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신조 출간예쁘고 신기하고 금방 사라져버린 삶의 순간 아름답게 그려

소설가 이신조 씨가 장편소설 <29세 라운지>를 냈다. 세 번째 장편소설, 단편집까지 합치면 여섯 번째 소설책이다. 현대인의 감수성을 섬세한 언어로 포착한 이 씨의 소설은 문장의 여운이 아름다운 소설이다. 신간은 29세 여성의 일상을 통해 인생의 성숙단계로 진입하는 어른들의 성장통을 그렸다.

여러분 이제 곧 30살입니다

지난해 12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된 적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 앵커가 뉴스 진행하는 장면 아래, "1982년생 여러분 이제 곧 30살입니다"라는 자막이 들어가 있었던 것. 물론 이 사진은 합성이었다. 2011년에 서른을 맞는 82년생들은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던 날, 휴대폰 새해 인사로 이 사진 파일을 지겹도록 받았다.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서른에 관한 담론은 심심치 않게 나왔다. 젊음의 찬란함 이면에 불안과 방황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30대가 되면 조금 안정돼있지 않을까.' 20대는 이런 기대로 30대가 되길 기다리지만, 정작 30대가 되니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젊음만 지나갔더라. 속았더라.' 이런 이야기가 서른 살을 모티프로 한 노래와 시, 영화의 주된 레퍼토리였다.

이신조의 소설 <29세 라운지>는 서른 직전 여성의 삶과 내면을 포착한 어른의 성장일기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아홉수라고 하잖아요. 다음 단계로 진입한다는 의미를 갖는 것 같은데, 그 과정을 그린 거죠. 성장 다음의 미션은 성숙이잖아요. 어른으로 성숙하는 과정을 '라운지' 그러니까 주인공을 둘러싼 일상에 빗대 그린 거죠."

29세 문나형은 불의의 사고로 엄마와 동생을 잃고 황폐한 나날을 보내다 지금은 자유기고가 문수형으로 활동한다. 수형은 9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쌍둥이 동생의 이름. 병약한 동생 지형은 살아남았고 죽을 수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수형이 죽었다. 살아남은 그녀의 가족은 무너진다.

'나는 한 달 넘게 학교에 가지 않았다. 내가 안세완이라는 이름의 물리과목 임시교사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가 '그즈음'에 존재했던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즈음에 잠시 존재했다 이내 사라진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96페이지)

취재 차 다시 만나게 된 세완은 결혼해 쌍둥이 아빠가 된 물리학 교수다. 9년이 지난 지금 그는 뉴트리노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 있다. 중성자보다 훨씬 작고 가벼워 유령입자란 별명이 붙은 뉴트리노처럼, 죽은 쌍둥이 동생과 세완은 나형의 곁을 떠돈다.

29세 문나형뿐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때때로 외롭고, 불안하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소외받는다는 느낌을 갖거나, 타인과 동떨어져 있다는 고독을 느끼곤 한다.

국내 대다수 작가, 특히 여성작가들의 소설은 이 보편적 감정을 그리는 데 대단히 능숙하고, 또 이런 주제의 작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신경숙과 은희경과 전경린의 소설이 다 다른 모양새인 것처럼, 작가마다 집중하는 소재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이신조에게 이 열쇠구멍은 언어에 대한 천착이다. 6권의 소설책을 내는 동안 등장인물과 사건과 주제가 제각각 변주됐지만, 공통점은 언어에 관한 섬세한 관찰을 그대로 기록해 둔다는 점이다. 이 작가는 세계로부터 소외, 인간으로부터 격리의 중심에 말(言)이 놓여있다고 보는 것 같다.

신간 역시 이 연장선에 있다. 이 소설은 270여 페이지의 이야기가 단번에 읽히는데, 주인공을 둘러싼 일상과 과거의 기억들이 9장에 걸쳐 전개되고, 각 장은 다시 8~9개의 키워드를 통해 잘게 쪼개진다. 마치 작가 자신만의 단어장을 통해 주인공의 일상을 해부하는 것 같다.

예쁘고 신기하고 사라지는

"막연하게 29세 얘기를 해보고 싶던 건 제가 29세, 30세가 됐을 무렵이었어요. 7~8년쯤 생각해 둔 작품이죠. 저한테는 이 작품이 통과의례 같은 작품이에요."

작가마다 작품을 쓰면서 한 단계 더 성숙하는 작품이 있다. 그녀는 "신경숙의 <외딴방>, 은희경의 <새의 선물>처럼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쓰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필요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젊은 작가들이 1인칭을 주로 쓰는데 반해 이신조 작가의 소설은 3인칭 시점이 주를 이룬다.

그의 소설이 사건이나 캐릭터보다 문장으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음에도, 청승으로 읽히지 않는 이유는 차가운 3인칭의 세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초기 이신조의 소설은 "한 마리 고양이가 쓴 것"(김영하)이란 평을 들을 정도로 예민하고 감각적인 스타일을 자랑했다.

최근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 1인칭 시점이 대세처럼 나옵니다. 너무 남발하니까 '3인칭 시점을 못쓰기 때문에 1인칭을 고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한 번은 신인작가한테 물어본 적도 있어요. 이신조 작가는 반대였군요.

"저는 자의식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예술가는 자기를 드러내는 사람인데, '내가 뭔데 나를 드러낼까?' 하는 생각에 자의식이 있는 소설을 거의 안 썼어요. 어설프고 섣불리 나를 드러내는 데 경계심이 있었어요."

29세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데,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가 시간흐름과 상관없이 전개됩니다. 가끔 앞서 설명된 사건이 후반부에 다시 재현되기도 하고요.

"제목에 '라운지'를 붙인 건 주인공이 생각하는 사랑, 일, 가족, 친구 이야기를 골고루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러다 보니 9장으로 나눠지고 시간이 뒤죽박죽 됐습니다. 또 같은 사건도 받아들이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죠. 사생활의 단면을 골고루 보여주다 보니 결과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었어요."

이전 작품들도 그렇고 이신조 작가는 언어에 대해 천착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따옴표도 많고, 단어도 반복되고.

"제가 뛰어난 스토리텔러는 아닌 것 같고, 언어는 제가 붙잡고 가야하는 동아줄 같은 거에요.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훨씬 문학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에게는 이야기를 어떤 언어로 조탁해서 완성해내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소통과 언어는 사실 어느 작가에게나 붙여도 좋을 수식어죠. 작가는 언어로 예술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래서 이신조 작가의 작품 특징을 독자에게 한마디로 소개하기가 쉽지 않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스토리나 캐릭터가 독특하기보다는 소설 장르 자체가 갖는 여운이 좋은 작품들이거든요. 영화로 치면 미장센이 감각적인 거죠. 이전 소설이 완전한 소통의 불가능성을 말하면서도 소통의 의지를 갖는 양가적 감정을 드러낸다면, 이번 장편은 발화, 말하기에 더 집중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들이 말하는 소통에 여러 의미가 있을 텐데요. 저에게 소통은 남과 연결되고 싶다는 의지라기보다 세상과 통용할 수 있는 나만의 어법, 말하기 방식을 창조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가능하면 아름다운 나만의 목소리를 내놓겠다는 바람이죠."

작품 마지막 어린 시절로 돌아간 주인공은 동생에게 묻는다. "예쁘고 신기하고 금방 없어져버리는 걸 뭐라고 하는지 알아?" 그런 건, 아름답다고 말하는 거란다. 예쁘고 신기하고 금방 없어져버린 삶의 순간을 그린 이 소설 또한, 그렇게 아름답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