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현대문학상 수상… 문학성과 안정적 형식 인정받아

2011현대문학상 수상자로 진은영 시인이 결정됐다.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한다는 건 적어도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수상자의 작품이 일정 수준 이상의 '문학성'을 성취했다는 것.

둘째 수상자의 문학성이 기성세대(심사위원)의 미적 안목을 만족시킬 정도로 안정적 형식이라는 것. 원로 문인들이 이해할 만큼 2000년대 시인들의 시적 감각이 주류로 인정받은 것인가? 아니면 수상자인 진은영의 미감이 달라진 것일까?

유종호 문학평론가는 심사평에 "진은영 시편은 정감도 있고 소통의 시원함도 있다"고 썼다.

그 사전을 읽는 법

요즘 시집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가끔 이런 질문을 듣는다. 고향과 어머니 그리기 노래, 현실 모순을 드러낸 노래, 자아의 내면을 고백한 노래, 일상의 찰나를 재현한 노래. 공교육 체계에서 배운 시란 대략 이런 모양새일 텐데, 이른바 '요즘 시'라고 불리는 2000년대 이후 등단한 시인들의 시는 이런 테두리를 벗어난다.

"추상화 보는 법이 있습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감상하세요." 이런 말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그림 보는 방식에 일정한 법칙이 있진 않지만, 추상화도 사조와 작가의 활동무대, 그림이 그려진 시기에 따라 감성의 결이 제각각이니까.

진은영의 시집은 단어장과 같다. 그녀의 시는 하나의 이야기로 서술하는 게 아니라 감각의 덩어리를 병렬로 나열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연은 개별적 노래로 들리지만, 연과 연 사이 아득한 공간이 내러티브를 만든다.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있지'는 제목이 상징하고 있다.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서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중에서)

그녀의 첫 번째 시집의 표제작인 이 작품은 그녀가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첫 시집은 '혁명-사랑-시'의 삼각형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가하면, 한편으로 '아버지-엄마-할머니-나'로 이어지는 유년의 가계에 대한 추억이 재현된다. 가족이란 제도, 20대 대학시절, '혁명의 실패'라는 굴곡의 시간을 관통하며 시집은 우울의 분위기, '멜랑콜리'를 드러낸다.

음악을 제대로 들으려면 반드시 앨범으로 들어야 한다. 잘 만든 앨범은 개별 곡의 완성도가 뛰어날 뿐 아니라, 이 노래와 저 노래를 연이어 들을 때 발생하는 감각을 염두하고 순서가 짜여있다. 곡의 순서뿐만 아니라 곡과 곡사이의 공백, 즉 소리와 소리 사이에 느껴야 하는 여운까지도 치밀하게 계산된다. 디지털 음원 따위가 해낼 수 없는 경지다.

시도 제대로 읽으려면 시집으로 읽어야 한다. 시인은 각각의 시를 개별적으로 쓰지만, 이 시가 모여 시집으로 묶이면 또 다른 감각이 발생한다. 그녀의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은 총 3부로 되어 있다.

1부 멜랑콜리아는 시인의 미적 형식을 선명하게 드러낸 시, 2부 미친 사랑의 노래는 시인의 자의식을 드러낸 시, 3부 문학적인 삶은 미학과 정치를 함께 고민한 시들을 담았다. 각 부에 실린 시편은 작품의 앞뒤 여운을 정교하게 가늠해 담긴 것이다.

순서대로 시집 한 권을 읽고 나면 이 시인의 미감, 현실을 보는 태도, 고민의 지점이 보인다. 그녀는 "진부한 말이지만 시집은 삶의 기록라고 생각한다. 내 세계를 구성하는 걸 다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불타는 지느러미/ 나는 시인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르지 마세요/ 듣기 싫어요'('Summer Snow' 중에서)

'우리는 목숨을 걸고 쓴다지만/ 우리에게/ 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다/ 그것이 비극이다/ 세상을 허리 위 분홍 훌라우프처럼 돌리면서/ 밥 먹고/ 술 마시고/ 내내 기다리다/ 결국/ 서로 쏘았다' ('70년대 産' 전문)

문학과 정치 사이

진은영의 시는 2000년대 등단 시인 다수가 그렇듯, 새로운 형식과 감각으로 호명됐다. 때문에 언제나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주목했던 시였고, 어떤 시인에게 붙여도 들어맞을 '감각'과 '난해함'이란 수식어는 진은영의 시에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그녀의 시를 말할 때 감각보다 정치란 말을 더 많이, 더 상징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아마도 재작년 이맘 때부터일 게다. 용산참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 일련의 시국사건을 쓰나미처럼 겪고, 밀실 속 젊은 작가들은 거리로 나왔다.

69작가 선언, 용산참사 1인 시위, 두리반 낭독회 등의 활동은 이들에게 새로운 고민을 던져주었다. '첨예하게 미학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작품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문학계 최대 이슈가 됐다.

진은영 시인이 2008년 <창비> 겨울호에 발표한 산문 '감각적인 것의 분배'는 이런 고민을 드러낸 상징적인 글이 됐다. 앞서 본 '70년대 産'과 같은 시는 이런 일련의 활동 이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이때부터 평단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작품이 변했다고 말하는 친구들에게 가끔 '내 시집 봐봐. 원래 그런 점이 있었어'라고 말해요. 변했다는 건 선입견 때문에 그런 거지…."

물론 일련의 활동이 그녀를 변하게 한 점도 분명 있을 터다. 전문가와 문학애호가들만 보는 문예지와 인터넷신문에 발표한 시가 같은 모양새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녀는 말했다.

"시가 쓰인 시기에 마주한 사건, 발표된 지면 때문에 내 작품이 간섭현상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긴 하죠. 쉽게 써야겠다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소통 욕구가 강해졌죠."

당연한 말이지만,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더 쉬운 말과 더 대중적인 형식으로 시를 써야 한다. 작가의 문학적 지평이 넓어질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못 쓰면 문학도 정치도 아닌 잡문이 된다. 현대문학상 수상작은 그 고민의 지점에서 쓰인 작품이다.

'엘뤼아르보다 박노해가 좋았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상처들에서// 연필보다 망치가 좋다, 지우개보다 십자나사못/ 성경보다 불경이 좋다/ 소녀들이 노인보다 좋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책상에서/ 분노에게서/ 나에게서' ('그 머나먼' 중에서)

"문학과 정치 절충의 형태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그 갈등에 자기를 던져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럼 내가 늘 원했으나 아직 성취하기 못했다고 생각하는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어떤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죠. 지금은 처음 시도하니까 실패하기도 하고 잘 못하기도 하고."

호명. 그녀와 인터뷰하는 내내 이 말이 떠올랐다. 똑같은 시집이 제각각 '감각'과 '정치'란 이름으로 불린 몇 년 동안, 진은영의 시집 두 권은 변한 것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작가의 생활과 현상을 보는 태도, 미감이 바뀌기도 할 것이다.

그녀가 발표한 산문 하나가 그녀의 모든 시를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과 같이 또 다른 이름으로 그녀의 작품이 호명되기도 할 것이다.

"세계를 향한 여러 사건을 다루면서 어떻게 형식적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지 고민"이라고 말했던 그녀에게 지면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그냥 자기 길만 가요. 뚜벅뚜벅. 남들이 뭐라 그러든 말든 당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아, 그녀는 벌써 알고 있는 것 같다.

'시인은 윤리적이거나 정치적인 의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각에 정직할 따름인 존재입니다.' (수상 소감 중에서)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