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편혜영 세 번째 단편집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 냉소적으로 관찰하고 무미건조하게 그려

그녀였다.

지진, 방사능 유출, 원전 폭발. 쓰나미처럼 이어지는 대재앙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오늘의 작가는 소설가 편혜영이었다. 그의 소설은 견고한 것들이 무너지는 일상을 통해 세계의 이면을 우울한 렌즈로 담아냈다.

편의 이야기를 특징짓던 그로테스크하고 하드고어적인 묘사는 최근 단정한 모양새로 변했지만, 소설 전반에 흐르는 그 우울한 기분은 세 번째 단편집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리고 역시, 지진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들.

'도시는 두 개의 지질학적 판이 만나는 근처에 있었고 오래 전에는 기록에 남을 만한 강진이 있었다. (…)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온 지진 전문가가 말했다. 그런 피해가 있었지만 앞으로 일어날 지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무서운 건 말이죠. 아무도 언제 어느 도시에서 지진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저녁의 구애> 50~51페이지, 단편 '저녁의 구애')

견고한 것들이 무너지는 틈에서

"일본 대지진 관련해서 뭐 엮을 만한 것 없나?"

월요일 기획회의. 국장이 말했을 때, 다들 심드렁한 포즈로 각자 취재수첩을 만지작거렸다.

"글쎄요. 재난 관련 영화, 소설 묶어서 소개하는 기사, 너무 단편적이지 않나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란 아도르노의 말을 수첩에 쓰면서, 필자는 생지옥으로 변한 재난을 기사 아이템으로 쥐어짜야 하는 밥벌이에 환멸을 느꼈다. 그리고 매주 그러하듯, 출판 관련 저자 인터뷰를 준비하며 책을 읽고, 책에 대한 단상을 정리하고, 저자에 관한 인터뷰와 몇몇 작품론을 찾아보았다.

필자가 다른 와 다른 게 있다면 인터뷰를 통해 만난 거의 모든 취재원과의 대화를 녹음하고 이 녹음을 파일로 만들어 둔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그 취재원과 다시 만날 때, 어떤 질문을 했고 또 어떤 대답을 들었는지 취재원과 필자가 공유한 감각과 합의하지 못한 의견은 무엇인지, 그래서 그에게 어떤 예의로 대해야 할지 가늠할 때, 그 파일은 요긴하게 쓰였다. 두 번, 세 번 인터뷰 횟수가 반복되는 취재원일수록 이 인터뷰 파일의 용량도 늘어났다.

'인터뷰 녹취 목록'의 편혜영 편에는 이런 말이 기록돼 있었다.

"장편은 지진에 대한 글을 보다가 생각했어요. 가장 견고할 거라고 생각하는 땅이 흔들리는 게 지진이잖아요. 대지진이 경고되는 나라에서는 아주 경미한 지진에도 사상자가 발생한대요. 대지진일거라고 생각하고 건물이 붕괴될까봐 뛰어내리기 때문에. 살려는 욕망이 오히려 그 사람을 죽게 한 거잖아요. 저는 열심히 해보려고 할수록 삶이 치욕이 되거나 수렁에 빠지는 아이러니를 좋아해요."

이렇게 쓴 소설은 첫 장편 <재와 빨강>이었다. 견고한 일상이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 필자는 이 소설을 편이 이전에 낸 단편집의 연장선으로 읽었다. 그때까지 편이 쓴 소설은 인물을 둘러싼 일상이 하나씩 무너질 때를 그린 소설이었고, 그 파괴된 일상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현실성 없는 형식이 대부분이었다.

이때 편은 '그렇다 치고'의 세계를 만든 후 이 세계에 인물을 밀어 넣고 가만히 응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편의 비현실적이면서도 우울한 묘사는 퍽 어색하고 불편해서 편의 작품 읽기란 유쾌한 독서일 수 없었다. 하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또한 가망 없는 우리 현실과 닮은꼴이어서 한번 읽기 시작한 책을 덮을 수도 없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지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장면을 건너뛰면 이야기가 무너지는 탄탄한 문장력은 작가 특유의 문체로 굳어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편은 철저한 3인칭의 세계를 만들 줄 아는 몇 안 되는 젊은 작가였다.

