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82) 뮤지컬 배우 박은태국내 1호 '그랭구아르' 멋지게 소화… 한국뮤지컬대상 신인상 후보에

사진제공=떼아뜨로
한국뮤지컬 최대의 행사인 한국뮤지컬대상이 올해의 주요 부문 수상 후보자들을 발표했다.

남녀주조연상 못지않게 눈이 가는 것은 일생에 한 번뿐인 신인상 후보. <오페라의 유령>, <빌리 엘리어트> 등 올해 내내 이슈를 몰고 다닌 작품의 신인배우들이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여기에 이름을 올린 박은태에 이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대성당들의 시대' 한 곡으로 공연을 보지 않은 네티즌까지 <노트르담 드 파리>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내게 했던 국내 1호 '그랭구아르' 박은태가 신인상이라니.

하지만 그의 경력을 되돌아보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많지 않은 작품을 했다는 데 놀라게 된다. 2001년 강변 가요제에서 발라드 곡 '고백'으로 동상을 받은 그는 원래 가수지망생이었다. 당시 연습생으로 머물던 기획사에서 권유해 우연히 치른 뮤지컬 <라이언킹>에 앙상블로 뽑히면서 그는 뮤지컬배우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그런 그에게 행운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한국어로 공연되는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시인인 그랭구아르 역이 그에게 맡겨진 것. 어렵기로 소문난 노래 '대성당들의 시대'는 공연 시작과 함께 불러야 하는 곡이다. 신인인 그에게는 엄청난 시련이자 도전이었지만, 그는 이를 자신만의 매력으로 녹여내며 <노트르담 드 파리> 하면 박은태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르게 만들었다.

맑고 부드러운 음색으의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던 그에게 찾아온 두 번째 도전은 <모차르트!>였다. 처음에 그는 임태경, 박건형, 조성모, 시아준수라는 화려한 주연진에 밀려 '커버'로 캐스팅됐지만, 조성모가 하차함에 따라 또 다시 주연의 기회를 잡았다. 그에게 <노트르담 드 파리>가 처음에 큰 산을 넘어야 공연 전체가 잘 풀리는 작품이었다면, <모차르트!>는 서서히 끊임없이 노래의 여정을 계속해야 정복하는 대장정 같은 작품이었다.

색깔이 뚜렷한 다른 배우들에 비해 박은태의 이미지는 여전히 그랭구아르의 섬세한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그는 극 속 모차르트의 상황에 최대한 몰입해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냈다. 바로 '동심이 있는' 모차르트였다. 박은태 안에 있던 가볍고 까불대는 이미지는 작품 속 모차르트와 완벽한 동조를 보이며, 그에게 '은태구아르'에 이어 '은차르트'라는 새로운 별명까지 안겨줬다.

스타들의 티켓 파워에 밀리지 않는 개성과 음색으로 잇따라 좋은 연기를 보여온 그에게 뮤지컬계는 올 여름 또 한 번 기회를 줬다. 서울시가 기획 제작한 창작뮤지컬 <피맛골 연가>의 주연인 서출 김생 역이 맡겨진 것. 박은태는 첫 단독 주연을 맡았던 이 창작뮤지컬에서 성량이 작다는 세간의 평가를 불식시키며 상대배우들과 환상의 앙상블을 만들었다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승승장구를 이어가는 그이지만 박은태는 자신이 항상 운이 좋은 배우라며 겸손한 자세를 보인다. 그의 데뷔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납득이 가기도 하지만, 그보다 설득력 있는 것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부응한 그의 탄탄한 실력이었다. 초반에 뮤지컬 데뷔라는 거대한 산을 지나 끊임없이 자신의 차례에서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해낸 그의 여정은, 그대로 <노트르담 드 파리>나 <모차르트!>의 전개 과정과 신기하게도 닮아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