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송재학 출간풍경에 대한 사유 고전문체로 바꿔… 치과의사 시인

MBC <위대한 탄생>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가수 오디션을 중계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들이 참가자에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왜 남의 창법을 따라 부르냐?"는 것이다.

신인에게 발성, 호흡보다 중요한 건 이 목소리가 아류이냐, 제 것이냐는 것이다. 쇳소리, 꺾기 같은 기교도 제 목에 맞지 않는 걸 시도하다간 탈락이다. 요컨대, 모름지기 아티스트라면 제 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 소리는 제 몸을 통과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목소리가 시대와 맞아 떨어져 유행을 만드느냐는 운수소관에 달려있겠지만 말이다.

시인 송재학 씨를 만나고 집에 오는 길,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그는 최근 시집 <내간체內簡體를 얻다>를 냈는데, 서사 없이 이미지의 덩어리가 붙어 있는 그의 작품은 1986년 등단 때부터 꽤 독특한 것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며, 제 몸을 통과해 빚은 말이란 점에서 진정성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시가 문단의 '대세'를 만드느냐는 또 앞서 말한 것처럼 운수소관에 달려있는 터라, 그의 시는 수사와 이미지에 사로잡혀 모호하다는 평이 줄곧 따라 다녔다. 국내 웬만한 문학상 후보에 100번 가까이 올랐다는 풍월에도 불구하고(횟수를 다 세어 보진 않으므로), 작년에야 빅3로 불리는 소월시문학상을 받은 사실은 그의 시가 이해를 얻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방증이다.

의사로 일하며 꾸준히 시집을 냈다는 점에서 마종기 시인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전하자 송 씨는 "그분은 브라만 계급이고, 나는 수드라쯤 될 것"이라며 농을 쳤다. 자신의 시는 비주류란 뜻이다. 그러니 그의 이번 시집 특별판이 재판 인쇄에 들어갔다는 말을 편집자에게 들었을 때, 반가움보다는 "쉽게 읽히는 시가 아닌데"하는 의문이 먼저 앞섰다.

18세기 여인들의 내밀한 언어

시 얘기보다는 시인 얘기가 더 재미있겠다. 문단에서 꽤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는 대구에서 치과의사로 일하며 시를 쓴다. 지난달 낸 시집이 7권째이니, 진료와 시 쓰기 이외에 소일하는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중고등학생 때 문예반에서 활동했지만, 선배 꾐에 넘어가 치의예과를 갔고 적성을 고민하며 휴학도 했지만, 결국엔 치과의사가 되고 중앙문단에 등단했단다. 여전히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시인으로 글을 쓰는데, 이 생활은 그의 시 모양새와 닮아 있다.

"내 시의 대부분이 속은 모더니즘이고, 바깥은 서정에 가까운 두 겹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 이유는 내 안의 모더니즘 기질을 버리질 못하는 거예요. 모으고 해석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내 시의 특징인데, 이게 대부분 이과(理科)생들의 성격이거든요."

그리고 이번 시집의 표제작 '제작 과정'을 들려주었다.

송 씨는 몇 해 전 창녕 우포늪을 찾았다가, 그 풍경을 보고 인문학적인 사유를 담아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쓴 시가 다섯 번째 시집 <기억들>에 실린 시 '흰뺨검둥오리'다.

이후 이 풍경을 밑천으로 또 한편 쓰리라, 생각하다 몇 해 지나 다시 쓴 작품이 이번 시집의 표제작 '늪의 내간체를 얻다'이다. 송 씨는 현대 말로 시를 쓴 후, 이를 18세기 부녀자들이 사용했던 고전문체인 내간체로 바꿔 그 맛을 독특하게 바꿨다.

"이 시에서 내가 원한 건 조선시대 여자들의 내밀한 속삭임이었어요. 18세기는 여성들의 자의식이 막 발동해서 자아를 느끼는 맹아적 시기였는데, 그게 수많은 풍경과 생물을 품은 늪과 비슷했거든요. 그래서 18세기 문자로 시를 쓰려고 했는데 언어 전공하는 친구들한테 물어봐도 난감해 하더라고요. 여러 자료를 찾다가 결국 고사전 하나를 기본으로 해서 이 시를 썼습니다."

그러니 달밤의 정취로 일필휘지 썼다는 미당 서정주 같은 시작(詩作)은 그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과 시 쓰기를 병행하는 그에게 이런 '제작 방식'이 득일 수도 있었겠다. 그는 퇴근 후 독서실에서 시를 쓰거나 진료 틈틈이 시를 고칠 때도 있다.

"제 방식은 모더니즘적 제작 과정이에요. 서정적 감성을 받아 적는 게 아니라 작업한 거예요. 퍼즐 맞추듯이."

시집 역시 시의 기승전결 방식과 닮게 묶는다. 이를테면 그의 최근 작품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모래장(葬)', '지붕' 같은 시와 비교적 평이한 언어로 작가의 일상과 여행을 재현한 서정시를 씨줄과 날줄로 배치했다.

그 풍경의 안팎

흔히 그의 작품을 양감이 풍부하면서도 절제된 언어라고 말한다. 마치 비석의 비문을 쓰듯이 하나의 연으로 된 서정시를 많이 썼다. 그럼에도 단형의 짧은 시는 애매모호한 인상을 주는데, 이를 앞서 설명했듯 그의 시는 서술이 아니라 이미지 덩어리가 붙어 있는 방식이 많기 때문이다.

시인은 스스로 "나는 시를 진술하지 않고 묘사한다. 단어가 아니라 문장으로 이미지를 구축하는 편이다"고 말한다. 그 '이미지를 구축하는' 문장 안에 배치되는 개념이 섞여 있다. 그의 시가 하나의 대상에 다층적 이미지가 덧칠해 있다는 평을 듣는 것, 그래서 애매하고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는 소설처럼 통일된 서사를 갖기는 힘들잖아요. 그렇지만 소설보다 좋은 면이 있다면, 어떤 촉수 같은 것이 있어서 뻗어나가는 것이죠."

시 쓰기 외에 그가 즐기는 일이 여행이다. 기자를 만나기 전에도 네팔로 8박 9일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중 2박 3일 동안 안나푸르나를 올랐다. 그 풍경이 너무 좋아 나이가 든 후에 다녀 온 게 오히려 다행이다 싶을 정도란다.

"실크로드는 여러 번 다녀왔는데, 그곳이 내 속에 있을 것 같은 풍경이라면 안나푸르나는 나를 창조한 풍경 같아. 그 안에서 노예처럼 숨죽이고 있어야 할 것 같더라고요."

추상화 같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 풍경에 대한 사유다. 거대한 산이 사막화되는 과정을 보면 삼라만상이 선하지 않다는 것, 풍경도 인간처럼 희로애락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이번 시집을 묶으며 쓴 '내 시의 안팎이 풍경만이 아니고 상처의 안팎이기도 했으면 좋겠다'(시인의 말)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쓰인 말이다.

그가 풍경을 통해 그 아득한 역사를 읽어내듯이, 풍경 역시 작가의 삶과 내면을 읽어내고 소통하고 증언하고 있다.

'아르항가이를 떠나 울란바토르 외곽에 도착했을 때 모든 별들이 지상에서 번식을 하고 있다 글썽이는 별들이 걱정한 집들은 그림자가 길다 힘들고 외로운 종(種)들이라면 별의 엉덩이 곁에 냉큼 눕는다 희디흰 묘비명에도 별의 근심이 키릴 문자로 새겨져 있다 별은 천하를 구할 수 없구나' ('울란바토르 산동네, 성숙(星宿)지구' 중에서)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