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자 신주연SADI 재학생 독창적 디자인과 감성으로 국내파 첫 영광

'패션의 세계는 냉정합니다. 진보한 디자인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디자인은 외면당합니다.'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이하 프런코)에서 MC 이소라가 매회 심사를 하기 전 읊조리던 말이다. 유행어처럼 번지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던 문장들. 하지만 마냥 웃어넘기기엔 어딘지 모르게 씁쓸하다. 다분히 패션계에만 국한된 말이 아닌 것 같아서다.

진부함을 버리고 진보한 디자이너를 뽑겠다던 <프런코>는 얼마 전 시즌3을 마감했다. TV로 방영되는 4개월 내내 노랑머리를 고수하던 신주연(26)을 우승자로 남긴 채 말이다.

상처와 치유를 주제로 마지막 미션인 파이널 패션쇼를 장식했던 신주연. 그녀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감성으로 프로그램 방영 내내 상위권을 지켰다. 결국 1위라는 영광을 안으며 신진 디자이너의 당찬 포부를 알렸다. 그런데 그녀와 마주하고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옷을 만드는 작업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요"라는 그녀의 말은 우승 저 너머에 뼈를 깎는 노력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프런코 3>에 참여한 것에는 후회가 없지만 두 번 다시 도전하고 싶진 않다는 푸념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고통스러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말에는 졸업 작품으로 패션쇼를 치러야 하기 때문.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3' 파이널 패션쇼 신주연(오른쪽)
"머릿속이 복잡해요. 입으로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디자인 생각으로 가득하죠. 우승했다는 기쁨은 잠시고, 앞으로는 그 고통 속을 계속 걸어야 할 것 같아요."

말은 그렇게 해도 옷에 대한 열정은 숨길 수 없는 법. 신주연은 파이널 경쟁자였던 권순수(26)와 이세진(26)이 해외 유학파였다는 점, <프런코> 시즌 1, 2의 우승자도 해외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순수파로서 대단한 성과를 올렸다. 그는 삼성디자인학교(SADI)에서 공부하는 학생이다.

"그런 건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다만 그 일에 있어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고 열정을 기울이느냐에 대한 문제인 것 같아요. 매 미션마다 스스로 '무사안일주의'를 재고하지 않았던 게 주효했죠."

서바이벌에서 우승을 했다. 혹시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었나.

매 미션마다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컨디션 조절과 슬럼프에 빠지는 것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두고 있었던 건 '첫 미션에서 꼭 우승하자'였다. 그래야만 자신감이 생기고 일에 능률이 오를 것 같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다들 어안이 벙벙하고 정신이 없다. 나는 아마도 그런 점을 노린 것 같다. 그럴수록 정신을 다잡아서 미션을 수행하려고 했다. 첫 미션에서 우승자가 됐고, 그 기분으로 쭉 파이널까지 갈 수 있었다.

방송 내내 머리카락이 노란색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우울하거나 울적할 때 거울을 보고 웃기 위해서 노란색으로 염색했다. 예전에는 일명 '바가지 머리'로 헤어스타일을 바꾸기도 했고, 핑크색으로 염색한 적도 있다.

상당히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인 듯하다. 그렇다면 방송에서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도 신경 쓰였을 텐데.

패션쇼를 하기 전 마지막 미션에서 가족에 대한 주제로 옷을 만들어야 했다. 당시 나는 가족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드러냈다. 가족이라는 이미지가 좋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그 반대로 다가왔다.

유년시절 아버지의 작고로 가정형편이 어려워 힘든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 점들이 공개된 것에는 불만이 없다. 하지만 내 생각과 감정에 대해 인터넷에 쓰인 악플을 보면 속상하다. 방송이라서 그런 점만 크게 부각된 이유도 있는데 말이다.

원래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꿈이었나.

어릴 때부터 음악을 공부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을 배우며 뮤지션을 꿈꿨다. 지금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해서 매일 듣는다. 패션에 대한 관심을 가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현재 SADI에서 2학년에 재학 중이니 정식으론 1년 정도만 공부한 셈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신 스타'라고 할 정도로 남다른 안목과 감각을 지녔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웃음). 한 30년 후에 디자이너로서 정점을 찍은 이후에는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 뮤지션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보는 것도 환상적일 것 같다.

오늘 의상이 멋진데, 자신의 옷을 직접 디자인하는 편인가.

이 옷은 10꼬르소꼬모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90% 세일을 해서 구입한 것이다. 이렇게 '대박 '세일을 하는 옷일수록 다량 구입을 하는 게 이득이다. 당시에 구입했던 옷들을 주로 입고 다닌다. 사실 옷에는 그렇게 신경을 쓰는 편이 아니다. 티셔츠 한 장을 며칠씩 입은 적도 있다(웃음).

파이널 패션쇼의 의상이 나머지 두 명에 비해 실험적이고 독창적이었던 것 같다. 주로 디자인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

전시회나 영화관을 자주 다닌다. 음악은 항상 듣는 일상이다. 개인적으로 취미생활이 일상과 연결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리시키면 갭이 생겨서 영감을 얻기 어려운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술이나 클럽을 애용할 것으로 보이겠지만(웃음),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한다. 청계천을 거닐며 사진을 찍거나 글쓰기를 즐긴다. 편안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아마 <프런코3> 참가자들도 모를 것이다(웃음).

패션쇼 무대에서 눈물을 흘리더라. 왜 혼자만 울었나.

파이널 패션쇼 무대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쉽다. 아쉬움의 눈물이다. 런웨이에 올랐던 의상들은 처음 스케치한 디자인의 30%도 나오지 않은 작품들이다.

원단을 직접 만들었는데 거기서 시간을 많이 소비했다. 그러다보니 일주일 내내 만든 게 한 피스였다. 예민한 성격 탓에 박음질조차도 내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니, 작업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한 게 신기하면서도 자랑스럽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 주로 무엇을 했나.

3월에 파이널 패션쇼를 한 이후에도 계속 일을 했다. 의뢰가 들어온 디자인 작업도 있었고, 졸업 작품 등도 구상해야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MBC <우리들의 일밤>의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가수 임재범이 부르는 노래들은 절박해 보이면서도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아이패드에 동영상을 저장해 50번 이상은 봤을 것이다. 너무 완벽하다. 그의 노래로 영감도 얻었다. 바람이 있다면 '나는 가수다'의 청중 평가단으로 참석해 공연을 보고 싶다. 꼭(웃음).

우승상금으로 1억 원을 받는다.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나.

일부는 졸업 작품을 위해 쓰지 않을까. 유학을 가고 싶지만 학비로 쓰기에도 액수가 애매하다(웃음). 그래서 구체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다. 분명한 건 내가 디자이너로서 패션 공부를 하는 데 쓰일 거라는 점이다.

해외로 유학을 갈 생각인가. 언제 떠날 계획인가.

<프런코3>에서 우승했다고 해서 내 인생에서 우승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처지에선 내 이름을 걸고 의상 숍도 낼 수 없다. 더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년부터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 해외에서 열리는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 이런 식으로 차츰차츰 내 이름을 알려서 디자이너로서 활동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패션은 끝없이 도전해야 하는 숙제다. 도전의 연속이다.

앞으로 디자이너로서 옷에 대한 철학이 있나.

솔직한 옷을 만들고 싶다. 그건 아마도 나에 대한 솔직함일 것이다. 파이널 패션쇼에서 가족을 상기하며 상처가 치유되어 가는 과정을 담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 나를 보여주고 표현하는 옷을 만들 것이다. 나다운 옷으로 '신주연의 옷이구나'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