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리카르도 샤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드보르자크와 브루크너 레퍼토리오 공연

멘델스존의 주도로 먼지 쌓인 음악의 아버지 바흐의 작품에 다시금 생명력을 불어넣은 단체. 시민계급에게 음악회 감상의 권리를 제공하며, 음악회 관람의 민주주의를 실현한 오케스트라. 1743년에 창단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관현악단.

첫 연주 장소인 직물회관이 곧 이름이 되어버린 교향악단.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LGO)에는 긴 역사만큼이나 클래식 음악사의 중요한 순간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멘델스존을 통해 바흐와 깊은 인연을 맺은 LGO는 지금까지도 매주 바흐의 작품을 연주하고 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였던 멘델스존이 1835년부터 종신 카펠마이스터(음악감독, 지휘자)로 재직하면서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발돋움한 LGO는 여전히 이지적이면서도 무게감 있는 사운드를 자랑한다. 아르투르 니키쉬,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브루노 발터, 쿠르트 마주어 등 당대 최고의 마에스트로들이 LGO의 포디엄을 거쳐 갔다.

쿠르트 마주어가 이끌 당시인 1995년, LGO가 한국을 찾은 적이 있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올해 3월 7일과 8일 다시 내한공연을 펼친다. 이번 공연은 지난 2005년부터 LGO를 이끌고 있는 '리듬과 색채의 마술사' 리카르도 샤이(Riccardo Chailly)가 선봉에 선다.

샤이가 LGO에 오기 전에 몸담았던 곳은 그가 '첫눈에 사랑에 빠졌던' 암스테르담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RCO가 제안한 계약 갱신을 거절한 젊은 지휘자는 바그너의 고향이자 오랜 음악적 전통이 있는 LGO로 이적했다. 당시 클래식 음악계는 의아한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가 이끌고 내한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 사진제공=빈체로
라이프치히의 부름을 받은 샤이는 당시 "오케스트라를 포기한 지휘자는 고통을 느낀다. 예술적인 포부를 완전히 채우지 못한 데서 오는 아쉬움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현재 그는 새로운 포부로 동독시대에 퇴색되었던 LGO의 위상을 끌어올리며 새로운 황금기를 펼쳐내고 있다.

샤이는 양일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내한공연 레퍼토리로 드보르자크와 브루크너를 꺼내 들었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협연하는 드보르자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해 카니발 서곡, 교향곡 7번을 연주하는 색채감 있는 무대(7일)와 무려 80분에 이르는 브루크너 교향곡 8번(8일)을 연주한다.

그는 이 두 작곡가를 선택한 이유를, 서면 인터뷰를 통해 "LGO의 음악과 사운드의 각기 다른 개성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두 작곡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샤이는 브루크너와 말러에 천착하는 지휘자로 유명하다. 특히 10대 시절에 매료된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시작으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재해석해왔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현 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 수석 지휘자일 당시인 1982년에서 1988년 사이에 0번, 2번, 3번, 7번 교향곡을 공연하며 본격적인 연주에 돌입했고, 볼로냐 시립극장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3년에 걸쳐 브루크너 전곡을 완성했다.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 / 사진제공=빈체로
1996년에는 RCO를 지휘해 미사 F단조를 연주했는데, 이는 RCO가 33년간 연주하지 않던 곡이었다. 지금껏 그가 녹음한 모든 브루크너 레코딩은 수연으로 평가받는다. 음악칼럼니스트 이영진은 그중에서도 '1999년 RCO와의 브루크너 8번 레코딩이 샤이의 노하우가 총집결된 회심의 역작'이라고 평한다.

샤이는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살아있는 유일한 이탈리아 지휘자이기도 하다. 이런 점 때문에 브루크너의 전작을 관망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을 느낀다는 샤이는 "브루크너의 작품은 전혀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선사한다"며 브루크너의 음악이 가진 힘을 역설했다.

그는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인 브루크너 8번 교향곡에 대해 "브루크너의 음악세계가 집약된 작품이다. 따라서 내재한 감정과 놀라움과 환희를 이해하려면 80분간 집중해야 한다"고 한국 관객들에게 주문했다.

목금관악기가 빚어내는 고색창연한 사운드와 현악기의 묵직한 사운드는 LGO만의 저력이다. 샤이는 여기에 유연성을 더해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한다.

LGO에서 카펠마이스터로 2015년까지 활동하게 되는 샤이는 "베토벤과 바흐, 멘델스존과 슈만 그리고 브람스를 지속적으로 연주하면서 레이블 데카와 녹음도 할 예정이다. 말러와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고 2013년 서거 50주년을 맞는 힌데미트의 작품도 연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전속 음반 레이블인 데카와 앞으로도 독점으로 레코딩하겠다는 그는 다음 앨범에서 재즈피아니스트 스테파노 볼라니와 협연하는 두 개의 라벨 협주곡과 엔타일의 재즈 심포니를 연주한다고 덧붙였다.

독일의 전통을 존중하며 독특한 색채감을 더해내 역사상 최고의 게반트하우스 사운드를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는 리카르도 샤이. 지휘자 개인으로서는 1996년 RCO와 내한한 이후 첫 한국 무대인 그가 LGO와 들려줄 사운드에 기대가 모인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