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제훈 펴내고전 추리소설 기법 차용한 중층적 '메타픽션' 구성 눈길

매체가 늘면서 글 쓰는 사람들이 늘고, 그만큼 출간되는 책은 더 늘었다. 아니, 매체는 산술급수적으로 늘지만, 사람들이 써내는 글은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불가능하다는 듯, 최근에는 한 가지 이야기를 드라마, 영화, 게임으로 확대하는 '원소스멀티유스'가 대세로 떠오른다.

신예 작가 최제훈은 이런 상황을 역으로 이용한 '메타픽션'(소설을 모티프로 쓴 소설)으로 주목받았다.

단 한 편의 완벽한 소설

척, 그의 첫 소설집을 펼친다. 그는 단편 '퀴르발 남작의 성'으로 2007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첫 소설집 표제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각기 다른 시대의 6월 9일 벌어지는 퀴르발 남작의 이야기에 대한 변주 모음이다.

퀴르발 남작에 대한 각종 소문과 전설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변형되고, 시간이 흘러 영화와 소설의 모티프가 된다. 단편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 역시 익숙한 이야기의 변주를 통해 재미를 준 작품으로 추리소설가 코넌 도일의 죽음을 소설 주인공 셜록 홈스가 수사한다는 내용이다.

척, 그의 첫 장편을 읽는다. 4편의 중편을 모은 연작소설이다. 첫 번째 소설 '여섯 번째 꿈'은 폭설이 쏟아지는 날 산장에 모인 여섯 명의 이야기다. 연쇄살인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 '실버 해머' 회원들은 카페 주인 '악마'의 초청으로 산장에 모이지만, 정작 '악마'는 나타나지 않고, 산장에서 한 명씩 차례로 살해된다.

두 번째 소설 '복수의 공식'은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복수극이 나열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첫 번째 소설에서 죽은 '실버 해머' 회원들이다. 세 번째 소설 'π'는 번역가 M이 어느 날 술집에서 미모의 여인을 만나고 그녀와 함께 동거를 시작하며 펼치는 이야기다.

M이 번역하는 소설은 바로 첫 번째 이야기의 제목과 동일한 '여섯 번째 꿈'. 미모의 여인은 M의 서가에 꽂힌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복수의 공식'에 소개됐던 이야기를 변주해 밤마다 세헤라자데처럼 M에게 들려준다. 무한대로 뻗어나가지만 결코 반복되지 않는 파이(π)처럼 이야기는 "단 한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196페이지)을 향해 나아간다.

겉으로 4개의 연작소설을 묶은 형식이지만, 이 소설은 최초의 이야기가 변주되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메모지에 동그란 원을 반복해서 그리며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쓰려고 한 건가요?"라고 물었다. "아뇨, 이런 방식이요"라며 작가는 나선형을 그렸다. '한편의 이야기가 어떻게 유통되고, 변형되고, 살아남는가.' 그의 첫 소설집과 첫 장편소설의 공통점이다.

무한변주되며 뻗어갈 것 같은 이 이야기들은 흡사 박민규나 천명관의 입담을 연상케 한다. 단, 박민규 식의 독특한 문체나 천명관 식의 거대한 스케일은 없다. 그렇다면 그 소설, '앙꼬 없는 찐빵'이 아니냐고 입맛 다시는 독자도 있겠다. 최제훈 소설의 앙꼬는 구성의 묘미다.

돌고 도는 이야기

책을 내고 메타픽션에 관한 질문을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단편집과 첫 장편소설의 구성방식이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으니까. 소설 입담에 비해 인터뷰 때 작가의 말은 느리고 어눌했는데, 이 질문에 대해서만큼은 정리된 답변이 술술 나왔다.

"우선 늦게 글쓰기를 시작해서 제가 왜 쓰는지 저 자신도 궁금했어요. 글로써 글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본질을 찾는다는 점이 흥미로웠고요. 메타픽션은 중층적인 구조를 통해서 의식과 무의식,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데, 이런 특징이 현대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지난 가을 출간된 첫 단편집은 5쇄를 넘겼다. 통상 신인 작가의 첫 소설책, 그것도 시장성 없는 단편집은 초판도 소화되지 못하는 게 최근 문학계 현실임을 감안하면 이런 반응은 꽤 고무적인 것이다. 소설 재미의 원천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다. 단편 '셜록 홈즈…'를 비롯해 최근 펴낸 장편 <일곱 개의 고양이 눈> 등 상당히 많은 작품에서, 작가는 고전 추리소설 기법을 차용한다.

한때 그러니까 2000년대 초중반, SF․추리소설 등 장르문학의 코드를 순수문학 작가들이 차용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다. 그가 등단한 무렵에 그런 유행이 사그라졌지만, 여전히 이런 방식을 애용하는 젊은 작가들도 있다. 그에게 물었다.

"이런 차용, 전략적인 겁니까?" 그는 짐짓 억울한 듯, 하지만 꽤 지겹게 들었다는 듯 대답했다.

"의도한 적은 없거든요. 왜 다들 저를 분류하려고 하시는지…. 전 세대론(등단 시기가 비슷한 작가들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란 말을 잘 믿지 않아요."

그리고 잠깐, 추리소설 방식과 메타픽션에 주목한 배경을 들려줬다. 그가 등단할 때 나이는 서른 넷. 좀 늦은 나이에 등단한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가 다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가 소설을 배웠다. 직장생활과 습작을 병행하다가 '2년만 올인하자'는 생각으로 4년 만에 직장을 그만뒀고, 소설만 쓴 지 1년 만에 등단하게 됐다고.

그때가 2006~2007년 무렵인데 당시 소설 구성 방식에 꽂혀있었단다. 첫 단편집 소설의 절반가량이 그 당시 쓴 작품들이라고. 첫 장편의 형식 역시 그쯤에 구상해 두었다고 덧붙였다.

"어릴 때 본 고전 추리소설 빼면 장르소설을 많이 읽은 편도 아니고요. 장르소설이라 안 읽은 건 아니고, 읽다 보니 결과적으로 제 독서목록에 없었다는 거죠. 추리소설 코드를 작품에 넣은 건, 그 기법을 좋아해요. 서사를 풀어나갈 때 몰입도가 높고,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끼게 하니까요."

그의 독서목록에 있는 작가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보르헤스, 이언 매큐언이다. 90년대 '경영학도'시절 좋아했던 소설가는 김영하와 백민석이었단다. 앞의 박민규, 천명관과 이 이름들을 겹쳐보니, 어렴풋이 공통점이 느껴진다. 하류문화 차용, 그로테스크한 이야기 전개 방식 같은 특징들 말이다. 이제 두 권의 책과는 조금 다른 소설을 쓰겠다는 작가의 말에도 어떤 스타일이 그려지는 것 같다.

"관심을 한정하고 싶진 않은데 대략 말하자면, 인간이 실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뭘 뽑아내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이나 실제 생활이 만들어지는 조건을 그리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