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엄기호임시적 삶의 조건 속에서 고군분투 중인 대학생들 통해 사회 바라보기

<이것은 왜 또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저자 엄기호
청춘은 고되다. 사랑 때문에 지새는 밤들은 성장통이다. 열정이 넘치고 불의를 보아 넘기지 못한다. 그러나 실수는 성장의 자양분이다.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절이다.

그러나 꿈 깨시라. 이런 청춘은 더 이상 없다. 오늘날 한국의 20대들은 연인에게 "내가 밥 샀으니 네가 모텔비 내"라고 말하고, 헤어져도 '쿨'하다. 열정은 토익 점수와 고시 공부 기간으로 환산된다. 투표에선 등돌린 지 오래고 '김예슬 선언'에도 시큰둥하다. 완벽한 '스펙'을 쌓는 데 시행착오는 용납되지 않는다. 각박한 시절이다.

어른들은 갑론을박 중이다. 누군가는 이들의 나약함을 탓하고, 누군가는 이들의 불감증을 탓한다. 사회를 가난으로부터 구하고 민주화시키느라 불사른 예전의 청춘에 못하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따져보자"고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제안한다. "우리는 20대가 성장하지 않았다고 할 때 그 '성장'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았다. 그 성장이 어떠한 조건에서 가능한 것인지도 묻지 않는다. 자신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나 방향대로 성장하지 못한 20대들이 세상을 어떻게 경험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사회학과 문화학을 전공하고 대안교육, 인권 관련 활동을 해온 저자 엄기호는 연세대학교 원주 캠퍼스, 덕성여대에서 만난 학생들과 '함께' 이 책을 썼다. 2년 동안 강의 시간마다 그들과 대화한 경험으로부터 우려낸 결과물이다.

세심하게 들여다 본 20대는, 스스로 열어 보인 그들은 무능하지도 냉소적이지도 않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마다하지 않고,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은 것은 정치가 이미 '쇼'가 되어버렸음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사연을 유령처럼 무시해버린 주류 담론의 무지막지함에 주눅들어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는 들릴 권리the right to be heard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말할 권리가 권리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의무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 때문에 책은 단순한 세대론에 머물지 않는다.

20대를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20대와 동행하기 때문에 그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말, 삶의 조건과 사회의 방향성을 성찰해낼 수 있다. 그것들은 당연히 현재 한국사회의 보편적 형편이다.

저자가 "피난민"에 비유한 이들 삶의 불안정성과 유동성은 상징적이다. 내일 더 이상 도서관에 앉아 있지 않기 위해서 오늘 도서관에 틀어 박혀 있는 삶, 명문대의 이름을 갖기 위해 매일 네 시간 동안 그 대학의 서울 근교 캠퍼스로 통학하는 삶,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없어 모텔과 비디오방을 전전하며 살림 없는 임시적인 사랑을 하는 삶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유목민'을 빌려 이상화한 세계화된 환경의 구체적 이면이다.

그래서 20대의 쿨한 연애는 개별적인 선택이 아니다. "삶이 이렇게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것이 되었는데 어떻게 사랑이 임시적이지 않을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러니까 주류 담론에 주눅들 것 없이 자신의 고군분투를 긍정하며 사회를 만들자는 제안이 책의 결말이다. 뛰어난 성찰에 따르는 힘찬 격려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어른들이 할 일이었다. 한 시대를 공유한 동행에 대한 예의이자, 사회를 물려줄 후손에 대한 배려로써.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반문은 이 각박한 시절을 반성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몫임을 겸손하고도 예리하게 지적한다.

지난 20일 저자 엄기호를 만났다.

책을 읽어보니 강의 방식이 궁금해졌다.

