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라운지 음악에 대한 열정

여행도 음악이 될 수 있다. 북유럽의 끝자락에서 만난 음악은 그 여정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한 달간의 여행 그리고 음악과 책. 그 세 개의 단어가 하나가 됐다.

대중음악계의 젊은 작곡가 박성일(34)은 음악을 위해 여행을 떠났다. 그가 선택한 곳은 북유럽의 핀란드와 스웨덴. 그 곳에는 그가 작곡가로서 동경했던 라운지(lounge) 음악이 은은하게 퍼지는 장소다.

"제대로 된 라운지 음악을 하고 싶었다"며 북유럽을 직접 찾아간 박성일. 49개 건반의 키보드와 헤드폰, 컴퓨터 등을 짊어지고 떠난 여행에서 그는 뜻밖에 수확도 얻었다. 음악 이외에 건축, 미술, 음식 그리고 사람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여행은 언제나 사람을 들뜨게 만들죠. 특히 여행을 떠나기 전 세우는 계획과 상상들은 말 할 수 없는 설렘이에요. 그 설렘과 동경, 감성들을 음악과 책으로 한 번에 엮어내는 작업은 꿈의 결과였죠."

과연 그는 어떤 일을 해낸 걸까.

음악을 위한 여행

일본의 뉴에이지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는 <카사(CASA)>라는 앨범으로 감미로운 재즈풍의 선율을 선사했다. 그러나 작곡가 박성일에게는 하나의 충격 그 자체였다. 사카모토의 앨범은 브라질의 향수가 철저하게 녹아들어 마치 '브라질 사람이 그들의 감성으로 만든 노래' 같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사카모토는 보사노바 앨범인 <카사>를 위해 보사노바의 대부로 불리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를 직접 방문했다. 사카모토는 조빔의 집에서 그의 피아노로 녹음을 했다. 박성일은 이를 두고 "사카모토는 일본인이었지만 그 감성과 역량은 브라질인 그 이상이었다"고 말한다.

사카모토의 음악적 매력에 빠져버린 박성일은 그에 못지않은 계획을 세웠다. 2년 전 '여행을 하면서 음악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일이었다. 평소에 라운지 음악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보자는 의욕이 생겼다.

'라운지 음악이란 호텔의 라운지에서 나올 법한 이지리스닝(easy listening) 계열의 쉬운 음악을 통칭하는 장르의 이름이다. 그래서 넓은 의미로는 클래식이 될 수도 있고 재즈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음악의 장르보단 라운지라는 환경에 적합한 공간적인 의미가 더 컸기 때문이다. 현재에 이르러 라운지 음악은 애시다 재즈(Acid Jazz)와 보사노바(Bossanova), 앰비언트(Ambient) 등의 기존 장르를 포괄해서 새로이 인식되고 있다'

박성일은 북유럽의 찬 기운 속에 소소한 감성을 그대로 느끼며 라운지 음악을 창작할 수 있었다. "북유럽은 급한 게 없다. 추운 날씨의 찬바람과 눈은 사람들에게 여유로움을 선물한 것 같았다. 그 속에서 자연스러운 여유로움이 배어나오는 라운지 음악이 탄생한 듯하다"는 그의 말은 그 곳 분위기에 한층 젖어있는 듯했다.

그는 핀란드와 스웨덴에서 만든 자신의 라운지 음악을 두고 "박성일표 라운지 음악은 크로스 오버"라고 평했다. 재즈의 성향이 강하지만 보사노바 기타 패턴을 얹어 감미로움을 더했다. 그의 곡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책 속에 수록된 은 재즈 트럼펫터 배성용의 프뤼겔 호른과 뮤트 트럼펫 연주가 달콤한 곡이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의 구시가지 감라스탄의 밤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이 곡은 라운지 음악이 어떤 색인지 잘 보여준다.

