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최효준 경기도미술관장日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롤모델로 지역밀착형 미술관 구상전문성 추구하며 관람객에 친근한 전시와 프로그램 개발 중점

돛단배를 형상화한 경기도 미술관(사진제공=경기도미술관)
거대한 돛단배 형상을 한 경기도미술관이 미술계에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2006년 10월.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미술관이 오래전부터 서울시민의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은 것에 비하면 한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경기도에 공공미술관이 들어선 시기는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늦은 시작을 만회하듯 경기도미술관은 짧은 시간 동안 가열차게 달려왔다. 무엇보다 개관과 동시에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을 확장하는 '포스트 뮤지엄'을 비전으로 내세우며 역동적으로 아이덴티티를 구축해왔다. 개관 2년 후 경기도미술관은 민영화됐지만 공공적 성격에는 변함이 없다.

지역성에 초점을 맞춰 경기도의 정치, 사회, 문화 이슈를 화두에 올린 <경기 아트 프로젝트>라든가, 패션과 같이 미술과 가까운 장르와의 융합을 시도한 <크로스 장르>, 현대미술에 대한 실험을 충동질하며 확장 가능성을 살폈던 <현대미술 실험과 확장>, 해외 미술계와의 네트워크를 새롭게 정립한 <국제 아트 프로젝트> 등의 기획전은 경기도미술관의 핵심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2009년 10월에 개관한 경기창작센터는 포스트 뮤지엄이라는 비전에 방점을 찍었다. 국내외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창작과 연구활동을 할 수 있게, 국내 최대 규모로 지은 국제 아트 레지던시. 이곳은 이제 전 세계 72개국 작가들의 입주 경쟁이 치열할 정도로 해외에서 더 유명해졌다.

미술관을 벗어나 학교나 보건소 등 공공장소에 젊은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커뮤니티형 공공 아트 프로젝트, '한 뼘 갤러리'와 '달항아리'로 유명한 강익중 작가와 전국 5만 명의 어린이,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5개월에 걸쳐 경기도미술관 벽면에 설치한 '5만의 창, 미래의 벽 프로젝트'는 경기도미술관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김홍희 초대 관장의 주도로 숨 가쁘게 달려온 경기도미술관이 지난 2월 새로운 수장을 맞았다. 전 덕수궁미술관장인 최효준(60) 신임 경기도미술관장. 부임 당시 "1200만 도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그를 만났다.

경기도미술관이 위치한 안산시 화랑 유원지에는 이른 아침임에도, 아이를 안고 산책을 나온 젊은 주부들과 조깅하는 중년 남성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쉽사리 미술관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는 그들의 발길을 어떻게 이끌 것인가, 신임 관장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었다.

경기도미술관의 아이덴티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경기도미술관은 민영화되었지만 여전히 경기도에서 예산을 편성하기 때문에 공립미술관의 기능은 가지고 있다. 도립 미술관이니 도민들에게 문화적 혜택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에는 17만 명이 다녀갔다. 전체 도민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숫자다. 미술관의 입지적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다수의 도민이 문화적 혜택을 향유할 수 없다는 점에 문제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네트워킹을 통해서 멀리 있는 도민들에게 서비스할 방법을 찾는 데 해답의 한 축을 삼고 있다.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지만 '한 뼘 갤러리'나 '찾아가는 미술관'과 같은 프로그램의 확대와 미술관 분관을 설립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가까운 지역민들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적으로 고민할 사항이다.

경기도미술관과 강익중이 함께하는 '5만의 창 미래의 벽 프로젝트'(사진제공=경기도미술관)
미술관이 위치한 안산시는 지역적으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

경기도에서 녹지가 가장 많고 해외 이주민과 다문화 가정의 비율이 높다. 안양, 군포, 수원, 화성과의 거리는 30~40분 정도 내외다. 그 지역 주민들까지 1차 유입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

미술관이 어렵고 불편한 공간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편안한 문화 활동이 가능한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고 싶다. 현재는 이주민 센터나 NGO 단체와 꾸준히 접촉하고 있어 다문화 가정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 전북도립미술관장으로 재직할 때도 다문화 가정을 초청한 적이 있다.

