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저자 송규봉 GIS 분석가지형지물, 인구, 소득, 범죄율 등 지리정보시스템 가능성 무궁무진

'야쿠르트 아줌마'의 눈으로 그린 지도는 어떤 모양일까? 같은 면적의 주택가라도 고정적으로 배달하는 가구 수에 따라, 생활수준에 따라, 잘 팔리는 제품 품목에 따라 다르게 표시될 것이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발품 팔아 익힌 정보들을 지도에 옮기면 판매 현황이 한눈에 펼쳐진다. 그뿐인가. 앞으로의 판매 전략과 지역의 사회학적 특징까지 보인다.

"기능성 유산균 음료가 잘 팔리는 곳은 회사 밀집 지역입니다. 그만큼 직장인들이 아침을 못 챙겨 먹을 만큼 바쁘다는 뜻이죠. 제품 판매 지도가 한국사회의 직장 생활 패턴을 드러내는 셈입니다."

송규봉 GIS(지리정보시스템) 분석가가 쓴 <지도: 세상을 읽는 생각의 프레임>에는 "사회를 투사하는 X레이 사진"으로서의 지도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지형지물은 물론 인구, 소득, 교통망, 상권 정보, 범죄율 등을 기준으로 한 지도들은 서로 연관되며 사회 현상을 구성한다.

GIS의 대중화는 사업가와 행정가, 과학자와 예술가 등 세계를 개척하려는 이들의 시야를 넓혔다. 커피전문점 브랜드 스타벅스의 성공 뒤에는 GIS가 개인용 컴퓨터에서 구동되기 시작했고 미국 정부의 다양한 지리 정보가 일반에 공개된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스타벅스는 매장을 열기 전 잠재고객이 밀집한 지역을 파악하고 매출을 예측하는 데 GIS를 활용한다. 골목마다 스타벅스가 있는 서울 테헤란로의 풍경도 철저히 계산된 결과다.

1997년 미국 필라델피아 경찰청의 범죄지도 분석팀은 강력범죄 발생 패턴을 살피다가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던킨도너츠 매장 주변의 강력범죄 발생률이 유난히 높았던 것. 경찰청 책임자는 지도를 들고 던킨도너츠 체인망의 지역 책임자를 찾아갔다. 그들이 도출해낸 해결책이 재미있다.

던킨도너츠 매장에서 야간 순찰을 도는 경찰들에게 공짜 커피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경찰차가 던킨도너츠 매장 근처에 주차해 있는 일이 잦자 자연스럽게 범죄가 줄었다.

"지도의 역할이 단순히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오산입니다. 인간이 다루는 정보의 80퍼센트 이상이 지리적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도는 그 80퍼센트 이상의 정보에 대한 접근의 통로이자 이해의 출구죠."

첨단기술과 접목된 지도는 전통적인 지도의 개념을 넘어선다. 일종의 '생태지도'라고 할 수 있는 의학 영상, 유전자 지도 등이 그 예다. 비둘기들이 업데이트하는 인터넷 지도도 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교수이자 작가인 비트리즈 다 코스타가 운영하는 '비둘기 블로그'에는 그가 여러 장소에서 날려 보낸 집비둘기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대기 오염도가 그려진다.

비둘기들의 등에 대기측정 센서와 GPS, 소형 무선전화기를 부착한 덕분이다. 다 코스타 교수는 이 지도가 환경오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한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지리 정보를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된 오늘날, 지도를 보는 눈과 공간에 대한 상상력은 소수의 특권이 아니다. 송규봉 GIS 분석가는 "우리가 머릿속에 담고 있는 지도의 크기와 깊이가 우리의 상상력의 영토와 토양을 규정한다"고 말한다.

"세계를 무대로 구호활동 중인 한 국제기구 활동가는 "머릿속에 세계지도가 있어야 세계인"이라고 말합니다.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방에 세계지도를 걸어주었다고 해요. 그는 어느 날 지도 위 땅들이 하나로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걸어서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지도 속에, 그야말로, 길이 있다고 믿는 송규봉 GIS 분석가를 만났다.

