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88) 소설가 김성중2008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작년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받아

"문학은 굉장히 작은 사물에 대해 쓰는 것이고, 스스로 분명해지기 위해 자기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나는 조용히 모든 것을 글 속에 넣을 뿐입니다."

소설가 헤르타뮐러가 지난 8월 중앙대 특별강연에서 남긴 이 말은 기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소설'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녀는 "조국 루마니아에서 차우셰스쿠 독재를 뼈저리게 경험했고 그 나라가 무너지는 걸 망명지인 독일에서 똑똑히 봤다. 하지만 문학이란 그런 경험을 고발하거나 변형하는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 말은 두 가지 뜻을 함축한다. 첫째, 문학은 현실의 기록이 아니라 단지 허구일 뿐이라는 것. 둘째 작가는 허구를 지어낼 뿐이지만, 위대한 작가는 그 작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 현실의 숨겨진 어떤 진실을 드러낸다는 것.

헤르타뮐러부터 갓 등단한 신예작가까지, 아마 세상의 모든 작가가 쓰려는 소설이란 이런 모양새일 것이다. 김성중은 이 의지를 단편 <그림자>에서 이렇게 썼다.

'난시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사물이 겹쳐있는 또 하나의 상을 만날 수 있다.'

이 작가는 대부분의 신인들이 그렇듯, 아직 몇 편의 단편을 발표했을 뿐인데, 그 작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때로는 자질구레한 일상을 섬세하게 해부하는가 하면(단편 <개그맨>), 때로 인간의 보편적 현실을 일그러뜨려 하나의 사물(단편 <게발선인장>)로 만들어버린다.

평론가 우찬제는 단편 <그림자>에 대한 해설에서 "작가의 다초점 렌즈는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견딜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가볍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무겁게 조망하는 흔치 않은 수완을 보인다"고 평했다.

소설가 김성중. 명지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20대에 <날고 싶은 나>, 등 잡지 기자와 만화 스토리텔러, 게임시나리오 작가 등 글쓰기로 할 수 있는 각종 직장생활과 퇴직, 여행을 반복하다 30세가 넘어 등단했다.

이어 <현대문학>에 발표한 두 번째 단편 <그림자>가 이듬해 <문학과사회>의 '선택, 젊은 소설'에 선정됐다. 세 번째 쓴 단편 <개그맨>으로 지난해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을 받았다. 단편집 한 권 묶지 않는 신인에게 내린 문단의 평가치고, 제법 후한 편이다.

"잘 쓴 소설은 매직아이처럼 붕 떠서 읽히잖아요. 독자가 몰입해서 읽고, 읽기 전과는 다른 상태에 도달하는데, 그걸 소설의 완성이라고 본다면, 저는 항상, '이번엔 이게 부족했구나'라고 생각해요.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있어요."

몇 편의 단편을 통해 본 작가의 소설은 크게 두 가지 패턴으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주제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어느 날 갑자기' 처하게 된 환상적 시공간과 절망적인 상황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다.

단편 <그림자>는 어느 섬 주민들의 그림자가 서로 뒤바뀌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이야기이고, 단편 <허공의 아이들>은 세상의 모든 집들이 일시에 공중부양하기 시작하며 유랑하게 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다. 이와 반대로 <게발선인장>, <개그맨>처럼 일상의 에피소드를 기록하는 투의 이야기도 있다.

이 두 패턴의 단편들은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이면을 그리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최근의 젊은 작가들이 88만 원 세대, 백수생활, 골드미스 등 자신들의 경험치를 매끈한 문장으로 버무려내는 데 집중한다면, 이 작가는 보다 정통적인 이야기 방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 작가는 말했다.

"사유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상은 끝이 시시할 수밖에 없어요. 염두하는 건 그거에요. 왜 이 캐릭터가 괴짜가 되고, 이 에피소드가 의미가 있는가. 상상에 책임을 지려면 당연히 인과가 있어야 하는데 소설을 쓰면서 몇 번씩 좌절하죠. 아직은 가능성의 최대치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해요. 결점이 적되 장점도 적은 작품과 결점과 장점 모두 엄청난 작품 중 하나를 꼽으라면, 지금 저는 후자 쪽을 선택해요."

이 신예 작가의 이야기를 문단이 주목하는 이유, 독자가 기다리는 이유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