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거 하는 게 정상인 작가"… 뮤지컬로

'그녀의 희곡에는 공들여 쓴 대사보다는 장면과 시간의 넘나듦, 청각 이미지로부터 시각 이미지로 넘어가는 연결 지점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도드라진다.

빠른 장면 전환과 감각적인 이미지의 연결을 통해 연극을 채우고 싶어 하는 욕망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로버트 윌슨의 이미지극과 영화적 편집 기법을 자유자재로 뒤섞는 발랄한 이미지극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김옥란이 쓴 <우리시대의 극작가>에 실린 극작가 한아름에 대한 평이다. 박조열, 이강백 등 원로 작가부터 배삼식, 성기웅 등 최근 연극계 중추인물까지 말 그대로 '우리시대 극작가'를 정리한 이 책에서 한아름은 이들과 나란히, 맨 끝머리에 소개돼 있다.

형식이 센 희곡, 형식이 다른 연극. 한아름 앞에 자주 붙는 이 말은 윗세대 작가들의 작품과 그의 작품을 구분 짓는 지점이다.

극작가 한아름. 서울예대 극작과를 졸업하고 파리 제 8대학 연극과에서 공부했다. 2004년 서재형 연출과 호흡을 맞춘 첫 작품 <죽도록 달린다>를 시작으로 <왕세자 실종사건>, <릴-레-이>, <청춘, 18대 1>, <호야>, 뮤지컬 <영웅>의 대본을 썼다.

지난 7년간 그녀가 쓴 작품은 모두 10편인데, 하나같이 대사보다 장면이, 줄거리보다 구성이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다. 첫 작품 <죽도록 달린다>는 텅 빈 무대에서 제목처럼 '죽도록 달리는' 배우들의 거친 호흡, 호흡과 호흡 사이에 내뱉는 단말마의 대사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영화 필름을 거꾸로 돌리듯, 과거로의 회상·상상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왕세자 실종사건>, 문을 통해 연속적인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등장인물의 심리를 표현했던 <릴-레-이>도 마찬가지. 작가는 기존 공연 형식에서 벗어난 다양한 작품들을 시도하는데, 서사의 기본 레퍼토리에 익숙한 국내 공연계에서 되려 '형식이 센 작가'로 이미지가 굳었다. 작가는 "이상한 거 하는 게 정상이 된 작가"라며 웃었다.

"석사 논문을 로버트 윌슨의 이미지극으로 썼는데, 공부하다 깨달았죠. 재미없다.(웃음) 감각적이긴 한데, 서사가 없으니까 30분이 지나면 억지로 보게 돼요. '이미지를 동적으로 만들어 주는 게 한국식 이미지 연극이 아닐까' 생각했죠."

당연한 말이지만, 희곡은 연극을 하기 위해 쓴 문학의 갈래다. 그 형식은 문어(文語)보다는 구어(口語), 입말이 기본이라는 말이다. 한아름의 작품에서 이 정의는 또 한 번 뒤틀린다.

그의 작품에서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그린다. 반복되는 시간의 재생을 통해 사건이 재해석되거나, 인물들의 심리가 그려지는데, 이때 '시간의 유턴지점' 지점에서 단말마의 대사가 반복되고, 이 대사는 다시 감각적인 무대와 어울려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호루라기가 중간 중간에 등장하잖아요. <살인의 추억>에서 살해당한 아이의 아픔은 대일밴드로 나타나고요. '아, 소품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생각했죠. 여러 소품, 대사가 궁극적으로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이 되는 거죠. <왕세자 실종사건>에서 반복되는 대사, 소품인 '살구'도 그렇게 반복해서 쓰게 된 거고요."

그는 최근 뮤지컬로 개작한 <왕세자 실종사건>을 무대 올리고 있다. 2005년 연극으로 먼저 만들었던 이 작품은 평온하던 궁궐에서 갑자기 왕세자가 사라진 사건을 놓고 왕과 중전, 내관과 궁녀들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린다. 뮤지컬로 개작하며 국악 관현악에서 재즈까지 다양한 음악을 넣어 극의 이해를 높였다.

작가는 "공연 작품마다 갖는 느낌이 다른데, 이 작품은 '돌아온 탕아' 같은 자식"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매번 만들 때마다 모든 스텝과 배우를 괴롭히는 작품이에요. 뮤지컬로 만들면서도 애 많이 먹었고요. 근데 아마 결과는 좋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자식 같은 작품을 소개할 때면 화색이 도는 표정이 그의 열정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