시지푸스 바위처럼

기획회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편이 말했다.

"제 작품에 지진 얘기가 많이 나와요. 이번 단편집에도 나오죠."

하지만 세 번째 단편집 <저녁의 구애>를 읽으며 편혜영의 작품론은 새롭게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삶은 곧 지옥이란 작품 분위기는 그대로이지만, 편혜영 소설의 특징으로 소개된 하드고어적인 묘사는 편재하는 일상의 서술로 바뀌었다.

'구내식당의 정식 A세트를 기준으로 그의 하루는 데칼코마니처럼 오전과 오후가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오전과 오후뿐만이 아니었다. 자정을 기준으로 하면 어제와 오늘이, 주말을 기준으로 하면 지난주와 이번주가, 연말을 기준으로 하면 작년과 올해가 같았다.' (83페이지, 단편 '동일한 점심')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 8편은 모두 현대인의 일상을 무미건조하게 그린 이야기다.

기시감이 드는 낯익은 길에 섬뜩한 정적과 암전이 잇달아 찾아드는 산책로(단편 '산책'), 규격화된 복사기처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복사실(단편 '동일한 점심'), 한 치 오차도 없을 것 같던 통조림 공장에서 소리 없이 사라진 공장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굴러가는 공장 시스템(단편 '통조림 공장'), 일상의 일탈을 감행했다 고속도로 한 복판에서 길을 읽고 불안에 떠는 남자(단편 '크림색 소파의 방'). 우연의 시작이 점점 부풀리며 필연으로 이어지는 전개 방식은 이 책에 담긴 단편 모두 동일하게 반복된다.

이 반복의 굴레가 공포스러운 것은 '그리므로 모든 미래는 과거와 동일한 시간일 것'(같은 페이지)이므로. '현재가 과거와 같듯이 미래는 현재와 같을 것'(같은 페이지)이므로. 그러므로 우리의 의지나 노력은 세계의 재앙이나 동일성의 패턴 아래 무미하기 짝이 없을 것이므로. 작가는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냉소적으로 관찰하고, 건조하게 서술한다. 편이 말했다.

"단편 쓰는 동안에는 몰랐는데, 묶어보니 비슷한 생각을 변주하고 있더라고요. 소설이 각양 각색이지만 한 권에 모아두니 교집합으로 겹치는 세계가 있어서 맘에 들었어요."

이전 세 권의 책이 특별한 상황을 통해 보편적인 세계를 그린다면, 이번 신간은 보편적 일상을 통해 우리 삶을 특별하게 바라보도록 만든다. 견고한 기계문명과 첨단 설비 시스템으로 둘러싸인 도시, 위생과 편의로 포장된 도시는 인간을 비정서화, 비문명화, 비야만의 세계로 몰고 간다.

앞으로 편의 소설은 조금 더 변할 듯한데, 그 방향은 대략 철저한 3인칭의 세계에서 1인칭의 세계로의 접근이다. 작가의 사유는 직접 드러날 것이고, 인물은 지금보다 표정을 가질 것이다. 단단한 차돌 같은 문체도 말랑말랑하게 바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인물을 둘러싼 상황이 어땠는지에 대해서 썼는데, 요즘은 그 상황에 놓인 인물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심이 가요. '저녁의 구애'에서도 화자의 독백이 만연체로 나오잖아요. 그게 재밌어요. 이제 처해진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에 처한 사람의 내면을 보게 된 것 같아요."

삶이 수렁에 빠지거나 치욕이 되는 아이러니. 포털사이트의 뉴스와 텔레비전 시사 다큐, 편혜영의 소설이 나란히 겹친다. 어떤 것이 허구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상황은 급박하고, 슬픔과 공포는 뒤섞인다. 그의 소설에 흐르는 그 정체 모를 기류가 현실이 된 것 같다.

아직, 우리가 허구를 읽는 이유는 이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