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파카바나' 개봉, 사진전 위해 13년 만에 내한

사랑에 상처받은 소녀, 매혹적인 요부, 하층민 남자와 쾌락에 빠지는 상류층 여성. 우아함과 도도함 그리고 예민함까지, 다양한 여성의 모습들을 가장 '프랑스적으로' 그려내는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 참석 이후 13년 만이다.

18세에 영화계에 데뷔한 위페르는 40여 년 동안 유럽의 감독들과 80여 편의 작품을 찍으며 칸영화제 2회 수상을 비롯해 베니스영화제, 베를린영화제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최고의 여배우다.

프랑스영화계에서 '위대한 여인(Grand Damme)'으로 불리는 그녀의 이번 내한은 영화 '코파카바나'의 개봉과 사진전 '이자벨 위페르-위대한 그녀(Woman of Many Faces)'를 기념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위페르의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하는 것은 2004년 <8명의 여인들> 이후 7년 만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작품에서 차갑고 지적인 모습들을 주로 보여줬던 그녀는 신작 '코파카바나'에서는 이를 과감히 버리고 자유분방하고 엉뚱한 엄마 '바부' 역을 맡아 새로운 여성상을 그려낸다.

특히 친딸과 모녀 관계를 연기한 이 작품에서 그녀는 실제 모습과 닮은 듯 다른 감정들을 특유의 예민함으로 섬세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이 같은 위페르의 다양한 모습은 그녀를 담은 사진 작품에 잘 드러나 있다. 최초로 배우를 오마주한 이번 사진전에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프랭크, 리차드 아베돈, 에두아르 부바 등 세계적인 사진작가 60여 명이 그녀만을 위한 사진을 찍어 냈다. 한국에서는 천경우 작가가 직접 프랑스를 방문해 위페르의 내면을 사진으로 포착했다.

"굉장히 특별한 작업이었다. 내가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이랄까. 사진 한 장을 찍는 데 40분 정도를 부동자세로 있었던 게 기억난다. 천 작가가 나의 집중력을 얻어내기 위한 시도였던 것 같다."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프랑소와 오종, 미카엘 하네케 등 세계적인 거장들과 작업하며 그들의 뮤즈로 자리매김한 위페르는 가장 호흡이 잘 맞는 감독으로 클로드 샤브롤을 꼽는다. 이제까지 가장 많은 작품을 함께 한 것이 그간의 호흡을 뒷받침해 준다.

최근 몇 년간 칸영화제가 꾸준히 한국영화에 주목해온 것처럼, 위페르도 한국영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영화와 프랑스영화 사이에는 비슷한 감성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약간의 거리를 두는 차가운 유머 같은 것은 프랑스적 코드와 잘 맞는다." 그녀는 이창동, 홍상수, 임상수,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이름을 막힘 없이 언급하며 "기회가 되면 언젠가 이분들과 꼭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는 바람을 강하게 내비쳤다.

영화와 사진의 거장들과 함께 수많은 걸작들을 만들어온 위페르는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의 카메라 앞에서 항상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라며 아울러 "감독이나 사진작가와의 신뢰가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자벨 위페르는 이번 신작 시사회와 전시 오프닝 행사 외에도 31일부터 시작하는 '2011 시네프랑스'의 특별전에 참석해 영화관과 전시장 안팎에서 다양하게 팬들과 만날 예정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