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간 힙합의 혁명성, 마이너리티 삶의 의미 강조

소설가 은희경 하면 떠오르는 인상이 있다. 새침하고 발랄한 표정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 하면 독자들이 생각하는 기대치가 있다. 감각적이고 서늘한 이야기들이다.

12살에 이미 세상을 알아버린 깜찍한 진희(장편 <새의 선물>)부터, 거대한 몸집의 나(단편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까지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세상의 거대한 중력에 눌려 혼자 신음한다.

'넌 네 인생, 난 내 인생. 그러니까 이 고독은 오롯이 내 몫'이라 외치는 쿨한 이야기는 은희경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80년대 집단의 정치에서 90년대 개인의 도래로 우리 문학장은 옮겨갔고, 은희경의 이야기는 독자들과 행복하게 만났다. 개인주의는 90년대 한국문학을 정리하는 상징이 됐다. 작가는 말했다.

"재작년 방콕에 갔을 때, 태국 작가들이 한국의 순문학 시장을 부러워하더라고요. 태국은 자본주의가 밀려오며 대중문학시장으로 순문학 독자들이 많이 이탈했거든요. '90년대 어느 작가'로 분류되는 건 싫지만, 적이 사라지고 개인이 강조되는 상황(90년대 국내 문학계)에서 순문학 독자를 지켰다는 점에서 뿌듯했어요."

물론 은희경의 작품은 이런 문학사적 배경을 공부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미있다. 이것이 그의 소설이 갖는 장점 중 하나다. 독자보다 딱 반발 더 앞서는 작가의 감각과 지혜는 결코 읽는 이를 계몽시키려 하지 않는다. 독자는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의 소설은 언제나 젊은 독자들이 많다.

내 신간은 나의 집적물

작가를 만나기 전 그의 이전의 작품과 인터뷰를 차례로 읽는다. 중견 작가들의 작품을 이야기와 캐릭터로 나열하다 보면 일종의 포물선이 그려지는데, 은희경의 소설은 그 풍경만이 기억날 뿐 어느 한 가지 포위망으로 들어오는 법이 없다. 작가는 "나는 항상 어떤 정서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저는 이야기를 좀 힘들게 시작하는 것 같아요. 가령 어떤 사건을 쓰겠다는 게 아니라 '누구는 힘들겠구나' 그런 걸 소설로 쓰고 싶거든요. 그럼 너무 막연하잖아요. 내가 어떤 정서를 체득을 해야 하고, 그 정체성을 갖고 그 인물이 되는 과정이 힘들죠. 그리고 어떤 이야기에 그 사람을 얹어야 할지 찾아야 하죠. 이야기가 시작되면, 이미 그 인물이 이미 되어 있는 상황이라 가기만 하면 되거든요."

이렇게 한 포위망 안에 들어오지 않는 작품들을 발표하니, 그의 기사에서 '터닝 포인트'란 말이 무던히도 많이 쓰였다. 장편 <마이너리티>와 <비밀과 거짓말>을 출간한 후 가진 인터뷰 기사에서 '터닝 포인트'란 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번에 낸 신간 <소년을 위로해줘>도 어느 신문에서 이번 작품이 터닝포인트라고 썼다. 이렇게 빈번히 터닝포인트란 말이 쓰였다는 사실을 뒤집어 보면, 작가가 그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말이 된다. "이번 작품은 정말 터닝포인트인가?"란 질문에 작가가 대답했다. "그렇다기보단 늘 다른 걸 해보고 싶어요."

