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86) 뮤지컬배우 김준현일본 사계 간판 배우, 국내 복귀 후 500대 1 경쟁률 뚫은 기대주

'신사와 괴물'이 또 함께 돌아온다. 2004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3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베스트셀러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이달 말부터 다시 무대에 오른다. 캐스팅도 모두 끝났다.

초연 때부터 자리를 지켜온 류정한과 폭발적인 가창력의 홍광호, 그리고 전역과 함께 곧바로 복귀한 슈퍼스타 조승우의 가세로 그 어느 때보다 호화 멤버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지킬 앤 하이드> 마니아들의 반응은 역시 다르다. 기존 스타들에 대한 기대도 물론 여전하지만, 팬들이 이번 공연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배우는 새로운 지킬에 뽑힌 김준현이다.

<지킬 앤 하이드>는 매번 신구 캐스팅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팬들의 관심과 기대감을 끌어올리며 인기를 지속해왔다. 그래서 이미 익숙해진 기존의 '스타 지킬'들과 다른 매력을 보이는 새로운 지킬이 매 공연마다 관심을 받는다. 이번엔 김준현이 그 시험대에 올랐다.

부산과 서울의 시립극단에서 활동하던 김준현은 2005년 일본의 극단 사계에 입단해 <라이온킹>의 무파사 역으로 데뷔해 출발부터 이목을 끌었다.

이후 <캣츠>의 럼 텀 터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아이다>의 라다메스, <에비타>의 체 게바라 역 등 굵직한 작품에서 잇따라 주역을 따내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한국 배우가 주요 배역을 맡은 적은 종종 있었지만 타이틀 롤을 연기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김준현은 금세 뮤지컬계가 주목하는 신성으로 떠올랐다.

큰 키와 좋은 체격에서 발산되는 카리스마 넘치는 발성과 노래 실력으로 사계의 간판 배우로 활동해온 김준현은, 그러나 아직 한국 무대에서는 낯선 이름이다.

그가 국내 관객에게 얼굴을 알린 것은 올해 공연됐던 뮤지컬 <잭 더 리퍼>의 앤더슨 역을 통해서였다. 워낙 스타 캐스팅이 많았던 작품인 만큼 신인배우가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김준현은 난무하는 스타들의 사이에서도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자신만의 매력적인 가창력을 과시하며 관객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국내 복귀 후 두 번째 공연 만에 무려 500대 1의 경쟁을 뚫고 지킬 역을 따낸 것은 이런 탄탄한 실력에서 비롯된다.

선과 악을 넘나드는, 감정의 파고가 큰 캐릭터인 탓에 지킬은 연기력과 가창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여야 하는 역할이다.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욕심낼 수밖에 없는 배역이다. 하지만 김준현은 의외로 담담한 자세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포즈 하나, 호흡 하나에까지 집중하며 차근차근 자신만의 캐릭터를 준비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는 "기존의 지킬에서 크게 벗어나기보다는 우선 대본과 악보에 충실하며 지킬이라는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저만의 지킬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갑자기 건조해진 날씨 탓에 성대 관리와 건강에 신경 쓰며 매일 오전 11시부터 밤 9시까지 레슨을 거듭하고 있는 김준현. 파워풀하고 디테일한 노래와 연기로 극단 사계를 평정했던 그는 이번에도 새로운 지킬을 통해 스타 등용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 아직 완성되지 않은 '김지킬'의 탄생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