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의 각기 다른 사람으로 빙의 퍼포먼스로 표현

'푸드덕' 곧 하늘로 날아오를 듯 양팔을 위아래로 힘껏 휘젓는 현숙씨. 자신이 비둘기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하늘을 날면서 마주치는 무용수, 학생, 미술작가 등 6명의 각기 다른 사람으로 빙의되는 경험을 한다.

비둘기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점과 비둘기 현숙씨를 관찰하는 CCTV의 시선. 분산된 여러 개의 시점은 관람객의 시각을 확장시킨다.

한국의 손꼽히는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올해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작가 양아치(본명 조성진, 40)는 지난해 말에 쓴 단편소설 <빙의 소녀 이준호>를 원작으로 <밝은 비둘기 현숙씨>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서울미디어아트비엔날레와 에르메스 갤러리에서 같은 작품을 영상으로 선보인 바 있지만 지난 12월 4일과 5일 문래예술공장에서 펼쳐진 실시간 퍼포먼스라는 방식은 그의 원작과 의도에 가장 근접했다.

'귀신이 씌었다'고 표현되기도 하는 빙의. 평소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종종 퇴마사가 동원되기도 한다. 작가는 왜 빙의를 작품 속에 끌어들였을까.

그는 빙의를 광의적으로 해석했다고 했다. 설명을 듣자니, 여기서 말하는 빙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누구나 쓰게 되는 가면, 일종의 '페르소나'인 셈이다.

"누구나 가족이나 회사 상사, 혹은 동료를 대할 때 각기 다른 모습을 하게 되잖아요. 한 사람 안에 여러 모습이 있고, 때마다 다른 존재로 변하곤 하죠.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너 혹은 나답게' 살아야 하는 요구를 받게 됩니다.

간혹 '내 자신을 찾아야 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이 생겨요. 현숙씨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인간 내면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밝은 비둘기 현숙씨>에서도 그는 CCTV를 활용한다. 처음 웹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린 그는 웹이 보장해주리라 생각했던 '가상성에 대한 믿음'이 깨진 후 영상과 CCTV 등으로 매체를 이동해왔다. 그러나 그는 미디어 자체의 기술에 탐닉했다기보다 속성과 파급 원리에 주목했다.

웹에서 행했던 <해킹을 통한 미술행위>를 비롯해 국가 감시통제 시스템을 통찰한 <전자정부>, 같은 맥락에서 CCTV를 이용한 <감시드라마>와 <감시오페라>, 그리고 최근까지의 <미들 코리아> 작업에 이르기까지 겉보다 중요한 것은 안에 채워진 속이었다.

"CCTV 사용 자체를 옳다, 그르다로 판단하기보다 그 자체를 살펴보고 싶었어요. 제 나름대로 이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것도 하나의 영상 시스템이잖아요. 마치 만화책을 보듯이 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으니, 이것을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온 거죠."

거대한 미디어를 통해 그가 통찰하고자 한 것은 줄곧 '관계'였다. 그것이 권력자와 피권력자의 관계일 수도 있고, 소시민들 간의 관계일 수도 있다. 웹을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만나고자 했던 대상도 사람이었고, 거대한 미디어인 도시에도 우리는 수많은 관계에 얽혀 있다.

이번 작품에는 휴먼 네트워크가 메시지로서가 아니라, 관람객과의 소통방식으로 동원됐다. 이번에 진행된 퍼포먼스는 미리 신청한 200여 명의 관람객들에게만 공개됐는데, 주인공인 현숙씨가 직접 관람객들에게 퍼포먼스 전부터 문자를 주고받으며 공연자가 아니라 친근한 주변인물로 다가왔다. 퍼포먼스가 끝난 후에도 현숙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거대한 휴먼 네트워크는 한동안 지속된다.

"공연은 관객이 관람하는 동안 극중 사건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잖아요. 하지만 미술은 관람객을 타자화시키고, 거리 두기에 친숙한 장르다 보니 감정이입이 어렵죠. 그림을 본다고 하지, 그림에 참여하지는 않잖아요. 문자를 통해서 현숙씨와 관계하는 미시적인 네트워크가 현장에 와서 거시적인 담론을 이야기해 볼 수 있도록 한 거예요. 감시의 문제, 사람 간의 문제, 장소의 문제 이런 것들을요. 특히 이번 작품에서 녹여낸 이야기들은 미시 커뮤니티를 전제로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았어요."

양 작가는 '관계'를 탐색하기 위한 차기 매체로 단편 영화를 선택했다. 20분 길이의 단편 영화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아름답고 기이한 칠순 잔치'다.

예술가들이 영화 속 칠순 잔치에 등장해 다양한 퍼포먼스로 눈길을 끄는데, 작가는 칠순 잔치를 통해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참신한 시각을 들이댄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님 칠순 잔치는 자식으로서 응당해야 할 과제 같은 건데, 그것을 부모님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마지막 잔치이기도 한 거죠. 이것을 미술사적으로 본다면 최후의 만찬과도 연결되거든요. 최후의 만찬처럼 잔칫상을 세팅하고 12명 자식을 가진 부모의 이야기를 풀어갈 거예요. 성서 속 등장인물들이 의외로 한국 사회의 캐릭터와도 많이 닮아있거든요."

그의 작품은 늘 관람객을 생각하게 만들지만, 지속적인 사고의 수고로움은 달갑다. 흥미로운 작업을 지켜보는 일은 일종의 뇌 자극법인 셈이다.

그는 단편 영화 제작을 앞두고 있지만 이미 또 다른 작업 구상에 빠져 있다. 7년여를 들여 완성한 <미들 코리아>의 후속편이자 가상 세계가 아닌 리얼 버전이다. 오랜 논쟁 끝에 안착된 사회적 시스템이 장소를 옮겼을 때 어떤 파급력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작가적 호기심이 그를 부추겼다.

가령,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있는 4대강 사업이 스페인으로 옮겨졌을 때 어떤 결과를 낳을까 하는 의문이다.

"사회적 시스템이 안착되기까지 옳다, 그르다는 논쟁이 생겨나는데, 이것을 다른 지역으로 가져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요. 프로젝트 자체가 거대해 이것을 개인적인 범주까지 축소하는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하지만 결과가 도출된다면 귀중한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의 작품은 팔리지 않는다. 아니, 미술관이 아니면 콜렉션 할 수 없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자본주의 시대, 미술계를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술 시장에서 배제된 작가. 그의 작업은 그래서 자본의 입김과 유혹에서 자유롭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