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국립발레단 김세연 출연 호평… 7월 창작 발레 갈라 공연 프로듀서로 참여

발레가 문화계를 떠들썩하고 있다는 기사가 잇따라 나오고 있지만, 사실 이 말은 반만 맞는다. 발레는 언제나 '이미지'만 대중문화에게 차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언론에서 언급하는 <개그콘서트>의 '발레리no'나 영화 <블랙 스완>, 혹은 김연아의 새 프로그램인 <지젤> 등은 사실 발레의 인기와는 무관하다. 이런 '발레의 환상'을 보며 즐기는 사람들은 '환상의 발레'를 보러 공연장을 찾지는 않는다. 발레 대중화가 '다음 단계'에서 정체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국립발레단의 <지젤>이 매진을 기록한 데 이어 유니버설발레단의 <돈키호테>가 호응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이런 호응의 배경에는 <돈키호테>가 가장 대중적인 발레 작품이라는 면도 있지만, 다른 요인도 있다. 바로 첫 번째 발레 붐의 주역인 발레리나 김세연의 출연이다. 8년 만에 옛 파트너인 엄재용과 재회한 그는 소녀 같은 예전의 키트리 대신 성숙한 여성미가 넘치는 새로운 키트리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지금의 발레마니아가 탄생한 것은 발레스타들이 국내로 복귀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이었다. 현재 국립발레단을 이끄는 쌍두마차 김지영과 김주원은 러시아 유학을 마치고 대중 앞에 나서 발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이들과 함께 발레 붐을 이끈 김세연 역시 이때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유니버설발레단만의 차별화된 매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발레계 '3김 시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3김 시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입단 후 3년 만에 수석무용수의 자리에 오른 김세연이 2년 후 불현듯 해외 진출을 선언했기 때문. 그것도 프리마 발레리나라는 정상의 자리를 놔두고 군무진으로 옮기는 터라 팬들은 의아해했다.

하지만 김세연은 보스턴발레단을 거쳐 같은 해 스위스의 취리히발레단으로 이적했다. 지난 2007년에는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으로 이적해 올해로 벌써 네 번째 해를 맞았다.

그가 옮긴 무용단의 특징은 공통적으로 클래식보다는 컨템포러리 발레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주로 클래식 발레만 해왔던 김세연에게 이는 발레리나로서 큰 모험이었다. 그래서 보스턴발레단에 입단할 때 "스타일에 제약받지 않고 모든 장르를 다 수용할 수 있는 무용수가 되겠다"라고 했던 그의 선언은 자신과의 약속이자 다짐이기도 했다.

"당시는 사실 컨템포러리 발레에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돌이켜보면 다양한 안무가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고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발레리나로서 성장했다면 그건 다양한 종류의 컨템포러리 발레를 습득했기 때문일 거예요."

나라와 지역마다 천차만별인 춤의 스타일을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스턴과 취리히, 암스테르담을 거쳐 다양한 안무가들과 만나 작업해온 김세연은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자신만의 스타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국 발레는 빠르고 가볍지만, 유럽 발레는 섬세하고 예민하거든요. 이런 다른 스타일들을 내 안에서 내 스타일로 만들어 표현하는 게 관건인데, 이제는 그게 어느 정도 가능해진 것 같아요."

'가능해진 정도'라고 겸양하지만 이제 국내 발레리나 중에 김세연만큼 다양한 컨템포러리 발레를 보여주는 이는 드물다. 특히 그의 강점은 안무가와 함께 작업하며 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의 역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점에서 그는 국내 무용수들도 안무가가 가져온 기존 작품을 그대로 추기보다는 안무가들과 협업하며 만들어내는 창작 시도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친다.

이 같은 개인적인 욕심과 유럽에서의 경험을 배경으로 그는 오는 7월 직접 '판'을 벌일 예정이다. 자신이 직접 협력 프로듀서로 참여해서 안무가와 무용수가 함께 작업한 창작 발레 갈라 공연을 기획한 것이다.

"이번 공연은 기존의 갈라 공연과는 다른 형식과 내용이 될 거예요. 전 세계적으로 컨템포러리 발레도 많지만, 그동안 국내에서는 대개 클래식 발레 위주로만 갈라가 기획됐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컨템포러리 발레 위주로 구성해봤어요."

그가 처음으로 프로듀서로 데뷔하는 이번 공연에는 벌써 유니버설발레단의 임혜경과 국립발레단의 김지영 등 한국발레를 대표하는 스타 발레리나들도 섭외된 상태다. 지난 2007년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는 첫 안무작인 <베토벤 프리즈>로 다른 재능도 선보였던 그인지라 안무가로서의 계획도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단호하다.

"안무보다는 이번 공연처럼 프로듀싱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안무가와 무용수, 예술가와 관객 사이에서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자신의 성격을 내성적이라고 표현하는 김세연은, 그러나 성격과는 반대로 모험과 도전을 즐겨왔다. 미국과 유럽을 아우르고 안무와 기획까지 진출한 그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아직은 없지만, 분명히 생길 것 같아요. 계획을 해봤자 그대로 가기보다는 운명의 힘에 이끌리는 것 같거든요. 물론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지만, 원래 후회를 안 하는 성격이어서요(웃음). 그저 몸이 아프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최선을 다해 춤을 추면 좋을 것 같아요."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