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6권 출간10년 만에 신간… 이전 다섯 권 모두 개정판 내 전집으로 엮어서울의 상징 경복궁, 광화문, 백제 미학의 흔적 부여 등 소개

사진 / 창비제공
국내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는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다. 1993년 5월 출간된 후 두 달 만에 10만 부가 팔렸고 연달아 출간된 2,3권 역시 답사열풍을 만들며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인 4, 5권까지 총 260만 부가 나갔다.

저자가 참여정부 당시 문화재청장을 맡은 배경에 이 책이 한몫 했다는 풍월이 있을 정도니,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지난주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을 내고 기자들과 만났다. 5권인 <다시 금강을 예찬한다> 이후 10년 만이다. 신간 발행에 맞춰 이전의 다섯 권도 모두 개정판을 내 전집으로 묶었다.

이 땅의 모든 상수를 위해

"다시 답사기로 돌아왔습니다. 드라마로 치면 '시즌 2'를 시작한 셈이죠. <영웅본색>이나 <부시맨>은 시즌 2가 더 좋더라고요. 제 책이 <영웅본색>은 못되더라도 <부시맨 2>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어요."

신간의 부제는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옛 시인의 시구 '인생도처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에서 원용한 이 문구는 세상 곳곳에 존재하는 이름 없는 고수들에 대한 경이로움을 표현한 말이다.

'하나의 명작이 탄생하는 과정에는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무수한 상수(上手)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것의 가치를 밝혀낸 이들도 내가 따라가기 힘든 상수였으며,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필부 또한 인생의 상수들이었다.

내가 인생도처유상수라고 느낀 문화유산의 과거와 현재를 액면 그대로 전하면서 답사기를 엮어가면, 굳이 조미료를 치며 요리하거나 멋지게 디자인하지 않아도 현명한 독자들은 알아서 헤아리게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5~6페이지, 서문 중에서)

기존 발표했던 다섯 권의 답사기가 인문학과 미술사 지식을 바탕으로 우리문화유산을 소개했다면, 신간 <인생도처유상수>는 답사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넣어 현장감을 더했다.

서울의 상징인 경복궁과 광화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양민학살로 알려진 거창의 진면목, 사계절 아름다운 절집의 미학을 간직한 선암사, 고도 부여에서 발견하는 백제의 미학, 인문정신이 빛나는 달성의 '도동서원' 등을 소개한다.

신간 서문에 '시즌 2'로 돌아왔다고 쓰셨는데, 이 책이 이전 5권의 책과 다른 점은 뭔가요?

"사람 이야기인 것 같아요. 문화재와 함께 산 사람 이야기를 중계방송하듯 쓴 게 지난 책과 다른 점입니다. 시즌 1과 시즌 2 사이에 10년 정도 간격이 있죠. 문화재청장 하면서 관점도 바뀌었고요."

예를 들면요?

"예전 문화재를 소개하면서 관리가 허술하면 '도대체 문화재청은 뭘 하길래 이런 걸 이렇게 놔두냐'하고 한마디만 쓰면 그만이었는데, 지금은 그 말을 하려면 '그 문화재 관리 개선책은 어떻게 해야 하나'까지를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어요. 농담반 진담반으로 다음에 <나의 공무원 답사기>를 쓰겠다고 하는데, 실제로 문화유산에 관한 공무원 답사기가 이 책 속에 많이 녹아 있습니다. 각 문화재를 이야기한 곳마다, '내가 청장 시절에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이래서 안됐다', '이건 꼭 해야 된다고 해서 이렇게 했다'는 말이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경복궁이 자금성 뒷간이라고?

4장에 걸쳐 소개되는 경복궁은 조선시대 궁궐 미학의 총체적인 공간이다. 북한산, 북악산, 인왕산 등 주변 자연을 자신의 경관으로 끌어안는 경복궁의 건축미학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독보적이다.

경복궁의 연회장소로 쓰였던 경회루를 다룬 '경복궁 3: 경복궁 건축의 꽃, 경회루와 건청궁'에서 저자는 문화재청장 시절 경회루 개방을 전격 실행했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또 건청궁 복원공사를 하면서 전통 목조건축 복원을 위해 150년 후의 장기적인 쓰임을 두고 산림청과 금강송 보호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은 일화를 통해 문화유산 관리에 대한 긴 안목을 보여준다.

이번 책에서 경복궁 이야기가 맨 먼저 그것도 4장에 걸쳐 있습니다. 경복궁을 특별하게 쓰신 이유가 있나요?

"사람들한테 '자금성 가보니까 경복궁은 자금성 뒷간만 하더라'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그게 화가 나서 경복궁을 먼저 썼습니다. 경복궁은 조선왕조, 서울의 영광과 영욕을 함께 한 건물이고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장소죠. 우리나라 건축의 모든 특징이 집약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자금성에 비유한다든지 비하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외국 왕궁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조명해 봤습니다. 경복궁의 미학과 기능에 대해서 섬세하게 설명해서 조선왕조 600년의 궁궐이 담을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넣으려고 했어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을 쓸 때 정치적인 부분이 많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간에 쓴 정도전 일화 역시 정치적으로 읽히기도 하는데요. '임금으로서 오직 부지런해야 하는 것만 알고 부지런해야 하는 바를 모르면 그 부지런하다는 것이 오히려 번거롭고 까탈스러움에 보잘 것 없는 것이 됩니다'(29페이지) 같은 부분 말이지요.

