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영국 프린지 우승, 서울패션위크서 수작업 빈티지 선보여

정부가 한국 패션의 글로벌화를 위한 중장기 계획 '패션코리아 2015'를 발표한 지금, 패션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알리는 것이다. 몇몇 젊고 똑똑한 디자이너들이 해외 전시나 컬렉션을 공략해 괄목한 만한 성과를 거둔 뒤 역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경우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

디자이너 홍은정도 그 중 하나다. 그녀는 2008년 영국의 양대 신진 디자이너 발굴 프로그램인 패션 프린지에서 우승했다. 2004년 패션 저널리스트 콜린 맥도웰이 시작한 패션 프린지는 톰 포드, 도나텔라 베르사체 등을 명예회장으로 세우며 지금은 BFC New Gen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패션 콘테스트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름 앞에 프린지 우승자라는 수식이 붙기 전 그냥 홍은정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그녀는 국내에서 약 2년간 브랜드 '홍은정'을 전개했다. 한국 시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사실상 차가운 것에 가까웠다. 독립 디자이너로 살아가기가 지금보다 더 어려운 때였다. 옆 집 딸 같은 이름 '은정', 트렌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유명 디자이너들을 참고한 것도 아닌 디자인에, 유통사든 고객이든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2008년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그녀가 공부했던 런던으로 돌아갔을 때 한국에서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가 런던에 도착했을 때는 한창 프린지 공모전이 진행 중이었다. 800~900명의 응모자들 중 세미 파이널리스트 10명에 들고, 다시 다음 날 실기시험에서 뽑은 4명 안에 들었을 때도 그녀는 아무것도 실감하지 못했다.

도나텔라 베르사체의 손에 이끌려 전세계 패션계의 최상류층을 만나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승자를 발표하는 순간에도 자신을 포함한 4명 모두 '홍은정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일한 동양인이었고, 최초의 한국인이었다. 우승 뒤에는 집세, 전기세, 컬렉션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전액을 대주는 파격적인 지원이 뒤따랐다.

더모델즈 정소미 실장(왼쪽)과 디자이너 홍은정, 디렉터 최순일(오른쪽)
지난 9월 17일 런던에서 브랜드 '은정(Eun Jeong)'의 2011 F/W 컬렉션을 마친 그녀가 서울패션위크의 초대로 한국을 방문했다. 쇼 하루 전인 10월 22일, 밤 늦게까지 리허설에 몰두하는 디자이너 홍은정을 만났다. 이제야 은정이라는 이름에 덮여 있어 잘 보이지 않았던 그의 디자인을 제대로 응시할 준비가 됐다.

디지털 프린팅 기법으로 화려하게 옷을 덮고 있는 무늬의 정체는 '영국의 정원'이다. 온통 물감을 흩뿌린 듯 초록과 빨강, 노랑, 검정이 신선하게 부딪혔다. 휘날리는 천 조각들은 일부러 정교하지 않게 떼다 붙인 듯, 잡아 뜯은 듯, 주렁주렁 단 듯 엉성하게 붙어 있었다. 쇼의 주제는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어린 아이가 엄마의 옷장에서 꺼내 입은 옷이다.

색이 화려하다. 원래 순백의 컬렉션으로 유명하지 않나. 프린지 우승 컬렉션도 그렇고.

춘하 컬렉션에서 색을 쓴 건 처음이에요. 가볍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늘 하얀색만 사용했는데 사람들이 이걸 보고 홍은정의 옷이라고 생각할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손으로 일일이 잡는 드레이핑과 워싱, 커팅을 여러 번 거친 레이스는 그대로 유지했어요.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드레이핑과 레이스는 기본적으로 제 옷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에요.

옷을 보면 묘한 느낌이 든다. 일단은 한국적 감성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다는 느낌. 여성스러운 건 아닌데 그렇다고 파워풀하지도 않고, 섹스 어필과도 전혀 무관한 것 같다.

제가 원한 게 그런 거에요. 남들이 제 옷을 보고 여성스럽다는 말을 많이 해요. 드레스가 많으니까. 그런데 전 아니라고 우겨요. 제 옷의 기본적인 감성은 빈티지인데 저는 빈티지는 여성스러움과는 일단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고 남성스러운 것도 아니죠. 빈티지에서 나오는 묘한 감성, 이게 제 시그니처라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적 디자인이 나오는 건 당연하겠지만 영국에서는 굳이 제 옷에서 동양적 느낌을 찾지는 않는 것 같아요.

