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키스 라프티스 국제무용협회 회장

국제무대에서 한국 무용가들의 눈부신 활약이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럼 세계인들이 바라보는 한국 춤의 위상도 그만큼 높아져 있을까.

11월 23일 '2010 아시아 무용 심포지엄' 참석차 내한한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CID-UNESCO) 알키스 라프티스 회장은 이에 대해 "세계가 한국 차는 알지만 한국 춤은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차가 지금의 위상을 갖기까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것처럼, 춤도 소수의 무용단이 투어를 가는 수준이 아니라 한 산업에서의 수출처럼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프티스 회장의 말은 오늘날 문화예술의 활성화에는 순수하게 내적인 수준만이 아니라 경영이나 기획, 행정 같은 외부적 요건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라프티스 회장을 비롯한 현 국제무용협회를 이끄는 구성원들의 면면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국제무용협회의 첫 번째 회장은 독일의 무용가이자 안무가 쿠르트 요스(Kurt Joos)였지만, 세월이 흘러 네 번째 회장직을 맡고 있는 알키스 라프티스는 현장 예술가가 아닌 이론가 출신이다.

아시아 무용단 창단을 논의하는 각국 관계자들
그는 "실제로 관심이 있는 분야는 춤의 예술적인 관점보다는 행적적인 면"이라고 밝히며 "특히 예술경영에 많은 관심이 있어서인지 협회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도 대부분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세계 무용계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발레와 현대무용으로 양분되어 있는 무용계의 사정상 아시아 지역은 국제 무대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 국제무용협회 역시 유럽(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진출했지만, 아시아에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라프티스 회장은 이와 관련해 "앞으로 아시아에 대한 비중을 높여갈 것"이라는 심중을 밝혔다.

이번에 그가 내한한 것도 이런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나아가 아시아의 춤을 세계와 연결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아시아문화중심추진단 사업의 일환인 이번 심포지엄은 2012년에 '아시아 무용단' 창단을 위한 사전 작업이다.

좋은 자원을 많이 갖춘 한국이 세계 진출에 앞서 아시아를 선점하고, 한국본부가 아시아의 춤 거점이 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라프티스 회장은 한국 주도의 아시아 무용단 창단만으로는 국제무대에서 한국 춤의 위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춤 예술에 있어서도 산업적 마인드를 가질 것을 주문했다.

"북미나 유럽의 각 주요 도시에는 인도 춤이나 탱고와 같은 학원이 없는 곳이 없다. 이들은 20년 동안 자국의 무용홍보를 해오고 있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도 자국 춤을 홍보하기 위한 정책을 갖고 있다. 프랑스 대사관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 프랑스 춤을 가르치는 교사를 파견했다. 투자비는 나중에 훨씬 큰 금액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하나의 수출정책이 아닐까."

이를 위해 한국 춤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세계와 소통하기 위한 태도 변화다. 라프티스 회장은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한국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는데 영어로 된 웹사이트가 거의 없었다며 이런 기초적인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각 나라별로 대략 천 명 중 한 명이 프로무용수다.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수인데, 이들의 정보가 웹을 통해 공유되지 않는다면 외부 또는 다른 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그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14개국의 아시아 관계자들을 만나며 아시아 춤 상황을 알게 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했다. 그는 이번 아시아 무용단 창단을 통해 국제무용협회 한국본부가 한국 춤을 아시아에 널리 전달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격려의 말을 건넸다.

현재 아시아 국제무용협회 중 섹션 활동을 하는 본부는 단 두 곳. 그 두 곳이 바로 남한과 북한이다. 최근 연평도 사태와 관련해 남북한 그 어느 때보다 일촉즉발의 위기에 휩싸여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라프티스 회장은 "서울에서 1998년에 제13회 CID 총회가 열렸는데, 그보다 앞서 1992년에 열린 평양 총회에 방문한 적이 있다"면서 남북한에 대한 감상을 털어놓았다.

이와 관련해 그는 "춤의 힘은 대단하다. 정치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춤을 통해서는 할 수 있다"며 유고슬라비아와 이스라엘의 예를 들었다. 전쟁이 끝난 유고슬라비아에서 각 지역별 무용수를 초청하여 공연을 하며 상처를 회복하고 원만하게 통일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첨예한 분쟁 지역인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도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종교와 인종이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무용단을 이루어 평화를 춤추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과 사정이 비슷한 키프로스에서의 사례도 의미가 깊다. 터키와 그리스 사이의 분리된 섬인 키프로스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 경계선이 존재하듯 분단의 경계가 존재하는 곳.

국제무용협회는 두 곳으로 나뉘어진 키프로스 무용수들을 각 지역별로 모아 하나의 무용단을 만들어 화합을 추진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라프티스 회장은 "이런 춤의 힘을 통해 한국도 통일되기를 희망해본다"며 개인적인 바람을 내비쳤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