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판타지' 저자 김윤성, 류미연럭셔리 브랜드가 어떻게 시대를 이끌고 자본주의와 접목했는지 밝혀

최근 '명품 판타지' 펴낸 (좌로부터) 류미연, 김윤성 저자
"내 역할은 매혹시키는 것이다."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말은 오늘날 패션의 정곡을 꿰뚫는다. 패션은 단지 옷이 아니다. 디자이너들은 옷에 쓸모를 넘는 상상을 불어 넣고, 마케팅은 바톤을 이어 받아 옷에 대한 욕망을 부풀린다.

쇼윈도와 광고, 패션 잡지 등 전령사들은 장담한다. 올 봄 형광 분홍색 드레스를 선택하면 당신은 배우처럼 시선을 끌 것이라고, 사랑을 얻고 자신감에 벅차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추위와 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옷이 아니라, 옷을 둘러싼 상상의 날개들과 낭만적 약속들, 이에 대한 믿음과 돈이 교환되는 관습이 오히려 패션이다.

그래서 패션은 찬란하다. 당신이 입는 것이 당신을 구원한다고 속삭인다. 우아한 아플리케 자수가 놓인 드레스는 쳇바퀴 같은 일과를 견딜 수 있게 해주며, 개선장군 같은 어깨의 재킷을 입으면 당신의 퇴근길은 런웨이가 된다. 패션은 자본주의가 권하는 합법적 일탈이다.

그러나 일탈은, 지나치면 해롭다. 점점 더 빠르고 많은 소비를 강요하는 패션의 질풍노도가 일상을 뒤흔든다. "우리들의 소비는 점점 더 물질의 세계에서 멀어지고 환상, 황홀함, 차별화되는 가치 등 상징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류미연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이세탄 백화점'. 2010년 봄, 도쿄 신주쿠의 이세탄 백화점 쇼윈도 안에는 크리스찬 디오르의 오트 쿠튀르 드레스가 걸렸다. 기모노를 입은 이 소녀도 디오르의 드레스를 입고 싶을까?
책 <명품 판타지>는 지금 패션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묻는다. 패션이 정말 소비자를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럭셔리 브랜드 가방과 적금을 바꾸고, 킬힐을 신느라 발을 망가뜨릴 가치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우리 인생에 맞는 옷을 잘 입고 있을까?"

옷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냉정해야 한다. 패션을 사회적 현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명품 판타지>는 패션의 정점인 럭셔리 브랜드가 어떻게 시대에 반응하는 동시에 시대를 이끌었는지, 옷 입는 방식에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논리를 접목시켜 왔는지 밝힌다.

환경운동연합과 기후변화센터에 몸 담았고 환경대학원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윤성과 대학에서 섬유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애니메이터로 일해온 류미연이 "럭셔리가 주인공인 화려한 판타지를 올리는 무대 뒤를 꼼꼼히 뜯어봤다." 저자들이 '경계인'인 만큼 패션과 사회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실마리로 선택된 것은 패션 브랜드 샤넬. 패션 판타지가 작동하는 방식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당대의 '신여성'을 위해 만든 실용적인 수트는 오늘날 감히 오피스룩으로 입을 수 없는 가격에 팔린다.

1926년 패션 잡지 <보그>로부터 "패션의 포드 자동차이며 대중들이 입는 표준의상이 될 것"이라는 평을 받으며 데뷔한 샤넬의 '리틀 블랙 드레스'는 오늘날 파티장에서 환영받는다.

<명품 판타지>는 이런 아이러니를 걷고 패션의 제자리를 찾자고 제안한다. 샤넬이 명성을 얻은 것은 환상을 심는 전략이 아닌, 모더니즘의 정신 덕이었다.

여성들의 치맛자락이 바닥을 쓸고 다녔던 시대에 종아리까지 올라온 '미니' 기장은 남성들과 동등하게 대우받고자 노력한 여성들에 대한 지지의 표현이었다. 구두코를 검은 색 가죽으로 덧댄 '투 톤 펌프스'는 여성들이 활동하다 구두가 긁혀도 티 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저자들은 "패션의 상징성이 너무 커졌다"고 말한다. "지금 럭셔리의 소비는 그저 내가 예쁘고 비싸고 유행하는 물건을 살 능력을 가졌다고 거리에서 자랑하는 상징적 소비일 뿐입니다. 하지만 잠시 심리적 만족을 얻는다고 현실의 괴로움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게 문제죠. 우리는 두 발을 땅에 붙이고 현실을 살아야 하니 말입니다. 내 현실은 내 잔고와 내 건강과 내 가족과 친구들이고 이건 판타지로 바꿀 수 없습니다."