"춥고 좁은 호텔 방 안에서 헤드폰을 귀에 댄 채 키보드를 연주했던 게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어요. 사실 그런 작업은 초라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제게는 아련한 추억이죠. 음악을 위해 여행을 떠나고 또 책을 쓰고···. 저는 복 받은 사람인 것 같아요."

음악을 위한 책

박성일의 이번 작업이 더 눈길을 끄는 이유는 책 속에 음악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 여느 책들처럼 CD를 책 뒤에 붙이는 1차원적인 작업이 아니다. 그는 책의 중간 중간에 여행을 하면서 영감을 받은 곳에 자신이 만든 곡을 삽입해 독자들과 함께 그 감성을 나눴다.

음악을 삽입했다는 건 말 그대로다. 그는 2차원적 코드인 QR(Quick Response)코드에 음악을 담아 책 속에 숨겨 두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시도를 해낸 것이다.

"정작 음악을 위한 여행을 했지만 어떻게 음악을 소개할지는 구체적으로 논하지 않았었죠. QR코드로 음악을 넣은 시도 자체가 획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시작으로 음악의 유통 경로가 조금은 변화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어요."

그는 <노르딕 라운지> 속에 9곡의 곡을 담아냈다. 스톡홀름의 노벨 박물관을 둘러보고 난 이후 만든 <1914년 어느 과학자의 하루>나 조용한 호수 위에 얼음 조각이 서서히 흘러내려가는 평화로움은 라는 곡으로 되살아났다.

이들 모두 그가 직접 찍고 쓴 한 장의 사진과 글로 게재돼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았다. , , <거짓을 말하고>, , 등도 책 속에서 북유럽의 감성을 느낄 때쯤이면 적재적소에 등장해 독자에게 음악을 권한다.

그 내용에 맞는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는 건 QR코드의 또 다른 매력이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QR코드를 찍을 때면 독자는 책과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을 느낄 것이다.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너무 편중되어 있어요. 각 장르의 다양한 곡을 대중이 쉽게 들을 수 있는 루트가 없다고 봐요. QR코드의 새로운 시도가 언더그라운드나 인디 밴드들의 곡들을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유통구조를 낳았으면 해요."

그는 <노르딕 라운지>를 다른 나라에도 소개할 계획도 갖고 있다. 태블릿PC용 전자책으로 만들어져 책과 음악, 영상이 합쳐져 영어, 일본어, 핀란드어 등으로 번역돼 5개 국어로 소개될 예정이다.

또 '스마트폰이 없으면 음악을 들을 수 없나?'라는 문의가 많아 16일부터는 디지털 음원으로 인터넷에 공개한다. 그가 (백제예술대)학생들에게 강의했던 '원 소스 멀티 유즈'를 직접 실현하는 계기를 만든 셈이다.

그는 또한 드라마 <햇빛 속으로>, <네 멋대로 해라>, <이 죽일 놈의 사랑>에 이어 최근 <성균관 스캔들>의 OST를 작업하며 쌓인 노하우를 더 큰 음악의 열정으로 쏟아낼 예정이다. 배용준의 여행 에세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의 다큐멘터리 OST 작업을 거의 마무리하고 내년 초 일본 공연도 앞두고 있다.

내년에는 그가 책 속에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음악도시'로 소개했던 쿠바 여행도 계획 중이다. 라틴음악의 또 다른 한국 버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음악을 위해 여행을 하고 책을 썼듯 다양한 분야에서 음악을 전하는 일을 계획하고 있어요. 조만간 '구두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을 갖고 태어나는 구두가 만들어질 예정이에요. '스토리가 담긴 구두'가 시중에 팔리는 게 더 이상 꿈은 아니더라고요. 새로운 시도로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대중음악을 좀 더 널리 알리고 싶어요."

작곡가 박성일은…

1996년 19세의 나이로 그룹 마로니에의 앨범에 작곡가로 참여하면서 대중음악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드라마 <햇빛 속으로>, <네 멋대로 해라>, <봄날>, <이 죽일 놈의 사랑>, <성균관 스캔들>의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 OST를 만들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