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대석]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초대 관장인 선친 '전문가 양성' 강조… 디스플레이 개선할 부분 많아관람객 수에 걸맞은 질 높은 박물관 위해 내실화ㆍ정보화ㆍ세계화 박차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편안하고 재미있는 휴식처 같은 박물관, 그러면서 전문성을 갖춘 박물관이 되도록 해야죠.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의 내실을 기해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발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지난주 관장실에 가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편안하게 찾는 박물관에 대해, 그리고 박물관의 질적 성장을 몇 차례 강조했다.

지난 2월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취임한 김영나 관장이 짧은 기간 업무파악을 하고 직접 박물관을 돌아보면서 내린 나름의 결론이자 소신이기도 하다. 이는 김 관장의 국립중앙박물관과의 오랜 인연과 애정, 해외 유수의 박물관 및 미술관 경험, 서울대 박물관장을 지낸 이력 등과 무관하지 않다.

김 관장은 초대 국립박물관장인 김재원(1909~1990) 박사의 딸로 어려서부터 박물관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김 관장이 신임 국립중앙박물장에 내정됐을 때 일각에서 서양미술사 전공자라는 이유로 우려했던 시각은 선친으로 인해 적잖이 불식됐다.

김재원 박사는 무려 25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장 직을 맡으면서 박물관의 기틀을 세웠고, 광복과 미군 군정, 6∙25전쟁의 열악한 시대에 박물관 유물을 지키고, 키워냈다.

1974년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아버지 김재원 초대 국립박물관장과 함께
김 관장은 그러한 선친이 힘이 되지만 한편으론 부담도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평생 일궈놓으신 것을 잘 이어나가야 한다는 부담이 많아요. 지금은 박물관이 비교할 수 없이 커졌지만 아버지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죠."

김 관장은 선친이 박물관장을 하면서 특히 강조한 것이 '전문가 양성'이라고 말했다.

"해방 이후 전문가가 없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셨어요. 고고학, 미술사는 해외에 나가서 배워야 한다며 록펠러 재단이나 하버드대 옌칭 재단에서 연구비를 끌어와 유학을 많이 보내셨어요."

어려서부터 박물관과 남다른 인연을 맺어온 김 관장에게 박물관은 어떻게 비쳐졌을까. 개선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물었다.

"박물관은 여태까지 학술적인 부분에 비중을 두었는데 외국 박물관과 미술관을 봤을 때 전시 측면에 개선할 부분이 많아요. 박물관은 역사교과서가 아니에요. 글로 배우는 곳이 아니라 시각으로 배우는 곳입니다. 유물, 미술품에 대한 이해가 앞서고 이것을 통해 시대와 역사를 아는 것인데 현재 박물관의 전시 중에는 글로써 설명하는 게 많아요. 가령 진열장을 보면 유물은 아래에 있고 위에 설명을 붙여서 전체적으로 잘 안 보입니다. 좀 더 과학적으로 아름답게 디스플레이를 하면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을 거에요."

김 관장이 취임해 가장 강조한 것 중 하나가 '전시'이다. 사고의 틀을 바꾸는 전시, 동서양과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보며 박물관의 질적 성장을 기할 수 있는 전시가 대표적인 예다. 김 관장이 바라고 추구하는 전시는 어떤 형태일까.

"시공을 뛰어넘는 전시를 하고 싶어요. 시대를 구별하지 말고 섞어서 하는, 그리고 동서양을 비교해볼 수 있는 전시 같은 형태죠. 외국 박물관의 한국실에 가보면 대부분 조선 백자뿐인데 현대 백자를 함께 진열하거나 현대 회화를 같이 놓든지 하면 전통에 그대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어떻게 면면이 살아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어요. 또 올 가을 기획 특별전으로 한중일 초상화전을 하는데 서양 초상화와 한국 초상화를 같이 놓고 본다든지 하는 것이죠. 예전에 박물관 초상화전은 1910년이 끝이었는데 근대 이후 자의식이 싹트면서 자화상, 가족 초상화가 크게 늘어났어요. 이러한 것을 함께 보여주는 형태의 전시를 하는 겁니다."

김 관장은 미국 뮬렌버그대 미술과를 나와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국내에서 서양미술사학회장,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장을 지낸 서양미술사 전공자다. 국내외에서의 그러한 경력이 박물관 운영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김 관장은 외국 유수의 박물관, 미술관을 수없이 다녀 본 경험을 토대로 '편안하고 친절한 박물관'올 지향했다.