GIS 분석가라는 직업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이제까지 했던 프로젝트들을 예로 들어보자면, 피자 가게를 어디에 내야 할지를 컨설팅하기 위해 아파트단지별로 어떤 피자를 얼마나 자주 주문하는지 분석한 지도를 만들고, 부동산 토지거래 데이터를 분석해 전국 땅값지도를 제작하기도 했다. 예술영화관 관객층인 대학생과 대학원생, 전문직 종사자들의 분포와 교통망, 문화적 기반과 땅값 지도를 종합해 한정된 예산 내에서 예술영화관을 지을 적절한 위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지도가 어떻게 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나.

-신속한 응급의료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다. 응급 전화에 대응하는 시간을 매핑해 봤더니, 상습적으로 출동이 지연되는 곳이 있었다. 콜센터가 더 가까이에 위치해 있어야 하는 거다. 새 콜센터를 지을 수 없더라도 그런 곳 주변에 응급차를 배치해 놓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구제역 매몰지 침출수가 문제가 되었을 때도 매몰지 위치와 물의 흐름, 토양 등을 지도로 분석했다.

연세대학교 겸임교수다. GIS 분석에 기초한 건축기획을 가르친다던데 어떤 내용인가.

-건축 역시 지리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자연환경은 물론 인문, 사회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생각해 기획해야 한다. 1969년 이안 맥하그는 <디자인 위드 네이처>라는 책을 통해 건축물이 자연에 영향을 미친다, 자연의 눈으로 보고 그 영향을 생각하라고 제안했다. 그가 수계, 식생, 도로망 등이 표기된 아크릴 지도들을 겹쳐 건축과 환경 간 관계를 분석한 작업이 모범이 되었다.

책에서 "지도는 인류가 문자를 탄생시키기 전부터 애용해 온 정보 소통의 도구이자 새로운 땅을 찾아가는 상상의 도구"라고 강조했다. 옛 지도들 중 영감을 준 것이 있다면.

-석기시대에는 돌멩이에 지형과 순록을 그린 지도가 쓰였다. 문자가 완성되기 전에 인간이 생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지도다. 그것을 통해 사람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역할을 분담했을 것이다. 에스키모는 동물 뼈에 위치 정보를 새겨 넣었고, 남태평양의 섬에서는 나무에 조개를 엮어 만든 지도가 발견된다. 미국에 노예 제도가 있던 시절, 흑인들이 도주할 때는 동료들이 널어놓은 이불을 신호로 삼았다고 한다. 그런 소통도 지도의 일종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GIS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나.

-환경정책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환경영향평가 지도를 보고 지도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사회를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으로서의 지도는 사회과부도의 지도, 예식장 약도와 전혀 다른 것이었다.(웃음) 그래서 GIS로 전공을 바꾸고, 졸업 후에도 관련 연구원에서 일했다. 그동안 IT 기반 인터넷, 모바일 인프라가 일반화되었고 GPS를 장착한 스마트폰이 보급되는 등 지리 정보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었다. GIS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확장된 것이다.

맛집 찾기 이외에, 일상 속에서 지리 정보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예를 들면 나이키에서는 GPS가 장착된 운동화를 판매한다. 그것을 신고 뛰면 운동 경로와 운동량이 웹사이트에 자동적으로 등록되어 확인할 수 있다. GPS를 미아 방지용 솔루션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에 의존하다 보면 지리 감각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는데.

-내비게이션이 엉뚱한 곳을 알려줄 때는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자신의 인식과 심상 안에 경험적 지도를 구축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나도 지리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길을 찾을 때 종이 지도를 출력해 가야 할 곳, 동선 등을 표시하는 등 별도의 노력을 기울인다.

지도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방법도 있나.

-지도 이력서를 써볼 것을 추천한다. 지도에 자신이 평생 다녀온 중요한 공간들을 표시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두 점 사이에 있는 헤어짐과 만남, 체험들까지 매핑된다. 매일 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있지만 정작 자신에 대한 정보는 부족한 경우가 많다. 지도 이력서를 통해 삶의 패턴을 읽어보면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 지나온 궤적은 미래의 지표가 된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