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재일교포 가족 파탄 그린 연극 위해 9년 만에 방한

막장과 파국으로 치닫는 요즘 드라마들은 하나 같이 '무너진 가족'을 다룬다. 부모는 자식에게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고 형제들은 골칫덩어리가 될 뿐이다. 하지만 쉽게 놓을 수도, 헤어질 수도 없는 것이 가족이기에 당사자는 더 괴로울 수밖에 없다.

1997년 <가족시네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던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에게도 가족은 모든 고통의 근원지였다. 불화로 인한 부모의 이혼과 이로 인한 가출, 정신과 치료와 자살 기도 등 가장 예민한 시절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그가 삶의 무게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데뷔작인 <물고기의 축제> 이후 <생명>, <풀하우스>, <타일> 등에서 줄곧 '붕괴된 가족'을 보여주며 가족의 문제에 몰두해왔다.

'소설가 유미리'보다 앞섰던 '연극인 유미리'가 쓴 희곡들에서도 이 점은 분명히 나타난다. 지난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시작한 연극 <해바라기의 관>(유미리 작, 김수진 연출) 역시 재일교포 가족의 파탄을 그린다. 공연을 위해 내한한 유미리 작가는 "가족 붕괴를 체험한 22살의 내가 부모에게 따지듯 묻는 느낌으로 썼다"고 털어놓는다.

16살 때 뮤지컬배우로 무대 생활을 시작한 유미리는 극단 청춘오월당을 창단하고 24살까지는 연극을 했다. 이때 최연소로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해바라기의 관>은 이 무렵의 유미리가 일곱 번째로 쓴 희곡이다.

그의 작품이 무대화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6년과 2007년에 극단 백수광부의 이성열 연출로 <그린벤치>와 <물고기의 축제>가 공연되기도 했다. 이번 내한은 한국과 일본에서 <8월의 저편> 동시 연재를 시작하던 지난 2002년 이후 정확히 9년 만이다. 그동안 그의 일상과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떻게 변했을까.

당신의 작품에서 빠지지 않는 '가족'은 언제나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무엇이다. 독자나 관객들과 가족 이야기를 통해 나누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할 때 심사위원이었던 이시하라 신타로(아쿠타가와상 수상자이자 현 도쿄도지사)도 나의 가족이야기가 지긋지긋하다며 수상을 반대한 적이 있다(웃음). 하지만 하늘의 새를 표현할 때 하늘이나 구름을 빼고 새만 다룰 수 없듯이 사람을 그릴 때는 가족을 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에 대해 잘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알아야 하는데, 그게 가족이다."

돌이켜보면 당신에게 가족이란 무엇이었나.

"내게 가족은 쇠사슬과 같은 존재였다. 파친코 관리자인 아버지는 도박 중독자였고, 호스티스였던 어머니는 바람이 났다. 결국 고1 때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나는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났을까' 하고 증오심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걸 끊으려고 고등학생 때 가출도 했다.

그런데 벗어나보니 부모도 다른 관점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남자 대 여자로 보니 그들도 단지 미스매칭(잘못 결합)됐을 뿐인 사람들이었던 거다. 그때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가족도 연극처럼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며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만든 현재의 가족은 어떤가.

"연극은 끝이 있지만 가족의 삶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게 어렵다. 우선 연극과 달리 현실의 가족은 시나리오가 없다. 수많은 육아서가 있지만, 그게 정답은 아닐 거다. 애드리브로 해나가야 하는데 이게 참 어려운 것 같다."

오랫동안 가족을 다뤄오면서 당신의 가족론도 그 의미가 변했을 것 같은데.

"가장 큰 변화는 부모라는 또 다른 역할이 생겼다는 거다. 전에는 부모에게 묻기만 하면 됐지만, 이제는 아이에게 대답하면서 부모에게도 물어야 하는, 질문자와 대답자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한다. 사람은 역시 서 있는 자리가 바뀌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는 것 같다."

결코 순탄치 않은 세월을 지나 40대가 됐다. 30대까지도 질풍노도의 세월을 거쳤다고 한다면 40대에 접어든 지금의 삶은 어떤가.

"여전히 불안정하다(웃음). 주위 환경이 안정되며 오히려 초조해진다. 어릴 때부터 불안정한 환경에 있어서 그런 듯하다."

언젠가 인터뷰에서 "불행은 내 소설의 원천, 소설 쓰는 한 행복한 일은 없을 것 같다"라는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행복하고 싶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소설을 쓰나.

"당연히 불행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런 내 발언들에 얽매이게 된 것도 있다. 나답지 않은 글을 쓰면 독자들은 위화감을 느끼는 것 같다. 작품과 현실의 내 삶이 너무 가까워서 작품 속 인물에 나를 동일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답답하다. 길거리에서도 감시의 시선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한국도 염두에 두고 있다. 내 본명 대신 전혀 다른 남자 이름으로 작품을 낼 생각도 있다. 그리스식 이름의 남성작가로 해피엔딩 작품을 쓰는 거다."

최근에 발표한 <자살 국가>(일본 사회의 자살 경향을 소재로 지난해 12월 펴낸 작품 - 주)를 보면 가족에서 사회로 관심의 외연이 확장된 것 같다.

"맞다. 이 작품에는 사람들의 자살을 지켜보는 소녀가 나오는데 예전의 캐릭터들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참 신기한 게 작품을 쓴다는 것은 현실의 내가 바뀌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이번 <해바라기의 관> 공연 전에 김수진 연출가와 대담을 했는데, 그분이 이번 작품을 무대화하기로 한 이유가 나를 연극계로 다시 돌아오게 하려는 속셈이었다고 털어놓더라. 27살 때 쓴 <골드 러시>도 5월에 독일 공연이 예정돼 있는데, 이렇게 젊은 시절의 내가 쓴 작품들을 다시 만나면서 내 인생에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다."

현재 관심을 갖고 있는 다른 주제가 있다면.

달리기다. 내게 달리는 건 아주 중요하다. 2002년 3월에는 동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해 완주를 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우울증을 앓으며 항우울제나 수면제를 복용했지만, 달리기는 약보다 훨씬 건강한 선택이다. 달리는 동안에는 부정적인 생각이 바뀌게 된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

"(밖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들어오면서) 한국, 초와요. (통역가가 바로잡아주었지만) 추와요? 추-우와-요. 글은 소리내어 읽을 수 있을 정도지만 말은 역시 어렵다. 한국어밖에 쓸 수 없는 환경이 되어야 늘지 않을까.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배울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