"박물관이 예전에는 유물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뒀는데 지금은 관람하고 쉬기도 하면서 아트샵에서는 쇼핑을 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는 게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외국 박물관의 경우 코트를 보관해주거나 무거운 배낭, 짐 등을 맡아주는 휴게실 같은 공간이 있어서 홀가분하게 몇 시간씩 박물관을 돌아볼 수 있어요. 앞으로 이런 공간을 넓혀나갈 계획입니다."

김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것과 관련, 공연, 아트샵, 식당 등을 운영하는 국립박물관문화재단과 협의해 개선해 나가겠다면서 우선 박물관 규모에 비해 부족한 식당을 올 봄부터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김 관장은 취임 이후 전시체계의 변화와 함께 어린이, 학생들의 관람에 큰 관심을 둬왔다. 아이들의 미래에 박물관이 적잖은 역할을 하고, 박물관 관람객 300여만 명 중 어린이, 학생의 비율이 약 40%에 이르는 상황이다.

"어릴 적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은 아이들 정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어른이 돼서도 찾아오게 만들죠. 그런데 현재의 관람 형태는 문제가 많아요. 단체로 오는데다가 교사들의 지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교육이 어렵고, 체험학습을 강조하다 보니 어린이들이 부담스러워해요. 어린이교육 프로그램을 학교와 협조해 나가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겁게 관람해 다시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부분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관람객수는 2010년 306만여 명이었다. 영국의 박물관 분야 국제 권위지인 아트뉴스페이퍼에 따르면 이는 세계 9위, 아시아 1위이다. 하지만 소장 유물이나 전시 등의 소프트파워 면에서는 그러한 기록에 상응하는 세계적 위상을 갖추었다고 보기에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김 관장은 박물관의 실천 목표를 내실화ㆍ정보화ㆍ세계화로 정하고 질적 성장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렇다면 질적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동력은 무엇일까. 김 관장은 '지식', 즉 박물관의 전문성을 꼽았다.

"우리 박물관이 관람객 수에서는 세계적인 위치에 있지만 명실상부한 세계적 박물관이 되려면 '지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누구 하면 어느 분야의 전문가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학예사들의 연구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학문의 경향인데 외국에 가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외국에는 한국에 없는 자료들도 많이 있습니다."

김 관장은 박물관의 세계화와 관련해서는 타국과의 학문적 교류가 중요하고 외국에서 한국미술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인사를 보면 박물관장이 많은데 외국의 유명 학자는 드물어요. 박물관이 세계화되려면 박물관도 중요하지만 아시아 학회 박물관에 나가 발표도 하고 해외 주요 대학 미술사 커리큘럼에 한국미술 강좌가 있어야 해요. 또 외국에서 한국미술사로 박사가 나와야 합니다. 아시아미술에 대해 외국에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시아 큐레이터를 구하는데, 한국미술을 알릴 적격자가 부족한 게 아쉽습니다."

김 관장에게 세계적 박물관과 비교해 우리 박물관이 특히 취약한 분야를 물으니 '전시효과' 부분이라고 말한다.

"외국은 디스플레이할 때 전시 디자인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뮤지엄 디스플레이어가 전시를 디자인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전시효과에 천양지차가 있습니다."

김 관장은 4월 초부터 학예연구직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박물관 조명, 색채 분야 강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145년 만에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를 공개(7~9월)하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국내외 전시가 예정돼 있다. 김 관장은 5월부터 8월까지 열리는 바로크ㆍ로코코 시대의 궁정문화 전시와 한중일 초상화전(9~11월)에 관심을 보이면서 테마전, 특히 상설전을 관람할 것을 권했다. 서양미술사 전공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상설전과 테마전의 내용들이 서양미술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매력과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김 관장은 박물관이 발전하는 데는 박물관 자체의 노력 못지않게 외부의 지원도 필요하다면서 외국에서는 일반화된 개인 소장 유물의 기탁, 기증, 기업의 후원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물관 운영과 관련해 롤모델이 되는 케이스를 물으니 김 관장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을 우선 꼽았다. 소장 유물도 볼 만하지만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고 어린이교육 프로그램도 뛰어나다는 게 이유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미술과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으로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창조하는 공간이다. 글로벌 마인드를 지닌 김영나 관장의 국립중앙박물관 경영에 많은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다.

깅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951년 서울생. 경기여고, 미국 뮬렌버그대 미술과 졸업,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미술사학박사 학위 취득. 덕성여대 교수, 도쿄대 객원연구원. 서양미술사학회장(1993~1995), 한국미술사교육연구회장(1995), 서울대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하버드대 객원연구원, 서울대박물관장, 한국박물관협회 이사,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장(2006~2009).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위원(2007년~ ), 국립중앙박물관장(2011. 2~)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