"소설집 <상속>을 내면서 '나라는 존재가 혼자가 아니고 지금까지 태어난 모든 인간의 집적물이구나,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지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죠. 그 다음에 쓴 장편 <비밀과 거짓말>은 3대에 걸친 이야기죠. 인간은 하나의 개인으로 부유하는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늘 다른 걸 쓰고 싶지만, 변하고 싶다는 것과 다른 의미에요. 예전의 방식에서 새로운 것을 보태서 지금의 내 소설 방식으로 진화된 것이 아닌가…. 현재 쓴 소설은 나의 마지막 집적물이겠구나…. 이번 소설을 쓰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소년을 위로해줘

작가의 어법대로 말하자면, 신작 <소년을 위로해줘>는 그의 이전 작품들의 집적물이다. <새의 선물>의 12세 소녀 진희는 15년 후 어리숙한 17세 소년 연우로 돌아왔다. <마이너리티>에서 보인 발랄한 감수성은 2010년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가령 키비의 '소년을 위로해줘' 같은 마이너리티 힙합처럼.

"그 CD를 들을 때 알았던 거예요. '힙합이란 혼자 들어야 하는 거구나. 나한테만 말하는 것 같은, 내면에서 하는 음악이구나. 이제까지 어른의 시각에서 힙합을 생각했구나.' 그런 생각에서 출발했죠. 모든 걸 해체시켜놓고 소년으로 사고 해보자."

소설 속 연우는 프리랜서 옷 칼럼니스트인 엄마 '신민아씨'와 단 둘이 사는 고등학생이다. 엄마의 여덟 살 연하 애인 '재욱 형'과 토닥거리는 게 다였던 연우는 이사를 하고, 새로 전학 갈 학교를 추첨하는 자리에서 동급생 태수를 만난다. 그리고 태수의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힙합을 듣게 된다.

'습관적으로 모든 일들에 익숙한 척 가슴을 펴지만/그 속에서 곪은 상처는 아주 천천히 우리들을 바보로 만들어'라는 10대 힙합 가수 G-그리핀의 랩(실제로는 키비의 랩) '소년을 위로해줘'는 연우의 심장을 떨리게 한다. 이렇게 힙합을 만나고 새로운 우정을 만들며 첫사랑 채영과의 만남도 시작된다. 시간이 지나고 만남과 헤어짐이 이어지면서 소년은 한 뼘쯤 자란다.

"키비란 가수랑 여러 차례 만났어요. 힙합이 원래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데, 그 중에서 키비는 언더 힙합을 하는 가수에요. 확실히 마이너리티 정서를 많이 느꼈어요. 혁명성? 순수성? 세상의 아웃사이더로 목소리를 내고자하는 자기 정체성? 그런 정서를 내 것으로 만들어 주인공이 되어보는 데 도움이 많이 됐죠."

사춘기 소년의 말투처럼 툭툭 끊어지는 문장은 소설을 중반을 넘으며 힙합의 나지막한 랩처럼 리드미컬해진다. 음악칼럼니스트 재욱 형의 글 '아버지, 힙합 좀 듣자니까요'는 소설에서 쉼표처럼 등장한다.

이 시절 청춘들의 경험과 감성, 그러니까 이 책의 주제의식을 어른의 정제된 언어로 다듬어 내는 듯하다. 문학동네 블로그에 연재할 때, 초고를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조언을 듣고 다듬었다고 했다. 그는 "가벼워졌다는 게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작가로서 경직되는 것에 경계심을 많이 갖고 있어요. 그러면 타자를 받아들일 수가 없고 소통할 수가 없으니까. 유연해지자고 생각하고 스스로 가벼워지려고 하는데, 그 점에서 이번 작품을 쓰면서 기뻤죠. 작품으로서 완성도를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경직되지 않고 타자를 받아들이면서 살려고 했다는 태도가 이 속에 들어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는 거죠."

소설은 10대들의 방황과 갈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힙합이 가진 혁명성, 마이너리티 삶의 가치와 의미를 강조한다. 고등학생인 연우, 태수, 채영, 마리뿐 아니라 연우의 엄마와 엄마의 남자친구 재욱도 기성의 세대에 편입되지 않는 경계 밖의 인물들이다.

'이 무거운 것들, 좀 벗어도 되겠죠? 묻고, 그래도 된다는 위로의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도 같다'는 작가의 말처럼, 400여 페이지 묵직한 이야기는 단숨에 읽힌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