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바꿔 공연… 김승기 시인의 '역', 기형도의 '엄마 걱정' 등 3곡 초연

북한산 끝자락, 한쪽으로 거대한 암석이 하얀 피부 결을 드러내는 그곳에서 부암동과 인왕산 산세가 눈에 들어온다.

산에서부터 가을 냄새가 불어오는 곳, 직접 이름 지은 '홍지마을' 가장 위쪽에 소리꾼 장사익(61)이 산다. 까치와 참새들이 목을 축이러 오는 연못, 그 옆으로 크기도 모양도 제 각각의 풍경(風磬)들이 바람결에 춤춘다.

풍경 위로 쪼르르 앉은 참새들을 보며 "내가 참새 오십 마리는 키우니께"라며 농을 던진다. 아침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그의 집에서 들려오는 클래식 FM 음악 소리는 매일같이 이 집을 찾는 작은 손님들을 위한 배려다. 자연의 일상적 움직임, 짧은 만남까지도 무심히 지나는 법이 없다. 소탈함과 지극함이 몸에 배어 있다.

가벼운 몸짓으로, 혼을 다해 노래하는 그는 늦게 핀 꽃이다. 7남매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열댓 개 직장을 전전하는 동안 청춘이 흘렀다. 부모님 앞에서 늘 불효자였던 그다. 하지만 카센터에서 3년간 자동차 파킹을 하며 밥벌이하던 그에게 밀려왔던 회한은 자신의 인생을 향해 있었다.

"난 기술자도 아닌데, 내가 사는 게 이건 아닌 거 같어. 이렇게 해서 밥 먹으려고 세상 살았나.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1부터 10까지 적어봤어요. 다른 직장에 갈까, 장사를 할까, 제일 마지막에 쓴 것이 태평소를 부는 거였어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여. 넘들 쳐다보지도 않는 거여. 전문가가 되면 사물놀이나 농악대에서 일당 받아서 간신히 밥만 먹을 수 있지. 그런데 거기에 제가 목숨을 걸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께 즐겁게 어릿광대처럼 딱 3년만 하자고 마음먹었지요. 딱 2년째, 숨어 있던 노래가 튀어나온 거여."

태평소를 잡은 2년을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다. 초등학교 시절 목청이 좋아 웅변을 했던 그는 매일같이 동네 뒷산에 올라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5년 발성연습을 하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며 낙원상가에 있던 가요학원에 다녔다. 3년간 유행가를 마스터 한 그 학원은 남진, 나훈아 같은 대중가요 스타들이 거쳐 간 곳이다. 군대에서 3년 노래하고 제대했지만 노래에는 자신이 없었다. 날고 기는 가수들이 있었고, 게다가 숫기 없던 성격은 그를 주춤하게 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도 국악기는 놓지 않았다.

"카센터를 그만둘 때 나를 뒤돌아 봤어요. 내가 제대로 살았나. 열심히 산 거 같기는 한데, 죽을 힘을 다해서 살았나 하면 아니었거든. 3년만 죽을 힘을 다해서 해보자. 그걸 못해서 그렇지, 3년만 그렇게 해보면 10년이 되는 거여. 그때가 되면 자기 길이 열려요. 정말 순수하게, 남들이 쳐다보지 않는 것에 인생 목표를 걸고 하다 보면 굴곡 모두 지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 해내는 거지요." 잠시 숨을 고르던 그가 말을 이었다. "내 젊은 날은 참 가벼웠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꿈이 많아서 그랬던 거 같여."

마흔 다섯 늦깎이 신인으로 데뷔했지만 지난한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이젠 해외에서도 그를 찾는 곳이 많다. 공연 중 손뼉 치는 행동이 실례라고 생각하던 점잖은 일본 관객들도 지난 6월 NHK 홀에서는 두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환호했다. 내년은 미국과 유럽, 일본으로 이어지는 월드투어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장아찌, 된장처럼 푹 익은 다음, 이제야 세상에 간 좀 맞출 수 있게 된 거지."

그동안 '꽃구경'이란 제목으로 공연을 올려온 그가 이달 27일과 28일 양일간 세종문화회관에서 '역(驛)'을 테마로 무대막을 연다. 마침 찾아낸 김승기 시인의 '역'이라는 시를 노래로 지었다. 그가 시를 읊는다.

'잎사귀 하나가 가지를 놓는다 / 한세상 그냥 버티다 보면 / 덩달아 뿌리내려 나무 될 줄 알았다 / 기적이 운다 / 꿈속까지 찾아와 서성댄다 / 세상은 다시 모두 역일 뿐이다'

"나무가 잎사귀를 놓는 게 아니라, 잎사귀가 나무를 놓는 거다. 다르죠? 자신의 의지가 들어간 거지. 출세가 세상에 나가는 게 출세 아니여? 촌놈들이 서울역에 내려서 어디 한번 뿌리내리고 살아보자 하는 거지. 그게 어려우니 다시 다른 곳으로 가고. 우리네 삶이 역이여. 올라타고, 내리고, 서성거리고, 또 기다리고."

그의 눈가가 붉어진다. 올해 공연을 준비하던 중 두 명의 친구를 잃었다. 공연의 첫 곡으로 부를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피아노 반주해주던 최장현 씨가 5월에 갑작스러운 암 선고를 받고 하늘로 떠났고 8월에는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영면했다.

"죽은 두 친구도, 먼 별에서 지구에 뿌리내리고 살려고 왔다가 다시 은하철도 타고 다른 별로 간 것 같애."

1995년, 그가 세상에 내놓은 첫 앨범 타이틀이 <하늘 가는 길>이었다. 노래하는 어떤 이가 죽음이란 주제를 쉬이 꺼내 들 수 있었을까. 다음에도 앨범마다 한둘씩 죽음을 노래하는 곡들이 나온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살고 죽는 거예요. 사는 것이 곧 죽음에 하루하루 다가가는 거잖아요. 모르는 척 살고 있을 뿐이지. 서양음악엔 레퀴엠이라는 장르가 있고, 우리나라에도 장송곡이 있어요. 나도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금기시된 죽음을 노래하지만 알고 보면 레퀴엠이 가장 영적인 음악이거든요. 사람의 심금을 절절하게 울리는. 그러면서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마운지를 역설적으로 얘기하는 거죠."

이번 공연에서 그는 '역'을 비롯해 3곡을 초연한다. 그 중엔 요절한 시인 기형도의 '엄마 걱정'이란 곡도 있다. 유족이 없다고 들었지만 미국에 사는 누나와 연락이 닿아 시를 노래해도 좋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시 속에 등장하는 시인의 어머니가 한국에 계신다는 말씀을 듣고 공연에 모실 참이다. 참외 장사를 하시던 자신의 어머니가 겹쳐지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번엔 그가 노래한다. 기형도 시인의 경험이 소리꾼 장사익의 혼신을 거쳐 어느새 나의 경험이 되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 시장에 간 우리 엄마 /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 아주 먼 옛날 /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