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화백의 장남, 우레탄 폼의 굴곡으로 현대사회 헛된 욕망 표현

층_ 가위소리 2, Mixed media, 2010, 117*73cm
"아버지 그림에는 '나'가 있어요. 그리고 여기, 이 땅을 그리셨죠.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상황과 이 땅의 선한 인물들을 즐겨 그리셨고, 때문에 선함과 진실함이 그림의 화두였습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배운 건 그겁니다."

화가 박성남이 말하는 아버지 박수근의 그림이다. 국민화가 박수근 화가의 장남인 그는 아버지의 서정적인 조형미에 자신만의 재료적 물성을 더해 현대사회의 단상을 그려왔다.

대학로 갤러리에서 <가위소리>전을 열었던 지난 9일 그를 만났다. 전시회를 둘러보며 "그림을 보는 일반 대중은 작가의 삶에서 그림을 읽어낸다"고 넌지시 말했다. 우레탄 폼으로 풍부한 질감을 준 그의 그림을 보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아버지 박수근의 마티에르를 떠올리게 된다는 말이다.

"아버지의 그림에서, 이를테면 박수근의 마티에르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이렇게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제 그림이 출발한 지점은 자연과 인간의 생성과 소멸이에요. 현대인의 욕망과 비례해서 자연의 모든 것이 부풀어 오르고, 인간은 기운을 잃어가고 있거든요."

암울하고 배고픈 시절, 아버지의 그림이 생성을 말했다면, 물질적 풍요가 넘치는 오늘날 자신은 소멸의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박수근 화백의 장남인 박성남 씨
"제 그림에서 인간은 움푹 들어가 있고 풍경은 튀어나와 있어요. 공존하듯이 밀착돼 있죠."

하나의 캔버스에 평면과 입체를 모두 담고 있는 것이 그 작품의 특징이다. 작가는 고온에서 구워내는 우레탄 폼의 굴곡과 부푼 모습으로 현대사회의 헛된 욕망을 표현한다. 입체적인 우레탄폼의 물성과 어울린 평면적 인물의 형상이 우리를 둘러싼 시대적 욕망과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위소리로 빚어낸 현대인의 초상

최근 신작의 작업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가위'라는 대상이다. 작가는 "가위소리가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의 날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가위의 속성이지만, 둘이 만날 때 제 기능을 발휘한다. 작가가 가위를 통해 발견한 의미는 혼자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어울리기 위한 배려와 책임이 뒤따르는 것을 말한다.

작가의 개인사와 결부시키면 가위소리는 영원히 하나 되기 어려운 남과 북의 메타포가 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DMZ에서 결혼하셔서 저를 낳았습니다. 지금 그곳은 지구상의 마지막 경계 구역이자 마지막 생태보관소이죠. 모든 경계가 사라져는 이때, 왜 우리나라에는 경계가 있어야 할까? 이게 줄곧 화두였고 그에 관한 그림을 그려왔어요. 남과 북의 경계이자 중심인 DMZ는 제게 가위의 두 날을 만나게 하는 중심점과 같은 곳이죠."

전시에서는 가위소리를 만드는 시장통 엿장수의 모습을 담은 <소리가 빛을 찾아> 연작 시리즈와 <가위소리> 등을 비롯해 <감사하는 소녀>, <생선장수>등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까지 최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엿장수>연작에 그려진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따스한 정서에 빠져들게 한다. 박성남의 그림은 2010년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