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문화를 말하다] 매월 1천만원 연극 티켓 구매

우리투자증권 서울 여의도 본사에 들어서면 조금은 낯선 '훈장'을 보게 된다. 우리투자증권이 증권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역동성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벽에 걸린 실적표이다. 총자산 1위, 공모 ELS 발행실적 1위, 채권인수 1위, 국내 주식거래 실적 1위…, 무려 21개 분야에 이른다.

우리투자증권의 이러한 위상은 일반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가 최근 광고를 통해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지난 1년여 사이 우리투자증권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고, 그 중심에는 황성호 사장이 있다.

작년 6월 우리투자증권 CEO로 취임한 황 사장은 종합 1등 금융투자회사로의 도약을 선언하며, 혁신적이고 액티브한 상품 개발과 서비스 제공, 경쟁력 강화 등으로 1년 만에 IB(투자은행), 트레이딩, 브로커리지(위탁매매) 등 각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는 회사로 바꿔놓았다.

황 사장은 지난 6월 말 문화예술계가 놀란 큰 일을 했다. 서울연극협회와 연극공연 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금융사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MOU의 내용은 우리투자증권이 '우리서울티켓'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연극협회 소속 극단의 연극티켓을 정기적으로 구매해 주고, 극단은 우리투자증권 고객이 연극 티켓을 구매할 때 일정 수준의 우대할인율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매월 티켓 구매 금액의 20%를 재정상태가 열악한 극단에 배정한다.

많은 기업들이 공연에 관심을 보이고 티켓을 구입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기업홍보를 위해 유명 공연 중심으로 지원하고 클래식이나 뮤지컬 등 특정 장르에 집중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서 우리투자증권의 전폭적인 연극계 지원은 이례적이고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연극협회 관계자는 "기업이 연극계와 MOU를 맺어 지속적인 공연관람을 약속하고, 중소극장을 아우르는 모든 공연에 관심을 갖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은 우리투자증권이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많은 기업들이 연극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주 우리투자증권 집무실에서 황성호 사장을 만났다. 그는 연극계 지원에 대한 주변의 관심에 정작 담담해했다.

"문화예술 지원도 대기업의 책임이고, 고객과 소통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객의 관심과 성원으로 우리투자증권이 업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고객에게 높은 투자수익을 돌려주는 데서 한 차원 높게 나아가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고객에게 보답하고 감성적인 소통을 하고 싶었습니다."

황 사장은 우리투자증권이 1등 금융투자회사를 지향하는 것과 연극계를 지원하는 것은 같은 '꿈'을 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이 9월 8일 싱가포르 밀레니아호텔에서 현지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자본시장 상황에 대해 직접 설명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이날 개최한 '2010 우리 코리아 컨퍼런스'에서 12개 국내 상장사 뿐만아니라 국내 원화 채권시장 및 해외 한국물 채권 소개도 함께 진행했다.
"직원들에게 말합니다. '최고의 금융그룹이 되자'는 회사의 꿈과 당신의 꿈을 일치시키라고. 회사가 잘 되면 내가 잘 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꿈을 키워가라고 말입니다."

그는"연극 공연에서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꿈과 희망'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꿈을 주기 때문에 감동이 있는 거죠. 공연을 제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공연이 성공해 수익을 내고 싶은 현실적 꿈,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픈 직업적 꿈, 관객에게 큰 감동을 주고 싶은 행복한 꿈 등이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황 사장은 고객 입장에서도 우리투자증권으로부터 연극 티켓을 받는 것이 아니라 '꿈(감동)'을 선물받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황 사장은 기업과 예술 모두 창의가 필수적이라며 우리투자증권이나 연극이 발전하려면 창의적 마인드가 필요하고 강조한다. 남과 다른 나만의 '무엇'을 창출해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금융은 사람의 마인드의 산물입니다. 창의적인 사고를 통해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야 기업이 생존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투자증권이 업계 선두권을 유지하는 가장 큰 배경이기도 하죠."

우리투자증권은 서울연극협회와 6월 24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연극공연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황성호(오른쪽) 우리투자증권 사장이 박장렬 서울연극협회 회장과 MOU를 체결한 후 환하게 웃고 있다.
실제 우리투자증권은 지난 1년여 동안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경영전략으로 증권업계의 지형을 바꿔놨다.

우선 작년 3월 말 90조 수준이었던 전체 고객 자산이 올 3월 말 115조 수준으로 급상승했으며, 3~4위 수준이었던 브로커리지 점유율도 지난 4월 대형 증권사 중 1위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두는 등 IB, 트레이딩, 리테일(소매) 분야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펀드의 성격과 위험을 정확하게 진단해낼 수 있는 분석시스템인 PSR(Portfolio Strategy & Risk Analysis) 서비스를 증권업계 최초로 도입하고, ETF(상장지수펀드) 적립식 자동주문 서비스를 국내 최초로 실시하는 등 업계에 새 바람을 불러왔다.