프린지 우승을 거머쥐게 된 2008년은 디자이너 홍은정에게 잊을 수 없는 해이겠지만 너무 이때의 이야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게 서운할 것 같다. 그 후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

우승 후에는 그야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작년 12월만 해도 한달 반 동안 65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냈어요. 런던 쇼가 끝나면 바로 파리 트레이딩 쇼로, 또 바로 뉴욕 쇼룸으로, 그리고 일본, 그 다음에 상하이, 여기까지 왔는데 한국에 안 들를 수 없으니 한국까지 방문 후 영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의 반복이었죠.

그런 일정은 자비로 충당하는 건가.

전부는 아니지만 BFC(영국패션협회)에서 많은 부분을 지원해 줘요. 뉴욕 쇼룸의 경우 그 안에 '영국 쇼룸'이라고 해서 BFC가 선정한 디자이너 20명의 전시장을 따로 마련해 주는 거에요. 디자이너들은 몸만 가면 홍보부터 판매까지 다 알아서 해주죠.

지금 한국에는 홍은정의 옷을 파는 곳이 없다. 세계 어디어디에서 '은정'의 옷이 팔리고 있나.

일단 네타포르테(럭셔리 패션 쇼핑몰) US와 UK에 있고요, 뉴욕의 데뷰, 베이루트의 타텐, 쿠웨이트의 디자이너 하우스, 이탈리아의 리다, 그리고 런던의 셀프리지 백화점에 들어가 있어요. 한국에는 아직 없어요. 은정이라는 이름이 하도 흔해서 오히려 관심을 못 받는 것 같아요(웃음).

이 중 '은정'과 제일 감성이 잘 맞는 나라는 어디인가

중동도 우리에게 무척 감사한 고객이지만, 아무래도 네타포르테 영국이 제 옷을 잘 이해해주는 것 같아요. 19세 때 처음 런던 공항에 내렸을 때의 감정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영국은 정말 너무나 자유분방한 나라에요. 트렌드라는 게 아예 없죠. 버버리 프로섬과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같이 입는 나라니까요.

유명 디자이너는 있지만 대표 디자이너는 없어요. 한 가지 트렌드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인 디자이너들이 데뷔하기 쉽고 또 그만큼 쉽게 사라져요. 신기한 건 매년 새로 등장하는 디자이너가 수백 명이 넘는데도 대중이 이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는 거에요.

시내 전체가 다 의류 쇼핑몰로 뒤덮여 있고 드넓은 인도는 쇼핑객들로 꽉 차서 돌아다니기도 힘들죠. 런던 사람만큼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드물 거에요.

2004년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디자이너 홍은정의 무명 시절이라고 생각해도 되나?

한국에서 27세 때 제 첫 컬렉션을 열었어요. 사실 그때의 경험, 내 손으로 회사를 꾸렸다는 사실이 지금 너무나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이를테면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는 것, 안 될 것과 될 것을 구분해서 재빨리 포기하고 나머지를 붙잡고 추진해 나가는 능력들이 키워진 것 같아요.

요즘 영감을 주고 있는 재미있는 것들이 있다면.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이 패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 머리 속에서 끄집어내 디자인을 하는 건 이제 한계에 부딪힌 것 같고, 이제부터는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나가는 사람이 스웨터를 묶은 모습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죠. 저번 휴가 때는 2주 정도 매일 같은 전시장에 가서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있다가 왔어요. 나중에 필기한 것들을 훑어 봤는데 제 상태에 따라 매일 느끼고 본 것이 다르더라고요.

한국 여자들이 디자이너 홍은정에게 옷 잘 입는 법을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난 어떻게 입어야 어울릴까, 이 스타일이 나에게 맞을까? 라는 질문 자체가 불필요해요. 답은 자신이 알아요. 입었을 때 자기가 편한 게 최고에요. 유명한 스타일리스트가 강력 추천한 옷이더라도 스스로 불편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중요한 날 작정하고 꾸몄을 때 평소보다 더 어색하고 안 예쁜 것처럼 생각이 너무 많으면 안돼요.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