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와 협연 이스라엘 필하모닉 아시아 투어 서울공연으로 마침표

지난해 소프라노 조수미와의 협연을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했던, 마에스트로 주빈 메타(74)가 건강한 모습으로 한국 관객들을 찾았다. 상하이, 방콕, 도쿄 등에 이은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3주간 아시아 투어의 마침표는 서울 공연이 찍었다.

지난 13일과 14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을 위해 내한한 주빈 메타의 기자간담회가 11일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렸다. 공연 전 "무척 기대된다"며 고무된 표정을 지었던 그는 공연에서도 화려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1977년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음악감독을 맡은 이후, 1981년 종신 음악감독으로 자리한 주빈 메타. 그동안 3000 회가 넘는 공연을 해온 이스라엘 필과 공연 내내 찰떡 호흡을 자랑했다.

주빈 메타가 직접 제안해 이번 공연에서 협연한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자신의 대표 레퍼토리인 라흐마니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이틀간 열린 연주에서 이스라엘 필은 각각 말러 교향곡 1번 '거인'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들려줬다. 이들 작품은 이번 아시아 투어에서 이스라엘 필이 중점적으로 연주하는 레퍼토리이다.

기자간담회에서 주빈 메타는 이 두 작품을 이같이 설명했다. "말러와 스트라빈스키는 무척 다른 작품이지만 여전히 신선하다는 점에서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빈 메타와 이스라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두 작곡가가 모두 20대에 쓴 작품이라는 공통점도 있지요. '봄의 제전'은 작곡된 지 벌써 10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음악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죠. 말러의 '거인'은 하이든부터 시작된 비엔나 시대를 종결하고 교향곡의 새 시대를 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도 출신의 주빈 메타는 음악을 통해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지휘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걸프전이 한창인 1991년, 전쟁의 포화를 뚫고 이스라엘에서 이스라엘 필을 지휘하기도 했으며, 이스라엘 필을 이끌고 구소련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1999년에는 UN의 '평화와 관용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는 평화의 메시지를 잊지 않았다. 통역관에게 'peace'를 한국 말로 어떻게 발음하는지를 물어보고는 '평화'를 정확히 발음했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굴곡진 역사를 가지고 있지요. 이스라엘 필은 아랍인과 유대인 앞에서 수백 차례 연주해왔습니다. 우리가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서로 다른 언어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만드는 것이지요. 몇 년 전 동생인 뉴욕 필하모닉 사장 자린 메타가 뉴욕 필의 평양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한국의 오케스트라는 북한에서, 이스라엘 필은 중동 국가에서 공연하면서 특별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음악 교육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진 마에스트로는 이스라엘 북부 지역 두 곳과 인도 뭄바이 한 곳에 학교를 세워 음악에 재능있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스라엘에 지어진 학교에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모여 공부하고 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아이들이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주하기를 기대합니다. 변화는 시작됐습니다." 그는 힘주어 말했다.

그는 최근 세계적으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음에 염려를 표하기도 했다. 재능있는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꾸준히 활동하기 위해서는 음악 관계자들의 획기적인 프로그램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빈 메타가 의학공부를 그만두고 빈 뮤직 아카데미에서 지휘를 공부하기 위해 떠난 것이 18살 이다. 70대인 지금까지 화려하고 정력적인 지휘로 청중을 사로잡는 그에게 지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오케스트라석에 앉은 뮤지션들, 협연자들, 그리고 그들을 통한 청중들과의 소통.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지휘법도 개성이라기보다 '모든 것은 음악에서 비롯된다'고 그는 늘 강조해온 바 있다.

60여 년 가까이 쉼 없이 무대에 올라온 그는 5년 전 해외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난 지휘를 멈출 수가 없습니다. 청중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의무감과 바람이 있거든요. 그래서 지휘 일정을 줄일 수도 없군요"라고 말한 바 있다. 때문에 그의 일정은 여전히 빽빽하다.

올해 12월에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공연이, 내년 2월에는 미국 투어가, 여름 한 달 동안은 유럽에서 공연이 이어진다. 더구나 내년은 주빈 메타가 이스라엘 필을 지휘한 지 50년, 이스라엘 필이 설립된 지 75년이 되는 해이다. 내년 7월과 12월 다니엘 바렌보임과 핀커스 주커만, 발레리 게르기예프, 쿠르트 마주어 등 세계적인 지휘자와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페스티벌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