'럭셔리'를 '명품'으로 옮기는 한국식 오역에 반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럭셔리는 직역하면 사치품입니다. 그걸 명품으로 번역하는 건 시장편향적이죠. 명품이라는 단어는 판타지의 장막을 두텁게 만듭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를 필요가 있어요. '사치품'이 입에 붙지 않는다면 차라리 그냥 '럭셔리'라고 불렀으면 해요. 그럼 조금이나마 더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패션의 영향력은 일부 소비자에게만 미치지 않는다. 럭셔리 브랜드가 각종 매체와 손을 잡으며 '문화권력'을 쥐었기 때문이다. 영화와 TV, 잡지는 옷의 아름다움과 함께 특정한 정치·경제적 입장까지 전파한다.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미국 TV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가 대표적인 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진짜 주인공은 옷 잘 입는 전문직 여성들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와 닷컴 회사들이 연일 폭죽을 터뜨리고 월스트리트가 세계금융을 주무르던 시절의 뉴욕"이다.

칼럼니스트인 캐리와 그의 친구들이 먹고 마시고 입는 일상에는 당시 맨해튼의 호사스러운 공기가 속속들이 배어 있다. 여성들의 달콤한 옷차림은 들뜬 시대를 반영한 것이었고, 동시에 금융자본주의에 잠복한 위험성을 가리는 포장이었다.

드라마는 "미국 정부와 국민들이 빚더미 위에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뉴욕 시민의 풍족한 소비생활을 찬양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 후,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신음하게 했다.

그러므로 영리한 소비자는 통장뿐 아니라 패션과 사회가 얽힌 '생태계'를 지킬 수 있다. 이제 산업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조화롭고 안정된 패션 시스템을 고민할 때다.

"패션 생태계가 건강하게 오래 가려면 다양한 '패션 종'이 필요합니다. 주춧돌인 소재 생산자와 디자이너들이 열심히 생산하고, 소비자들이 다양한 기호와 취향의 그물을 쳐주어야 하죠. 그런데 한국 패션 생태계의 경우 생산자가 거의 없고 소비자의 다양성은 매우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니 외부 패션 생태계에 의존하고 있어요."

이는 해외 럭셔리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서 유난히 선전하는 이유다. <명품 판타지>가 한국 패션을 이야기하기 위해 프랑스 태생 럭셔리 브랜드의 역사를 재조명한 까닭이기도 하다.

혁명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프랑스인들이 봉건적 귀족 문화를 상징하는 럭셔리 브랜드를 크게 선호하지 않는 반면, 한국인들은 적극적 해석 과정 없이 럭셔리 브랜드를 소비한다.

저자들은 앞으로 "한국 디자이너들이 예술가와 사회활동가 등 그동안 접하지 않은 이질적인 이들과 더 자주 많이 만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야 지금 여기에 발붙인 패션이 태어날 것이다. 코코 샤넬이 남긴 교훈이다. 그의 모더니즘은 당대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꽃피었다. 앙드레 김이 패션을 위한 패션을 추구하는 동안 코코 샤넬은 파리의 평범한 여성들이 무엇을 입어야 할지 고민했다.

환경에 대한 고려도 중요하다. 한국 패션 시장의 한 축을 차지한 반환경적인 SPA 브랜드는 패션은 물론 삶의 지속 가능성을 해친다. 패션 브랜드라고 사회적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규모가 큰 기업은 사회가 던지는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할 의무가 있습니다.

시장 스스로 바뀌기는 어렵겠지만 소비자들이 요구한다면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세기 영국 귀부인들은 모자에 다는 화려한 깃털 하나 때문에 새를 죽인다는 사실을 알고 깃털을 쓰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대중이 이런 자각을 할수록 생태적이지 않은 패션의 입지는 좁아지지 않을까요?"

<명품 판타지>는 저자들이 구상한 '판타지 자본주의' 시리즈의 첫 걸음이다. 현재 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거대한 판타지들, 한국 소비자들의 생활을 공중부양시켜온 욕망의 모호한 대상들을 파헤친다는 취지다. 아파트와 대학교가 해부대에 오를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