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째 기타콘서트 관심집중, 성신여대 교수 부임 노하우 전수도

멀티 기타 플레이어, 작곡가, 영화음악감독, 음악프로덕션 '무직도르프'의 수장, 교수, 그리고 신개념 기타 디자이너까지. 한 사람이 해내기에 너무 많은 역할을 가진 그는 여전히 '기타리스트'로 불리고 싶은 이병우(45)다.

느릿한 말투, 해맑은 얼굴, 본인조차도 '치열함이나 적극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하는 그는 남들에겐 하나로도 벅찬 일을 여유 있는 걸음으로 해오고 있다.

2001년부터 해마다 한차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이병우의 기타 콘서트>. 늘 3층까지 만석이지만 오는 10월 31일 열 번째 공연 소식이 알려진 후 며칠이 지났을까. 갑자기 티켓 판매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23년 전 단 2장의 앨범을 발표한, 이병우와 조동익(보컬, 베이스)의 포크 듀오 <어떤 날>의 음악이 라이브로는 처음 연주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당시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했지만 지금까지도 전설적 명반으로 전해진다. 조동익 대신 누가 이병우와 호흡을 맞출지도 팬들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요즘이다.

중학교 시절의 이병우는 제프 벡의 연주를 듣고 기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클래식 기타로 시작했지만 어쿠스틱, 일렉트릭 기타 연주에 팝, 재즈, 락까지 자신의 음악의 범주 안에 녹여놓았다. "음악이 그냥 좋았어요. 장르는 중요하지 않았죠. 제프 벡은 아웃사이더 같은 연주자였죠. 고독해 보이고 말없이 기타만 치니까 그게 더 멋있어 보였고."

기타로 수많은 장르를 넘나들고 융합해오면서 동시에 그는 10만 원짜리부터 수천만 원대 기타가 가진 소리를 실험했다.

"접근하기 쉬운 악기지만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어려워요. 여전히 연구할 부분이 많은 악기죠. 나무 앞판에 따라서 소리도 달라서 처음엔 스푸르스를 사용하다가 한동안 시더를 썼는데, 이젠 다시 스푸르스를 사용하고 있죠. 스푸르스 소리는 단아하고 시더는 그에 비해 울림이 크고 중저음 소리가 강한 것 같아요. 한번 소리에 예민해지기 시작하면 한 줄 한 줄 다른 회사 제품을 사용하게 돼요. 저도 한동안 그랬는데 지금은 남는 줄 아무거나 써요. 결국 어떻게 치느냐가 더 중요하거든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미국과 한국에서 다수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오며 클래식 기타리스트로서도 이름이 높다. 클래식 기타 연주자로는 처음으로 NGSW/D'Addario 기타 콩쿠르와 Yale Gordon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지난해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세계적으로 활동이 두드러진 졸업생에게 수여하는 'Johns Hopkins Knowledge for the World'를 수상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기타 안에서 자유롭고자 했던 그가 이제는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학교와 마스터 클래스에서 전수하고 있다. 존스 홉킨스 대학이나 서울대학교 등 기회가 될 때마다 마스터 클래스와 수업을 해오던 그가 내년부터는 성신여대 현대실용음악학과 교수로서 정식 부임하게 됐다.

"기타를 재미 있게 치는 방법이 많은데, 이론 정립이 안 돼서 발전하기 어려웠어요. 어느 정도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정리가 되어서 체계를 잡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학교에서 강의하는 걸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였는데, 성신여대에 신입생 선발 오디션을 보고는 많이 감동했어요. 음악이라는 게 자기 안에 내재된 정서를 표현하는 건데, 어린 학생들 안에도 저런 정서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이 자리가 쉽게 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죠."

기타 몸통이 없는 '기타 바'를 디자인한 것도 기타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를 위해 지난 4년을 투자했다. 누구나 몸에 부담을 주지 않고 오랜 시간 연습할 수 있게 몸통을 없앴다. 장애를 가진 이들까지 고려한 '착한' 디자인이다. 그가 기타 디자인에서 장애인을 고려하게 된 건 꾸준히 자선공연에 참여해온 한국근육병재단과의 인연과 무관하지 않다. 전액 무료로 자선공연 무대에 서온 그는 이번엔 재단 이사까지 맡아 음악을 하고자 하는 근육병 환우들의 마스터 클래스와 진로 카운셀링까지 맡게 됐다.

"점점 살면서 느끼는 게 나도 누군가의 보살핌과 관심 덕에 지내왔는데, 이제는 나도 남들을 보살피고 관심 있게 돌봐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인생인 거 같아요."

<왕의 남자>, <장화, 홍련>, <괴물>, <마더>, <해운대>등 한국의 영화음악의 역사는 이병우가 작곡한 스무 편이 넘는 영화 속 음악으로 새로 써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난해 개봉한 <마더>는 칸 영화제에서 '고요 속에 격정을 숨겨놓은 듯한 이병우의 음악이 영화의 스토리를 한층 높였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의 영화음악 차기작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할 판타지 영화 <로맨틱 헤븐>(감독 장진)에서 들을 수 있다. 보통 두 달, 짧으면 한 달 안에 완성해야 하는 영화음악 작업이 때론 고달프지만, 그는 청각과 시각이 어우러지는 흥미로운 세계 속 유영이 즐겁다고 했다. "큰 스크린에 영화가 진행되면서 나오는 스트링 연주를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오케스트라를 많이 사용하는데요. 아무래도 이 작품에도 오케스트라 연주를 넣을 것 같네요."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