음에 대한 애도의 뜻 표현

사진 속에서 돌이 빛을 내고 있다. 바닷물 위에서, 숲 속에서, 들판에서 선연한 주홍색으로 타고 있는 것은 분명 돌이다. 컴컴한 가운데 홀로 숙연하다. 묵념하듯, 명상하듯, 불공 드리듯 스스로 정성스럽게, 있다.

고승욱 작가는 제주도의 곳곳에서 인상(人相) 깊은 돌들을 만났다. 마치 이름 없이 돌아간 이들 같아서 성의껏 거두었다. 파라핀으로 그 이목구비와 표정을 본떴다. 가장 편안한 장소를 찾아서 두고 불을 밝혔다. 애도의 뜻이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연고 없이 죽어간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에게 안식처를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2007년 동두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발견했던 공동묘지가 작가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다. 유난히 무연고 묘가 많았다. 사연이 그려졌다. 돈을 벌고 국가를 일으키기 위해 고향을 떠난 사람들, 도시의 불안을 외롭게 견딘 사람들, 개발 논리에 밀려나 떠돈 사람들이 저렇게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각각의 묘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근원 같았다.

예전의 고승욱 작가라면 어떻게든 그들의 죽음을 사회에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작업을 했을지 모른다. 전작들에서 그는 촌철살인의 화법을 구사했다.

일련의 재개발 틈틈이 발생하는 빈 공간에 대한 풍자인 '노는 땅에서 놀기', 도시에서 산다는 것의 격렬함과 혹독함을 빗댄 '철인3종경기', 채찍과 당근을 통한 정부의 통제와 서구화에 대한 대중적 동경이 맞물린 한국식 근대화를 꼬집은 '엘리제를 위하여' 등의 작업에서 작가의 정리는 명쾌했고, 논리는 밝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말더듬>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름 없는 이들의 이름을 섣불리 만들어 부르지 않았고, 그들의 침묵에 동참해 보기로 했다. 이는 언어와 이성을 맹신한 근대 이후 문명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역사적 주체로 복권할 때 그들은 하나의 집합체로 호명됩니다. 개별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은 깎여 나가는 것이지요. 역사의 문제를 언어화하고 이성으로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술가로서, 규정되지 않는 세계로 직접 가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이는 "겸손한 자세"를 가지려는 노력이다. 세계를 정의하고 통제하는 인간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끝없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 문명의 전제가 오만과 탐욕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출발점으로 작가는 당분간 돌-초로 한국사회 근대화의 현장을 밝히는 작업을 지속할 예정이다.

지난 7일 <말더듬> 전이 열리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고승욱 작가를 만났다. 전시는 10월3일까지 열린다.

돌초, 2010
작업이 차분해진 것 같다.

최근 겸손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 영향 받은 게 아닐까.(웃음) 섬세한 작업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돌-초 작업은 어떻게 시작했나.

동두천 상패동 공동묘지에서 출발했다. 약 40%가 무연고 묘였다. 홀로 맞은 죽음들이 현대, 도시적 삶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돈 버느라 고향을 떠나고, 가족을 이루지 못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지 않나. 그들에게 안식처를 주고 싶어서 이름 없는 존재의 느낌이 있는 돌들을 편안한 장소에 놓는 작업을 시작했다. 애도하는 의미로 초를 떠올렸고.

<말더듬>이라는 전시 제목은 무슨 뜻인가.

이름 없는 세계를 역사 담론화할 때 깎여 나가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동두천 미군 캠프에서 살해 당한 윤금이 씨를 '민족의 누이'라고 호명할 때 한 인간으로서 그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은 사라져 버리지 않나. 이름을 붙여 사회적 진실에 가까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술가의 입장에서 그 세계와 개별적으로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화를 거부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꿔야 했다. 하지만 언어라는 것이 삶의 조건이기 때문에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고, 그 경계에 있다는 뜻에서 <말더듬>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종교적, 생태적 해석의 가능성도 있는 것 같다.

죽음에 대한 고민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죽음은 불가항력이다. 인간의 불완전함과 불가능성을 깨우쳐 준다. 이성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잊혀진 점이다. 현대 사회는 이를테면 '나이키'의 세계이지 않나. '유 캔 두 잇'이라는 구호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상정하고 사람들이 미래를 향해 전력질주하게 만드는.

작년까지 풀의 디렉터로 일했다. 그 경험이 작업에 영향을 미쳤나.

개인 작업을 하기는 어려웠지만, 지역과 연계된 프로젝트성 작업들을 할 수 있었다. 한국사회 근대화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 풀이라는 공간이 한국 미술사 속에서 하나의 흐름, 네트워크의 구심점이기 때문에 받은 영향도 있다. 세대를 넘어 소통했기 때문에 갖게 되는 사회적 책임감과, 그로부터 나오는 작업이 있다.

최근 지역 연계 프로젝트들이 늘고 있지만, 모든 작업이 작가의 말처럼 한국사회의 현실을 성찰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관건은 지역의 역사를 얼마나 깊이 건드리느냐다. 불편한 부분까지 담론화해야 한다. 나아가 지역의 문제를 지역 내부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 틀 속에서 드러내야 현실을 검토하는 작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