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성 연출가두산 아트랩 선정작 상반기 공연… 후속 편격

2010년 4월, 네이버에 '광화문 괴물녀'가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라왔다. 헝클어진 머리, 오물 위에서 뒹군 듯한 행색의 한 여자는 광화문과 청계천 일대를 활보했다.

네티즌들은 '노숙자냐, 광고냐, 행위 예술가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이것은 <도시이동연구 혹은 연극-당신의 소파를 옮겨 드립니다>라는 퍼포먼스였다.

서울변방연극제와 크리에이티브 바키(VaQi)가 공동 프로듀싱한 작품으로 의도와는 달리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당시 연출을 맡았던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이경성(28) 연출가는 이 작품으로 2010년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을 수상했다.

2011년 1월 초, 그가 신작 <24시-밤의 제전>으로 돌아왔다. 두산아트센터에서 창작자를 발굴,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두산 아트랩' 선정작으로, 본 공연에 앞서 50분 정도로 신청자에 한해 무료 공개됐다.

이는 <당신의 소파를 옮겨 드립니다>의 후속편 격이다. <당신의 소파..>가 도시의 낮과 공간에 대한 탐구였다면, <24시>는 도시의 밤과 시간에 대한 결과물이다. 이번 아트랩 공연작은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소속 예술가들-미디어 아티스트, 무용가, 연 등-이 약 두 달간 도시의 밤을 돌아다니며 리서치한 결과물의 중간 보고서였다.

이경성 연출가가 동년배 예술가들과 꾸린 크리에이티브 바키라는 창작집단과 만든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두 작품. 기존의 공연과는 '다른' 이것은 어떻게 잉태된 것일까. 삼청동에서 만난 이경성 연출가와의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광화문 괴물녀'로 변질된 <당신의 소파..>로 시작됐다.

"한참 00녀가 많이 나올 때라 이슈가 되긴 했지만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그런 현상을 지켜보면서 인터넷이란 매체를 다시 생각하게 됐죠. 인터넷에 퍼지는 속도 자체가 괴물 같아서 이미 우리 손을 떠난 생물체 같았거든요. 하지만 그 현상보다는, 저희가 공연을 좀 더 정교하게 표현하지 못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당신의 소파..>에는 괴물녀 외에도 빨간 소파를 끌고 다니며 휴식을 취하는 여자, 노숙자, 연주자, 세종로의 행인들 사이에서 춤을 추듯 걷는 여자도 있었다. 특히, 빨간 소파를 가진 여자는 세종문화회관 계단, 횡단보도 등에서 수시로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올라갔던 그녀는 곧 내려와야 했다.

세종문화회관 경비원의 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인간은 휴식할 수 있는가?' 실상 그곳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는 정해져 있다. 그곳을 지나거나 공연장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앉아서 담소를 나누거나. 그 외의 행동에 대해선 매서운 시선이 꽂히기 마련이다. 도시에서 휴식의 형태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광화문이란 공간을 리서치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광화문 일대가 제공하는 휴식의 패턴이 있다는 거예요. 경계를 조금만 넘어서면 강한 제압이 들어온다는 말이죠. 처음엔 광화문 광장을 사용해보려 했지만 지자체 단체 이외엔 사용할 수 없다는 얘길 들었구요. 서울 시청 앞 잔디 광장은 3천만 원짜리 잔디보호대를 깔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어요. 이미 그곳은 시민의 광장이 아닌 거죠."

공연 준비 중 알게 된 또 하나 새로운 사실은 광화문 일대에 '맨인블랙'처럼 시민들 속에 숨은 사복 경찰이 무수히 많다는 사실이다. 도시와 휴식의 상관관계를 탐구한 <당신의 소파..>는 결국 국가 권력의 감시 시스템을 다시금 환기시킨 작업이었다. 감시 시스템에 둔감해진 시민들 사이에서, 그들은 허용과 제재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를 시도했다.

<당신의 소파..> 앞에는 '도시이동연구 혹은 연극'이라는, 불분명한 장르명이 붙어있다. 약속된 시간, 횡단보도에 모인 관객들에게 지도를 나눠주며, 광화문과 청계천 일대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를 '각자 알아서' 보게 하는 것이 관람의 방식이었다. 여기엔 희곡이란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소위 정통 연극에 대한 이경성 연출가의 시각이 반영됐다.

"연극이 꾸며서 보여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어요. 날 것, 실제 삶에 다가갈 수 없을까. 극장 안에 세트로 판타지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이미 극장 밖에 컨템포러리한 미장센이 존재하잖아요. 자연스러운 삶 속에 존재하는 미장센에 연극적 상황을 더해내고 싶었어요."

2008년 11월, 서울 변방연극제에서 <더 드림 오브 산초>로 데뷔한 연출가는 같은 작품을 작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선보였다. 건물을 스크린 삼아 비디오 프로젝션한 미디어 퍼포먼스였다.

횡단보도에서 진행했던 <인비테이션>은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에게 와인잔을 나눠주고 녹색불이 되면 서로 건배하는 퍼포먼스였다. <당신의 소파..>의 직접적인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세 개의 짧은 공연을 묶어낸 퍼포먼스와 전시가 결합한 <움직이는 전시회>도 연출한 바 있다.

"전작은 제 스타일과 형식을 찾기 위해 실험했던 작품이에요. 어떻게 하면 연극과 미술이 밀접하게 만날 수 있을까, 일상적인 공간과 연극적 환상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고민이었죠. <당신의 소파...>부터는 크리에이티브 바키와 함께 했죠. 한 가지 테마를 바키 구성원과 함께 리서치, 신문 스크랩, 연구를 하고 이것을 공연 언어로 트랜스포밍시키는 과정이죠. 사람이 많아 효율이 떨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극단의 목표가 극단에 참여하는 개인의 자아실현에 있다'는 미국 연출가 리 브루어와 같은 이유로 앞으로도 유지하고 싶어요."

'자본주의는 밤을 죽였다'는 하루키의 말대로, 자본주의 속에서의 밤이 부의 불평등 혹은 부의 축적 방식을 어떻게 드러내는가를 살펴보고자 했다. 그러나 리서치 결과, 인간의 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엔 무리가 있었다.

"막상 현장을 돌아보니, 밤이란 시간은 너무나 사적이고, 주관적이고, 다양하더군요. 리서치가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거대한 프레임으로 묶어 두기엔 맞지 않다고 봤어요. 차라리 (편의점과 같은)공적인 장소에서 잠을 참아가며 밤을 이겨내는 사람들과 극히 개인적인 밤을 비교해보자고 했죠. 그러면 관객들이 스스로 질문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올해 상반기 안에 선보일 1시간 20분의 본 공연에서는 24시간 가동되는 공장과 24시간 운영되는 업체 등 두세 공간을 추가로 섭외해 보편성을 획득할 생각이다. 오는 3월 런던으로 리서치를 위해 떠나는 이경성 연출가는 런던 아티스트와 한국 아티스트가 협업해 하나의 도시를 들여다보는 작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