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대중문화 비평에 대한 책인 줄 알았어요"라고 하자, "그 재미없는 글은 왜 써요? 하하"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대중문화평론가로 활동하는 정덕현(41) 씨는 대중문화를 논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봤다. 40대 초반의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문화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렇다 할 문화가 형성돼 있지 않은 게 현실. 정씨는 이를 위해 자신과 그 주변의 일상들에 빗대어 중년문화를 끄집어냈다. 1년간 에세이집 <대한민국 남자들의 숨은 마흔 찾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다.

"얼마 전 게리 무어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무척 짠했어요. 그가 죽는다는 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부분들이 없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특히 제 나이대가 느끼는 상실감은 클 겁니다. '공감'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애절한 적도 없을 거예요."

1970~80년대 영국에서 활동한 '전설의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의 죽음은 중년인 정씨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당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겐 하나의 문화적 시대 아이콘이 사라지는 순간이었으리라. 정씨는 이를 두고 "하나의 추억이 사라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년 남성들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의 사라짐이란, 즉 그들의 문화를 형성하는 게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중년문화'의 부재에 대하여

"마흔이라는 나이는 세대와 세대, 문화와 문화 사이에 많이 걸쳐져 있어요. 과거 자유를 부르짖고 민주화를 외쳤던 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은, 현재 개인추구 시대로 바뀐 삶을 살아가고 있죠. 또 대중문화를 제대로 겪은 세대이기도 하죠. PC통신, 동호회 등 신 미디어에 익숙하고 젊은 세대와 공감의 연결고리가 끊이지 않는 세대이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양쪽 세대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자칫하면 소외층일 수도 있고요."

정씨는 40세 남성들이 '중년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세대라고 강조한다. <숨은 마흔 찾기>를 쓴 이유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년 남성들이 공감하며 이야기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는 책 속에 '고 김광석', '27세 클럽', '사교춤', '군대이야기' 등 그 세대가 공감하는 소재들을 나열했다.

또 마흔이 된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과 사업하는 친구의 한숨 소리, "괜찮다"를 연발하던 아버지의 건강 등 현 40대 남성들이 안고 있는 걱정과 고민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러면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삶을 즐겁게 향유할 수 있는 중년문화가 얼마나 시급한지 말하고 있다.

40대 중년 남성들이 문화를 형성하는데 왜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그는 이를 두고 40대 남성들이 공감보다는 '분류'에 익숙해져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공통의 관심사인 옷, 액세서리, 아이 교육 등을 소재로 쉽게 소통하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

세대와 성별을 구분하고, 학벌과 출신지역 등 상대를 분류하는 데 더 익숙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신의 틀에 갇힌 중년 남성들이 그들의 문화를 형성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모든 문제가 공감의 부재에서 나온다고 설명한다.

"책 속에도 썼지만 연극 <친정엄마>를 보고 난 후 눈물이 끊이지 않더라고요. 동행한 여가 놀랄 정도였죠. 이제 중년 남성들도 공감할 거리들을 찾아서 숨기지 말고 드러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젠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나 남편상은 외로울 뿐이에요. 그 틀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죠."

정씨는 그 틀을 깨기 위해 젊은 세대들과 여성들의 시선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중년 남성이 아이돌 가수 콘서트에 나타나고, 드라마에 눈물 흘리며 공감하는 것을 두고 주책이라고 보는 것은 편견이라고 한다. 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을 드러내며 공감, 즉 대중문화를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MBC 설날특집 <세시봉 콘서트>는 60대 가수들이 나와 20대 못지않은 기타연주와 노래 실력을 보여줘 젊은 시청자들이 환호했다. 세대를 넘어서 공유되는 부분들이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세대 간의 공감은 그리 어렵지 않아요.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죠. 저 또한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보다는 감성적으로 많이 어우러져 공감하며 살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행복해지거든요."

중년 남성들이여, '남자의 자격'을 보라

최근 KBS <해피선데이>의 '남자의 자격'을 보면 정씨의 경우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남자의 자격' 속 출연자들의 평균 나이는 42세. 이들은 얼마 전 방송에서 암 검진을 받느라 분주했다. 폐암, 간암, 대장암 등의 검진 결과에 울고 웃는 모습은 중년 남성들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주었다.

"<숨은 마흔 찾기>는 실제로 두 친구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에요. 이미 세상을 떠난 태준과 고교 때부터 절친한 병수라는 친구죠. 태준이 덕분에 친구들과의 만남은 더 잦아졌죠. 우리 나이대에 친구가 많이 소중하다는 걸 더욱 절실히 느낍니다. 바로 그것이 중년의 의미를 찾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죠."

그는 '남자의 자격'을 공감의 중요한 매개체로 설명한다. '남자의 자격'은 그 나이대에 느끼는 건강과 가족 등 고민들을 눈물로 풀어 버리고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경규, 김태원, 김국진, 이윤석 등이 보인 눈물과 감동은 중년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 젊은 세대에까지 확장된 공감 문화를 만들어냈다.

'남자의 자격'은 중년 남성들이 어떻게 문화를 형성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지침서 역할을 한다는 것. 정씨는 "책을 낸 이유도 중년 남성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남자의 자격'이 중년 남성들에게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다른 세대에게는 '중년 남성들도 저럴 수 있구나'를 동시에 느끼게 마음을 문을 열어주었다고 말한다. 40이 넘은 나이에도 자격증을 취득하고, 마라톤을 하며, 태권도와 탭 댄스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남자의 자격'은 중년 남성들이 취미를 갖고 세대와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죠. 합창을 하며 울 줄 알고, 아버지를 그리며 눈물을 흘리는 그런 마인드가 필요해요. 그것이 가족을 넘어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더 이상 외로운 40대로 남을 필요는 없잖아요."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