워낙 생활이 고달프고 근로시간이 길다 보니 시간이 나면 쉬고 싶은 마음뿐 현실적으로 미술관 와서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쉽지 않다. 따라서 단지 문화가 아니라 문화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완전히 결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4월에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의 큰 명절이 있는데, 그때 미술관이 위치한 화랑 유원지에서 행사를 진행하는 게 어떨지 이주민센터에 제안을 해둔 상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문화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그들이 자연스럽게 미술관을 방문할 기회를 마련해주고자 한다.

취임 당시, 경기도미술관의 롤 모델로 일본의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을 꼽았다. 이유가 무엇이며, 어떤 면을 경기도미술관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 시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이다. 개관 15년 전부터, 본격적으론 10년 전부터 팀을 결성해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SANAA라는 건축사무소가 건물을 지었는데, 설계사 한 분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설계 공모의 심사위원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건물부터 독특하다.

외부를 원형의 유리벽으로 구성하고 그 안에 여러 개의 화이트 큐브가 자리한 형상이다. 벽이 투명해 내부의 활동을 들여다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점이 호기심을 자극해 단계적으로 사람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사방에 진입로가 있어 미술관이란 공간이 전혀 권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전문성을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초등학교 3학년 정도로 눈높이를 맞추는 대중성까지 겸비했다. 21세기 미술관이라는 이름에새로운 세기의 개념을 구현했다고 보고, 아이들을 위한 '마루비'라는 애칭을 따로 만들었을 정도로 관람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외부 방문객뿐 아니라 지역민들이 가족 단위로 많이 찾는다.

현재 경기도미술관은 하드웨어적인 면에서도 개선할 점이 많다. 하지만 예산의 한계가 있으니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에서 취할 수 있는 부분은 소프트웨어적 측면일 것이다. 전문성을 추구하면서도 친밀하게 관람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전시와 프로그램에 중점을 두고 있다. 도민이 빈도 높게 드나드는 일상적인 공간이 될 수 있게 지역밀착형 패러다임을 갖추는 게 가장 시급하다.

전시를 포함한 올해의 중점 사업은 무엇인가.

다음 전시는 매년 진행해오던 <신 소장품 전>이다. 하지만 학예사들과 회의하면서 신 소장품을 나열하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까지 이 기획전에는 현대적이고 전위적인 작품이 많이 등장했다. 대중에게 미술 작품 중에서도 특히나 현대미술은 난해하고 복잡하다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넘길 일이 아니다. 현대미술과 관람객을 어떻게 소통시킬 것인가가 바로 큐레이터가 할 일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 제목을 <친절한 현대미술>로 정했다. 한번에 작품을 모두 받아들일 순 없더라도, 다시 아이들과 친구들과 올 수 있는 전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이든 재료를 어떻게 가공하고 요리하느냐가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소통의 문제라고 본다.

여름에는 체험 교육 전시를 하려고 한다. 이젠 예술가뿐 아니라 학생이나 근로자에게도 창의성의 발현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오감을 느끼고, 잠자는 창의력을 어떻게 갈고 닦고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전시를 통해 체험하는 자리다. 그래서 요즘 창의성에 관한 책을 집중적으로 읽고 있다.

해외에 앞서서 국내의 수많은 도립, 시립 미술관 안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미술의 특정 장르를 특화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한다. 하지만 도 미술관으로서, 도민 전체를 아우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장르나 분야에 대해 전시나 컬렉션을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 그보다는 여러 장르를 아우르면서 다른 지역의 미술관과 연대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또 장르융합적인 전시도 앞으로 지속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경기도에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많다. 양평을 비롯해 경기도로 나와서 작품 활동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경기도 작가들의 전시를 정기적으로 열고 그들의 아카이브도 구축해나간다면 경기도미술관만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최효준 신임 경기도미술관장은…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MBA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고고미술사학과 석사를, 원광대에서 조형미술학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성문화재단 수석연구원과 대구예술대 겸임교수,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수석 큐레이터), 전북도립미술관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관장 등 국공립과 사립 미술관을 두루 거쳤다. 2011년 경기도미술관장으로 선임됐으며 임기는 2년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