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평론집 출간… 사회 현실 풍자 네 번째 시집 도

권혁웅 한양여대 교수
흔히 고전을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한다. 반대로 베스트셀러가 꼭 사회 이슈로 부각되거나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도 아니다. 이러저러한 서점들의 '베스트셀러 1위'로 발표된 책이 몇 년 지나면 제목도 가물가물한 사례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요컨대 책의 독자 수와 영향력은 별개일 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10년간 국내 시집 시장이 반토막 났다는 비관 섞인 진단과는 별개로 꼭 같은 기간, 새로운 감성의 시인들이 '한국 문단에 벼락처럼' 쏟아졌고, 이들은 기존 우리 서정시와 그 모양새를 달리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더불어 이 시인들의 작품을 해설하는 젊은 비평가 그룹도 성장했다.

새 시(詩)는 새 이론에

는 최근 10년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현장 평론가다. 그의 평론집 제목인 '미래파'는 이제 2000년대 문학사를 정리하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됐다. 얼마 전 그가 두 번째 평론집과 네 번째 시집을 냈다. 평론집 제목이 <시론>, 즉 시 이론이다. 이 책 서문에 그는 이렇게 썼다.

'시를 읽고 쓰고 가르치면서 새로운 시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기존의 시학 이론서들이 현재의 시들을 설명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세상도 시도 너무 많이 변했다. 더욱이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변화의 폭은 더욱 커졌다.'

근래 새로운 시 형식은 세대적 파격이 아니라, 시대 변화에 따른 결과이고 이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란 진단으로 들린다. 매주 시집을 읽고 작가를 만나는 기자도 인터뷰를 하며 한 평론가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생님, A시인은 현학적으로 어렵고, B시인은 과학적으로 어렵습니다."

이들의 작품 형식이 다른 감은 오지만, 기사를 쓸 때 이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이 점에서 <시론>은 새롭고 난해한 시들의 '독해 매뉴얼'로 읽힌다.

"국내 문학계에서 쓰는 시론서의 틀이 1948년 월렉과 워렌이 지은 <문학의 이론>이에요. 우리가 익숙한 건 서양 개념이니까, 이 개념을 버릴 수는 없을 것 같아 '이 개념들을 우리 시를 설명할 수 있는 틀로 이용하겠다, 대신 우리 실정에 맞게 명료하게 쓰겠다' 이런 생각으로 썼죠. 구상한 건 8년, 실제 쓴 건 5년쯤 됐습니다."

그는 우선 기존 서정시 해설에서 강조한 '시적 화자'에서 벗어나 '시적 주체'로 개념을 확장하고 시를 감상하라고 말한다. 두 번째, 시의 주체가 관찰하는 대상, 객체에 초점을 맞추어 다시 보고, 이들 사이에 발생하는 수직·수평의 관계에 주목해 보라고 말한다. 주체, 객체, 수직관계, 수평관계. 요컨대 이 4개의 키워드로 대부분의 시는 풀이가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최근 시인들의 특징 중 하나는 시가 길고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가 아는 상식적인 이야기가 전혀 아닌 이야기들이 이어지는 거예요. 책에서 '몽타주 구성'이라고 썼는데, 하나의 모티프를 잡고 시를 전개해 나가는 기법이죠. 김경주나 이영주 시인의 시가 그렇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인 자기 문체의 고집을 내세우려는 시인들이 있어요. 김행숙이나 이장욱, 조연호 시인들의 작품이 그렇죠."

유동하는 시대, 떠도는 소문들

권혁웅 교수는 여러 시인들의 시집 후반에 해설을 썼다. 편집위원으로 있는 <문예중앙>을 비롯해 각종 문예지의 집필자로도 활동한다. 때문에 독자는 그를 시인보다 비평가로 기억하지만, 사실 평론집보다 시집을 더 많이 냈다. 만화, 에로비디오 같은 문화코드를 통해 1980년대를 조망했던 시집 <마징가 계보학>은 8쇄를 찍었을 만큼 주목받았다.

자신이 명명한 미래파와는 별개로 그는 "제 본령은 서정시"라 말했는데, <시론>과 함께 낸 네 번째 시집 <소문들>은 이전 세 권의 시집과 궤를 달리한다. 1인칭 화법으로 회고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던 기존 모습과 달리 이번 시집에서 사회 현실을 풍자하는 시편들을 선보였다.

'최대 유파는 공중(恐衆)인데, 혹자는 이를 공인중개사의 약자라고도 한다(…) 최근 정리해고와 의술의 발달로 그 수가 더욱 늘어 미래의 중원은 공중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참요까지 생겼다.' ('소문들-유파(流派)' 중에서)

'시치미는 꼬리표다 졸던 간호사가 시치미를 떼자 류(柳)와 박(朴)은 운명을 맞바꾸었다 신생아는 누구나 똑같다 조그맣고 울고 놔두면 버려진다 어린 개와 어린 늑대처럼"('드라마 3-개와 늑대의 시간' 중에서)

얼핏 말놀이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가 <시론>에서 강조한 '주체'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최근 시인들의 시에서 주체는 한 명이 아니다. 황병승이 '내 안의 무수한 나'로 분화된 주체들이 쏟아낸 말을 담아낸다면, 김행숙의 시에는 끊임없이 유동하는 주체가 등장한다.

시집 <소문들>의 시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이 사회를 살고 있는 불특정 다수 중 한 명이다. 마치 이 사회의 구성원인 언론이 나름의 기준으로 '객관적 사회'를 그리려 분투하듯, 시인은 '세계 관찰자'의 입장에 서서 이 시대를 이야기 한다. 대다수 시집들은 시를 통해 일상의 언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언어 전복'에 초점을 둔다.

반면 이 시집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단어, 사회적 징후를 보여주는 상징들을 통해 시대 공통감각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둔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누가 8:8)"와 "나는 이렇게 들었다" 사이에서 내 시는 위태로웠다. 소문이란 숨기면서 풀이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숨은 그림 찾기 식의 글쓰기가 필요했다.' (시집 <소문들>에 붙인 산문 중에서)

"<마징가 계보학>을 쓸 때는 어느 한 시절의 시간이나 공간을 복원하려고 했다면, 이번에는 현재 삶에 대한 문제, 조금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한 지점에 대해 드러내려고 했어요. 그렇다고 제가 이전에 어떤 사회적 발언을 많이 한 사람은 아니라서, 시를 쓸 때 사회문제를 떨어뜨려 놓고 보게 되려 했죠."

표제인 '소문들' 연작을 비롯해서 '가정요리대백과', '야생동물 보호구역', '드라마', '멜랑콜리아', '기록 보관소' 등 68편의 시가 4부에 나뉘어 담겼다. 익숙한 언어들을 낯설게 조립하는 이전의 방식은 무협지 등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된다.

2000년대 현장 평론가가 쓴 시 읽기 매뉴얼과 시집. 두 권의 책은 지금 우리 문학계 단면을 보여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