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광수' 주제로 개인전… 문인화 형식의 50여 작품 선보여

마광수 교수에 관한 대부분의 인터뷰 기사는 그의 투덜거림으로 채워져 있다. 그가 지나온 길을 돌이켜보면 당연하다. 억압과 압제의 시기였던 군사독재 정부 이후 찾아온 문민정부도 '성(性)'이라는 테마 앞에서는 서슬 퍼런 칼을 휘둘렀다.

그 칼에 다친 사람 중 가장 큰 희생자가 바로 마광수 교수다. 90년대 대부분을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를 위해 검찰과 싸운 그는 오랜 싸움 끝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2000년대 이후에도 마찬가지. 언론과 학계는 다원주의의 도래, 문화 민주주의 등 문화 패러다임의 변화를 외쳤지만, 성에 대한 인식은 이런 급변하는 흐름에서 빠져 있었다. '마광수'라는 이름이 아직도 1990년대에 씌워진 외설 작가의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할 말이 많다. 하고 싶지만 다 못한 말들을 글로 써왔다. 그가 글로만 그의 작품 세계를 펼쳐온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의 그, '소년 광수'는 문학적 재능 못지않게 그림에서도 발군의 재능을 드러냈다. 대학 진학 시에도 미대를 지원하려고 했을 정도다.

그런 그가 이번에 자신의 그림들을 모아 개인전을 연다. 18일부터 갤러리 산토리니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마광수 교수의 작품 약 50여 점을 모았다. 작품들의 공통적인 주제는 '소년 광수'. 우리가 알고 있는 마광수가 아닌, 그 안에 있는 근원적인 마광수의 자아가 담긴 작품들을 모은 것이다.

마광수 교수의 전시가 처음은 아니다. 24년지기인 서양화가 이목일 화백과 함께 <에로틱 아트 4인전>, <우정의 2인전> 등을 여는가 하면, 95년에는 개인전도 열었다. 이후 서울과 미국에서 수차례 전시회를 연 그는 글과 그림을 통해 꾸준히 자신만의 에로티시즘을 설파해왔다.

하지만 동심을 다룬 만큼, 이번 전시 <소년, 광수>에서 우리가 알던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의 전도사 마광수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문득 소년 시절의 마광수가 궁금해진다. "어릴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였어요. 힘센 놈들한테 얻어맞고 돈 뜯기며 당하고 살았죠. 나는 폭력에 약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내가 계속 주장하는 것도 탐미적 평화주의죠."

모든 아이들의 권장도서인 <삼국지>를 그는 무척 싫어했다. 대신 그의 관심을 끈 것은 <금병매>. 그는 얼마 전에 <금병매> 완역판이 나왔는데 역시나 잘 안 팔린다며 우리 사회의 경색적인 풍토를 지적한다.

"문학에서 자꾸 교훈을 찾으려고 해요. 물론 사회 개조도 작가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칼럼만으로 충분한데, 왜 창작에서까지 그것을 강요하는지 모르겠어요."

고흐의 서간집처럼 그림에 짧은 글을 넣는 문인화 형식으로 그려진 그의 그림은 소박하지만 즉흥적인 드로잉과 강렬한 색채로 문학 세계와의 유사성을 증명한다. 글이 아닌 그림에서도 자신만의 색채를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경지다. 이에 마 교수는 '글과 그림은 원래 통한다'며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원래 '시(詩), 서(書), 화(畵)'는 문인들이 습득해야 할 분야였다는 이유다. 문단에서 그처럼 글과 그림을 자유롭게 다루는 작가는 이외수가 있다. 두 사람은 예전에 <4인의 에로틱 아트>전에서 함께 전시를 한 적도 있다.

화가 마광수가 좋아하는 작가는 고흐와 천경자 화백. 듣고 보니 원색을 주로 쓰는 강렬한 색감의 화풍에서 닮은 점이 있다. 또 그림뿐만 아니라 글솜씨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작가라는 점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도 마 교수 일생의 주제인 '야함'은 여전히 나타나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벗은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마 교수는 그동안 '야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야(野)'자를 써서 '자연의 본성에 충실하다'라고 사용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의 야함이란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는 순수한 형태의 성에 가깝다. 마치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아담과 이브처럼 천진난만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마 교수는 이런 원래의 뜻이 오랫동안 '천박하다'라는 뉘앙스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고 개탄한다.

"예수님 말씀에도 '너희가 어린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하리니'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점차 '체면'을 차리게 돼서 그 순수한 야함을 잃어가는 것이죠."

TV를 켜면 아직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소녀들이 짧은 옷을 입고 나와 엉덩이를 흔든다. 언론은 이를 '삼촌 팬덤'으로 명명하기도 하고, 혹자는 '미성년 여성의 성 상품화'를 언급하며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지금이 마광수라는 성의 아이콘을 넘어서는 성 전성시대라는 점이다. 하지만 마 교수가 보기에 성은 여전히 억압받는 대상이다.

"언젠가 KBS 사장이 걸그룹들의 치마 길이를 단속하겠다는 말을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죠. G-드래곤은 외설스러운 퍼포먼스를 했다고 비난을 받기까지 했죠. 이미 현실의 청소들의 성 의식은 앞서 있는데 겨우 퍼포먼스 정도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그는 이런 이상한 엄숙주의, 경건주의의 배후로 기독교를 지목한다. 처음에는 이게 유교 탓인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근본주의 기독교가 지배적인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이처럼 성에 대해서라면 급진적인 의견을 피력한 탓에 그에 대한 인식은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1990년대 이후 계속된 잡음은 그의 40~50대를 각종 소송으로 보내게 했다.

어느덧 올해로 환갑이 된 마광수 교수. 일평생을 에로티시즘에 바쳐온 그가 느끼는 '노년의 에로티시즘'은 어떨까. 그동안의 상황을 감안하면 한풀 꺾일 만도 하지만, 그는 에로티시즘에 대한 인식은 한층 더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답한다.

"예전에는 결혼은 선택이라고 주장했다면, 지금은 아예 결혼하지 말라고 제안해요. 지금도 이혼율은 점점 치솟고 불륜, 별거 커플도 많아지는데, 결혼제도는 앞으로 50년 안에 무의미해질 겁니다. 장담합니다."

'야함'에 대한 천착을 통해 자신만의 공고한 에로티시즘 세계를 구축해온 마광수 교수. 이번 전시를 통해 '야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함과 동시에 '야한 작가' 마광수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그는 다음에는 '야함에 대한 동화'를 구상하고 있다. "어른들이 읽는 동화에요. 야함을 동심에 대한 관점으로 쓰는 거죠. 그럼 걸리지도 않을 거고. 하하하~"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