-강의 때마다 토론을 하고 글을 써오게 한다. 지난번엔 한 학생이 '네버랜드'에 대한 글을 써 왔다. 네버랜드에서는 누구도 늙지 않는다는 신화는 피터팬의 음모라는 내용이었다. 늙은이는 몰래 악어 먹이로 던져 주고 대신 새로운 젊은이를 납치해 온다나.(웃음) 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 후 우리 사회가 어떤 신화로 유지되고 있고, 이를 위해 무엇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지를 토론해 보자고 했다. 타블로에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도덕적이지 않은 사회를 은폐하는 기제라거나 취업 시장이 요구하는 스펙이 사실은 사기라는 분석도 나왔다.

책을 쓴 계기는.

-아이들을 북돋아주기 위해서였다. 20대에 대한 주류 담론이 답답했다. 종종 무서울 정도로 단정하고 단죄했다. 아이들도 주눅들어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고군분투하며 살지 않나. 아이들도 고군분투한다는 것을 들여다 보아주지 않으면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그 단정과 단죄의 이유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윗 세대는 기본적으로 팽창하는 사회에서 자랐다. 성장의 여지가 있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가 축소되고 있다. 배제와 탈락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아이들이 하는 투쟁은 이전 시대와 다르다.

좌, 우파를 막론하고 20대를 자기 식으로 단정하는 윗 세대에 대한 비판이 눈에 띈다.

-아랫 세대에게 어떤 기회를 줄 수 있을까, 그들과 어떻게 접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먼저 말 걸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데올로기가 달라도 20대를 보는 시선은 비슷하다. 많은 문제를 개인의 몫으로 축소시킨다.

책 속에 표현된 학생들의 삶이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현재 사회의 상징적 사례처럼 보였다.

-고시 공부를 하는 도서관은 학생들에게 더 이상 그 자체로 향유하는 공간이 아니다. 내일 앉아 있지 않기 위해 앉아 있는 곳, 지나가는 곳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아이들은 정착의 꿈이 없는 유목민이 아니다. 그보다는 돌아다니도록 밀려나는 피난민이다.

20대 학생들에게서 가장 당혹스럽게 느꼈던 점은 뭔가.

-사랑하다가 쿨하게 헤어지는 건 이해가 안 되더라. 사랑은 곧 상실이고 그 상처를 애도하면서 커 나가는 게 인간이지 않나. 그런데 어떻게 사랑에서조차 상처를 안 받을 수가 있나, 드디어 세상이 망했구나 생각했다.(웃음) 하지만 학생들과 대화를 나눌수록 이해하게 됐다. 삶의 조건이 임시적이 되었기 때문에 사랑도 임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 사랑은 왜 사랑이 아닌가. 오히려 이 와중에도 사랑하는 것을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데이트 비용을 내거나 선물을 주고 받을 때 등가교환을 하는 것도 야박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배려하는 방식이었다. 연애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책 속에 한 학생이 '인간이 되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한 부분이 있다.

-인간이나 인권, 민주주의 같은 상투적인 말들에 대해 우리는 정작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한번도 꼼꼼히 따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되는 게 뭔지 토론해 봤다. 리스트를 만들어 봤는데 충족하기가 정말 어렵더라.(웃음) 마침 김예슬 학생이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서 자퇴하면서 '한 인간'으로 태어나려 한다고 썼다. 아이들에게 그게 무슨 뜻인 것 같냐고 물었는데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한번도 인간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배려 받고 돌보아지며 때로는 실수를 용납 받고 위로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경험을 못 한 아이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

다음 책 계획도 있나.

-이번 책에서는 아이들의 경험과 언어를 통해 우리 사회를 봤다면 다음 책에서는 이들이 자신의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왔는지를 들여다 보려고 한다. 주류 담론이 20대에게 없다고 이야기하는 관계적 가치들이 제거되지 않았다는 입장에서 말이다. 아이들이 누군가를 기쁘게 했고, 누군가로 인해 기뻤던 경험을 함께 발견하고 있다. 예를 들면 팬클럽을 결성했던 일, 홍대 앞 문화 공간이나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했던 일 등등. 이런 '삽질'이 결코 삽질이 아니라 공동체를 만드는 경험이었다는 점을 북돋아주고 싶다. 동시에 이런 가치들이 현재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어떻게 포획되었는지도 드러내보고 싶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