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주)에이트 인스티튜트 대표

김중만 사진작가는 자신의 꽃, 나비 시리즈를 비롯해 한국의 이미지 작업과 세상의 오지 시리즈에 대해 열강을 한 뒤 수강생들의 열띤 질문 공세에 강의 시간을 훌쩍 넘겼다.

호기심에서 진지한 질문까지 여분의 과정을 끝낸 김중만 작가와 수강생은 모두 만족한 표정으로 짧은 만남을 아쉬워했다. 3월 2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에이트 인스트튜트 강의실 풍경이다.

이번 달에는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손철주 학고재 주간의 강의가 예정돼 있다. 강사와 강의 수준, 수강생의 면면이 웬만한 지식인 포럼에 견줄만하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유수의 기관이나 단체가 아닌 민간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바로 민간 최초의 문화예술전문교육기관인 에이트 인스티튜트(ait)이다. ait를 출범한 장본인은 국내 1호 미술품경매사인 박혜경(43) 대표다.

일반에게는 2007년 국내 미술시장 최고가인 45억2000만 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빨래터'와 최근 고미술품 경매 최고가인 18억 원에 낙찰된 조선 백자 '백자청화운룡문호'의 기록이 모두 박 대표의 손끝에서 나왔다고 하면 쉽게 기억할 것이다.

아트스페셜리스트 과정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박혜경 대표
국내 최대 미술품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의 대표 경매사 총괄이사로 안정된 길이 보장된 그가 이를 마다하고 새로운 길을 선택한 배경은 무엇일까?

"15년간 옥션에서 일하면서 작가와 컬렉터, 미술 관련 인사들을 만나고 대학이나 기업 등에 출강하면서 미술이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광범위하고 미술에 대한 니즈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이것을 충족시켜줄 역할을 하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미술을 매개로 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중간자 역할을 하기 위해 에이트 인스티튜트를 출범했습니다."

박 대표는 대기업 홍보마케터로 일하다 1996년 갤러리 아트디렉터로 미술시장에 입문한 뒤 15년 동안 최고의 미술품 경매사로 근무하다 2010년 3월 에이트 인스티튜트를 설립했다.

박 대표는 미래를 준비하면서 2009년 여름, 2개월 가량 휴가를 내고 미국 9개 도시를 돌았다. 미술관, 아트스페이스, 민간단체 등을 방문해 선진국이 갖추고 있는 문화 인프라를 목도하면서 그들이 선진국인 이유가 '문화'에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확인했다.

또한 정보통신부장관을 지낸 공학박사 배순훈 관장이 순수 미술의 본산지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을 맡고, 제프 쿤스를 키워낸 뉴욕의 30년 아트딜러 제프리 다이치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LA MOCA) 관장으로 선임되는 시대의 흐름을 보며 자신의 오랜 꿈과 이상에 대한 소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미술품경매사 국내 1호 박혜경 대표가 경매를 진행하는 모습
"통섭의 시대에 문화컨텐츠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 자명하고, 사회가 변화해가는 속도만큼 문화계 종사자나 이를 즐기는 애호가, 그리고 사회 오피니언 그룹들에게는 더없이 아트 컨텐츠에 대한 인식과 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박 대표가 인생 3막을 열면서 에이트 인스티튜트를 설립한 이유다. 에이트 인스티튜트를 통해 오늘날 통섭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 미술애호가, 컬렉터, 미술계 종사자들에게 미술에 관한 이론 및 시장 트렌드 분석을 통해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고 창의적 마인드 함양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다.

에이트 인스티튜트 교육은 크게 오피니언리더 과정과 아트스페셜리스트 과정, 어린이문화예술교육 과정으로 나뉜다.

오피니언리더 과정은 기업 최고 경영자, 오피니언 리더 등을 대상으로 한 '신예(新藝)' , 20~40대 각 분야 전문가, 기업의 경영자가 주축인 '락예(樂藝)', 미술 컬렉터, 문화예술애호가들이 대상인 '호예(好藝)' 과정으로 구분된다. 예술을 통한 리더십 역량 강화와 창조적 감성 경영, 예술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둔다.

올해 신설한 아트스페셜리스트 과정인 '명예(明藝)'는 미술계종사자, 또는 미술계 종사를 희망하는 자, 미술계에 깊은 관심이 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스페셜리스트를 양성하는 코스다. 여전히 서울옥션 메이저 경매 등을 맡고 있는 박 대표는 주로 이과정의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어린이문화예술교육과정은 미래 글로벌 인재들과의 경쟁을 위해 한국적 미감을 기본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을 한다.

박 대표의 설명을 들으니 기존의 대학이나 예술의 전당 등의 아카데미 과정과의 차이가 궁금했다.

"저도 강의를 나가지만 그러한 곳은 소양교육 차원이거나 소셜 커뮤니티를 위한 측면이 강해요. 에이트 인스티튜트처럼 A to Z까지 통합적인 교육이나 전문적인 강의는 하지 않죠."

박 대표의 경력과 올해 신설한 스페셜리스트 과정과 관련해 국내 미술시장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현재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술시장이 나아질 것이라는 게 박 대표의 전망이다.

올 초 미술시장이 개선의 여지를 보이고 있고, 특히 고미술이 각광을 받은 것은 좋은 작품에는 언제든 수요가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또 세계 미술시장 측면에서 아시아 작가, 아시아 마켓의 성장세가 뚜렷한 것도 밝은 징조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국내 시장부터 백남준, 이우환 같은 글로벌 작가가 많이 나와야 한다며 과감하고 전략적인 국내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박 대표는 "지금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등 아시아 시장에서 한류 흐름에 맞춰 코리아 컨템포러리를 좋아하면서 이에 관한 전문가를 만나고 싶어하는데 그런 일꾼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에이트 인스티튜트에서 그러한 커리큘럼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5월이면 에이트 인스티튜트가 출범한 지 1년이 된다. 그간의 소회도 많을 듯했다. 박 대표는 무엇보다 강단에 서준 강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좋은 강사들로 인해 수강생들이 만족해 하고 멤버들의 평가가 좋아 60% 넘는 수강생들이 재수강을 희망할 정도로 성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박 대표에게 에이트 인스티튜트의 궁극적인 비전을 물으니 미술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의 장을 넓히고, 각 분야의 다양한 니즈에 적절하게 응해 통섭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에이트 인스티튜트를 운영하면서 미술을 매개로 소통하려는 분들이 미술인 뿐 아니라 기업인, 예술인, 일반인 등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또 한국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통섭, 융합이라는 말이 미술에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아트 컨텐츠가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앞으로 아트 컨텐츠 서비스가 많아질 텐데 에이트 인스티튜트가 그러한 역할에 충실하는 기관으로 자리를 잡아가려고 합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