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이현욱 출간친환경 목조주택 3억으로 1달 만에 짓기… 현실적 '스펙'으로 인기

일이 점점 커지고 있다. 광장건축 이현욱 소장이 '땅콩집'(한 필지에 지은 두 세대용 집, 듀플렉스 홈duplex home 의 애칭)을 지은 사연이 알려지기 무섭게 상담이 밀려들었다. 전국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20여 개. 규모도 7000만 원짜리 초소형에서 34세대용 단지까지 다양하다.

그가 요즘 얼마나 바쁜지는 온라인 카페 '땅콩집 3억으로 한 달 만에 짓는다(cafe.naver.com/duplexhome)'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소장은 이곳을 통해 땅콩집 따라잡기에 나선 사람들의 땅도 봐주고, 견적도 내주고, 함께 살 친구까지 찾아준다. 자신의 집은 모델 하우스가 된 지 오래다. 오지랖이 마을 이장 수준이다.

"저도 놀랐어요. 단독주택을 꿈꾸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니. 저는 이제까지 사람들이 아파트를 사랑하는 줄 알았거든요."

한국사회는 얼마나 오랫동안 아파트 공화국의 부박한 상상력에 갇혀 있었던 걸까. 이 소장이 작년 여름, 친구인 한겨레신문 구본준 와 의기투합해 지은 쌍둥이 목조주택은 한 가구당 약 30평의 실내 공간과 36평의 공동 마당, 서울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 3억 원의 비용과 한 달의 공사 기간이라는 현실적 '스펙'으로 집에 대한 우리의 로망을 일깨우고 있다.

경기도 용인 동백지구에 있는 이 땅콩집은 앙증맞은 외양으로 주변 아파트 단지를 시시하게 만든다. 그뿐인가. 사는 이의 일상을 다채롭게 만들고, 손님을 늘려준다. 단열에 힘 쓴 덕분에 관리비도 아파트보다 적다고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땅에서, 잔디밭과 나무 곁에서 뛰어 놀 수 있다는 게 중요하죠. 아파트에서 자란 아이들에겐 추억이 없어요."

"아이들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이 소장은 마음이 급하다. 돈이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혼자 하기 어려우면 동지를 찾아서라도 누구나 아파트 대신 단독주택을 주거지로 고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의 새로운 꿈이 됐다.

이 소장은 얼마 전 차를 바꿨다. 연비가 높고 유해가스 배출량이 적은 하이브리드차를 장만해 아내와 요일을 나눠 타고 있다. "땅콩집에 살아 생긴 변화"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고, 공간을 효과적으로 쓸 방법을 궁리하고, 똑같은 규모의 두 집 계량기를 틈틈이 비교하다 보니 절로 친환경적 삶에 가까워졌다. 땅콩집이 친환경적 집인 것은 콘크리트가 아닌 목조로 지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작정하고 친환경적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친환경 자재를 쓰고,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죠. 집을 작게 짓고 단열 잘하고 오랫동안 고쳐 가며 사는 것, 그리고 내복 입고 에너지 덜 쓰는 것, 그게 친환경적 삶이죠."

경제적일 뿐 아니라 건강하고 현실적인 대안 아닌가. 집에 투자하려면 당연히 이런 데 해야 한다. 이현욱 소장과 구본준 가 함께 쓴 땅콩집 이야기 <두 남자의 집 짓기>가 출간되자마자 동 난 사태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상식에 목말라 있었는지를 증명한다.

지난 3월 2일 "땅콩밭을 일구느라 어안이 벙벙할 정도"라는 이현욱 소장을 만났다.

<두 남자의 집 짓기>처럼 보통 사람 눈높이에서 쓴 건축 책이 흔치 않다.

"돈 없으면 10평에서 살아라, 함께 집 지을 사람을 찾아라, 가 너무 당연한 소리 같아서 처음엔 책으로 내기 창피했다. 하지만 그런 책이 아무리 뒤져 봐도 없더라. 건축가로서 부끄러운 일이었다. "

요즘 잘 팔린다.

"친구들에게 책 사서 '인증샷' 찍어 보내라고 했는데(웃음) 책을 못 구했다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놀랐다. 다들 아파트를 사랑하는 줄로만 알았다. 단독주택은 유지·관리하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편견이 깨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책을 보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야근 중 샐러리맨 땅 보고 집 짓기>라는 차기작도 준비하나 보다.

"땅 구해달라는 상담이 많아서 아예 가이드북을 만들기로 했다.(웃음) <두 남자의 집 짓기>가 큰 틀이었다면 앞으로는 땅 보는 법에서부터 설계하는 법까지 세부 과정을 담은 얇은 책 시리즈를 펴낼 생각이다."

온라인 카페에서는 땅을 공동 구매할 '친구'까지 찾아주고 있다.

"집 지을 때 땅 구하는 게 가장 어렵다. 소비자가 건설사, 시공사를 거치지 않고 공동 구매하면 큰 땅을 싸게 살 수 있다. 그래서 지역별 실제 땅값이 얼마인지 제보도 받는다.(웃음)"

본업이 건축가인데 너무 많은 일을 하는 게 아닌가.

"전세대란이라는데 정부가 근본적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서 그렇다. 나는 토지공사가 임대아파트를 짓는 대신 땅을 임대해줬으면 한다. 사람마다 각자 능력에 맞게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럼 자기 집이니까 오래 아끼고 고쳐가며 살지 않을까. 아파트 구입 자금을 대출해주는 게 능사가 아니다."

아직도 단독주택은 일부 계층의 특권처럼 여겨진다.

"단독주택 하면 대부분 고급 전원주택을 떠올린다. 정부가 공급하는 단독주택용 필지도 미국식 전원주택을 위한 것이 많다. 작은 집이 더 많이 필요한 한국 사정에 맞지 않다. 소비자의 선택지도 줄어든다. 젊은 부부에게 아파트와 오피스텔의 대안은 거의 없다. 주거 환경의 다양성이 부족한 것이다."

왜 목조를 택했나?

"친환경적이면서도 단열이 잘 된다. 목조 주택은 빨리 지을 수 있어 공사 기간이 단축되고 부분적 보수가 편리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

땅콩집과 관련해 도전하고 싶은 과제가 있다면.

"인테리어 전문가, 조경 전문가, 여러 기술자와 목수 등 파트너들을 모아 공동 제작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규모 건설사가 못하는 박리다매가 가능해질 것이다.(웃음) 이런 시장이 자리 잡으면 소비자는 싸게 다양한 집을 선택할 수 있다. 여기에 모바일홈에 대한 인식까지 높아지면 언젠가 집을 자동차처럼 대리점에서 고르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중고 시장이 형성될 수도 있다. 그러면 2000만 원으로도 단독주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땅콩집은 마을 재생의 매개가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서울 근교나 지방에 땅을 공동 구매해 집을 지으면 자연스럽게 이웃들 간 교류가 일어날 것이다. 하다 못해 우리 단지의 방범 시스템은 어떻게 할까, 를 협의하는 동안 마을이 형성되지 않을까."

땅콩집 설계 상담을 받을 때 준비해야 할 사항은.

"돈이 얼마나 있는지 건축가에게 솔직하게 털어 놓아야 한다. 무리해서 집을 짓기보다, 예산 내에서 효과적으로 짓는 것이 목표다. 집이 10평밖에 안 나온다고 하더라도 평수보다는 아이들이 마당 있는 집에서 산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크기 전, 당장 이사하겠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돈이 없으면 부모님과 함께 지어라. 덕분에 해체된 가족이 다시 모여도 좋지 않을까."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