특히 전략적인 해외진출의 성과는 타사와 차별화될 정도로 눈부시다. 해외 선진금융기관과의 경쟁을 위해 국내 증권업계 최초로 설립한 싱가포르 IB센터는 2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으며, 인도 및 중동 금융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제휴, 인도 투자 상품 출시 등의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황 사장은 연극계를 후원하고, 기업인으로 창의적인 상상력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히는 데 어릴 적 부친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 사장의 부친은 고 황호근 작가로 경북 경주의 한 고교에서 역사를 가르친 교사이자 유명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였다. <시나리오 작법>(1958)이란 책을 냈으며, 1960년대 <사랑의 동명왕>, <이차돈>, <정동대감>, <공주님의 짝사랑>, <양반전>, <초원의 연인들> 등의 영화 시나리오가 부친의 서재에서 탄생했다.

"부친께서 2백자 원고지에 시나리오를 완성하면 흘려 쓴 글자를 정자로 바로잡는 데 팔이 빠질 정도로 힘들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수십 편의 시나리오를 읽게 됐고 시나리오의 상황에 내 나름의 상상과 논리를 펴곤 했죠."

이후에도 황 사장은 소설, 시 등 문학과 연극 등에 꾸준한 관심을 가졌다. 비록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금융업에 몸담게 됐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의 끈은 놓지 않았다. 그가 연극계 지원에 나선 데는 그러한 뿌리 깊은 끈이 작용한 셈이다.

황 사장에게 다양한 예술 장르 중 특히 연극을 후원한 배경이 궁금했다.

"영화나 오페라, 뮤지컬도 좋지만 연극이 참 좋았습니다. 무대가 가깝기 때문에 배우의 거친 발성이며 땀이 다 보이고, 인간적 삶의 애환이라든가 사람 냄새가 감동적으로 전달되지요. 반면에 연극계 여건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극에 종사하려면 일정 수준의 생활성도 갖춰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고, 관객에게 감동이 전달돼 더 많은 관객이 찾아와 연극계가 활성화될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투자증권의 연극 후원은 연극계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펌프에서 물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먼저 붓는 물)'의 역할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투자증권은 연극협회에 매월 1000만 원 상당의 티켓을 구매하고, 전체 구매 금액의 20%는 재정이 열악한 극단의 공연 티켓을 구입하는 데 사용한다. 후원하는 공연 중 작품성이 높은 공연은 분기 1회씩 전관 행사를 통해 더 크게 홍보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우리투자증권의 연극 후원은 고객과 직원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VIP 고객에게 물어보니 '인기 최고'라고 합니다. 직원들도 마찬가지고요. 실제 연극 1~3편을 올리면 티켓 400장이 5분도 안 돼 끝납니다."

연극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 있는지 물으니 "이런 후원이 성공하고, 고객이 원하면 회사 사업도 고려하면서 늘릴 수 있다"고 대답한다. 단, 앞으로도 조용하게 후원할 것이며, 조직의 힘을 과시해 수백 명씩 동원하는 감동이 없는 광고식 후원은 사양하겠다고 한다.

우리투자증권의 향후 메세나 계획에 대해 황 사장은 사람이 중심인, 기업-직원-고객이 함께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증권업은 사람이 재산인 업종입니다. 우리투자증권은 단순한 재정적 예술후원이 아닌, 사람이 재산인 기업의 특성을 살린 메세나 방향을 모색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문화예술 지원에 대한 가치관을 전 직원이 공유하고, 문화예술 활동을 직접 체험하며, 함께 문화예술 후원에 동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메세나 활동을 통한 지속적인 예술 후원을 고객과 함께 나눌 계획입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직원들에게 '꿈'이라는 화두를 설파해온 그에게 본인의 꿈에 대해 물었다.

"우리투자증권을 명실상부한 종합 1위 증권사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목표, 꿈이 있는 기업, 직원과 그렇지 않은 조직은 전혀 다른 길을 갑니다. 꿈이 있는 기업은 성장하고, 꿈이 있는 인생은 즐겁습니다. 문화예술을 지원할 수 있는 것도, 끊임없는 창의력도 꿈에서 나옵니다. 꿈이 있는 자는 그 꿈을 향해 땀을 흘립니다. 직원들의 꿈을 회사의 비전과 일치시켜 1위 증권사가 되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자 꿈입니다."

황성호 사장의 꿈에 잠긴 탓일까, 집무실을 나서는데 벽에 걸린 액자의 글귀가 인상 깊게 들어왔다.

'꿈이 없이는 땀을 흘릴 수 없습니다.'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은…

1953년 경주 출생,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1979년 씨티은행 부장, 89년 다이너스클럽카드 한국지사장, 92년 씨티은행 소비자금융부 지역본부장, 93년 아테네은행 공동대표 부행장, 96년 한화헝가리은행장, 97년 씨티은행 북미담당 영업이사, 99년 제일투자신탁증권 대표이사, 2004년 PCA투자신탁운용 사장, 2007년 PCA 아시아지역 자산운용사업부문 부대표, 2009년 6월 우리투자증권 사장(현)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