"그냥 정도전 얘기만 한 거죠. (잠깐 생각하다) 독자들이 현명해서 내가 한 마디 안 넣어도 알죠. 예를 들어서 책에서 거창 장씨, 거창 심 씨를 비롯해서 외래 성(姓)을 쓰는 귀화인들은 생각하면서 '코스모스는 더 이상 외래식물이 아니라 귀화식물이다'라고 썼는데, 여기에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한마디 쓸 수도 있지만 안 썼어요. 요즘은 독자들이 현명해서 제가 밑에 한마디 안 써도 '저자는 이렇게 생각했구나'하고 읽어줘요. 독자들이 수준이 높아요."

저자가 문화재청장 퇴임 때 숭례문 화재사건이 일어났죠. 서울의 경복궁이나 광화문에 대한 답사기를 쓸 때 소회가 남다르셨을 텐데요.

"그 부분도 언젠가 쓸 텐데…. 그때 왜 사람들이 저를 들볶았는가 생각해 보면, 그게 정치적인 문제이지 제 문제는 아니었잖아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때에 저도 한번은 말해야죠."

문화유산답사기 시즌 2

서울 나들이가 끝나면 경상남도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양민학살의 현장으로만 알려진 거창에는 동계 정온 선생의 고택, 퇴계 이황과 요수 신권, 갈천 임훈이 주고받은 시가 새겨진 수승대 등이 있다. 저자는 순천 선암사를 여행하며 육당 최남선의 <심춘순례>와 김극기의 고시, 박남준의 시편을 인용해 산사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책의 마지막은 '부여·논산·보령'편이다. 저자는 개인적인 경험이 밴 에피소드와 부여 근교 구석에 감춰진 백제 미학의 흔적을 꼼꼼하게 뒤쫓는다. 유홍준 교수가 5도 2촌 생활을 시작하며 부여를 제 2 고향으로 삼아 터전을 닦은 사연, 예순의 나이에도 마을 '청년회원'을 못 벗어난 사연, 봄이면 한껏 풍성해지는 산나물 이야기 등이 펼쳐진다.

이전 <답사기>와 달라진 점으로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많이 들어갔다는 점을 꼽으셨는데, 부여 편이 특히 그렇습니다.

"부여 편은 사실 저의 고백이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는 저처럼 시골로 가서 사는 사람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에서 많이 썼어요. 제 교수 정년이 3년 남았는데, 퇴임 이후부터는 시골에서 살려고 지금 준비를 하고 있어요. 부여 이야기를 답사기 3권에 썼지만, 이 책에서 부여를 굉장히 길게 썼어요. 막상 부여에 터를 잡고 주말에 가서 살다 보니까 가객으로 지나던 때와 전혀 다른 풍경이 보여서 부여를 중심으로 논산, 보령을 썼죠. 또 부여에 있으면서 1년에 4차례씩 '유홍준과 함께 하는 부여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4월, 5월, 10월, 11월 마지막 주말에 밥값 1만 원만 갖고 오면 부여 일대를 함께 돌고 5시 반에 헤어집니다. 제가 은퇴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문화재 안내하는 것과 여관주인일 텐데, 여관을 할지 안할지는 집사람과 상의해 봐야겠고, 문화유산 안내하는 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20년간 우리나라 문화유산 답사를 하면서 본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을 꼽으라면 무얼 꼽으시겠어요?

"하나 고르라면 석굴암. 공학적으로 봐도, 건축적으로 봐도 완벽해요. 일본, 중국의 어떤 불상보다 이상적인 인간상, 절대자가 인간화된 모습을 보긴 힘듭니다. 정원을 보면 봉숭아, 채송화, 라일락이 아름다워도 멋진 소나무가 있어야 정원 풍경이 살아나죠. 석굴암 같은 완벽한 과학성을 가진 건조물과 문화재가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맘먹으면 저렇게 할 수 있지만, 자연스러운 미를 즐긴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 분청사기가 아름답다지만, 그게 자연미를 추구하는 건지 불성실의 소산인지 구별하기 힘들 때가 있잖아요. 완벽한 도자기를 만들면서 분청사기를 만들 때 '분청사기는 의도적인 미학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석굴암이 있기 때문에 운주사나 운주 미륵도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거죠."

이 책 내면서 앞의 5권도 개정판을 냈습니다. 사진도 전부 컬러로 바꾸었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다듬었나요?

"예를 들어서 3편에 쓴 공주 답사기편에서 예전에 '공주박물관과 무령왕릉이 이게 뭐냐'고 썼는데, 그 책 내고 일신해서 공주 편을 다시 썼어요. 낙산사도 기껏 썼더니 불이 나서 새로 지은 절의 건축 과정을 써넣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 생긴 길의 가이드라인을 썼고요. 지명에 관해서는 글 쓴 시점과 관계없이 지금 시점으로 고쳤습니다. 글 쓴 시점의 역사성도 있어서 가능한 전체 줄거리는 손대지 않고, 대신 글 쓴 시점과 수정 시점을 병기했습니다."

앞으로 '시즌 2'에서 이전에 쓰지 못했던 제주도, 충청북도에 대해서 더 쓰겠다고 하셨는데요. 이전 책들과 다르게 쓰겠다고 염두한 부분이 있나요?

" 6권을 쓰면서 더 이상 앞에 쓴 책처럼 조미료를 치고, 꾸미는 것 없이 제가 갖고 있는 정보나 지식을 독자들이 받아갈 수 있길 희망했어요. 그러니까 경복궁의 정도전 이야기를 쓰면서 이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걸 안 쓰는 거죠."

이 책이 <나의 공무원 답사기>이기도 하다고 하셨는데, 공무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있지요. 7권에서 쓸 생각입니다. 근데 뼈있는 얘기를 쓸 때, 많은 사람은 좋아하는데 당사자는 아프잖아요. 요즘 그걸 어떻게 그분도 아파하지 않으면서 같이 웃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