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유희경 첫 시집 '오늘 아침 단어' 출간미래파 특징과 서정성 함께 갖춘 63편, 2010년대 신서정 보여줘

여러 문화예술 장르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종합예술인'이라고 한다면, 유희경은 확실히 종합예술인이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편집자로 일하는 그는 여러 편의 희곡을 썼고, 포스트 미래파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극단 '독'에서 활동하며 연극을 만드는가 하면, 시동인 '작란'의 멤버로 가끔 이상한 이벤트도 벌인다.

희곡과 시 사이

그가 만든 책은 많이 받았지만, 그가 쓴 책을 받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책은 김정환, 김근, 이영주 시인과 함께 낸 희곡집 <위대한 유산>. 이 책은 '소설가와 시인이 쓴 희곡'이란 테마로 출간됐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공연용이 아니라 독서용 희곡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실린 유희경의 '별을 가두다'는 2009년 혜화동 페스티벌에서 정식으로 공연된 작품이다.

그는 2008년 시로 등단하기 전, 2007년 신작희곡페스티벌에서 희곡으로 먼저 데뷔했다. 지금도 연극적 실험을 추구하는 극작가들로 구성된 극단 '독'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김정환, 김근, 이영주 시인과 함께 낸 화곡집 '위대한 유산'
"서울예전 졸업하고 한예종 극작과에 다시 들어갔어요. 황지우 선생님이 계셔서 한예종으로 간 건데, 입학하고 시보다 연극이 더 좋아서 한동안 희곡만 썼죠."

그리고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에 취직해 시집과 소설집을 편집했다. 이청준부터 김애란까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책을 낸 출판사다. 이 작품들을 책으로 내면서, 계간지의 비평을 묶으면서, 순문학을 보는 눈은 당연히 높아졌을 터다.

무릇 세상사 모든 일은 돈 주고 배울 때보다 돈 받고 배울 때 빠르고 확실하게 배우니까. 그는 "서먹한 젊은 작가들보다 김병익, 김치수 선생님이 더 편하다"고 했다.

시로 등단 후 정한아, 오은, 서효인과 함께 동인 '작란'을 만들었다. 정한아를 제외한 3명 모두 1980년대 생으로 2009년부터 차례로 첫 시집을 내기 시작했다. 김민정, 김경주, 안현미 등이 속한 시동인 '불편'이 이른바 '미래파' 시인들을 대표했다면 '작란'의 멤버들은 '포스트 미래파'를 대변하고 있다.

최초의 단어

지난주 그의 두 번째 책을 받았다. 첫 시집 <오늘 아침 단어>는 등단 후 발표한 작품 중 63편을 모아 묶은 것이다. 시집의 첫 장을 펼치면 '나의 어머님께'라고 쓰인 헌정사가 나온다. 그리고 시인은 시집 내내 아버지 얘기만 쏟아낸다.

'지갑을 잃어버리고 난 다음에야, 나는 코트 속 아버지를 발견한다 그는 길고 가느다란 담배를 물고 있었다 젖은 발처럼 내 코트 속 아버지 어떻게 해야 우리는 낯섦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빈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버지를 돌아본다' (시 '코드 속 아버지' 중에서)

"아버지 얘기만 쓴 시집을 어머니께 바친다는 헌정사를 보고 지금 당신의 아버지는 어떤 식으로든 부재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감상평을 전했다. 그는 "6,7년 전에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다음 갑자기 아이에서 어른이 됐다"고 말했다.

"유년시절에 관한 시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담은 거에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언제나 제 바람막이가 돼주셨거든요. 아버지는 지독하게 버리고 싶고 미워하면서도 따뜻했던 시기를 나타내고 있는 거죠. 어머니란 단어를 인식한 건 제가 어른이 된 이후에요. 이 시집은 저의 현재에 바치는 시집이고요. 그래서 이전의 제 모습을 다 써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쓴 시가 많아요."

3부로 나눠진 시집은 그의 현재에서 시작한다. 1부는 어른, 2부는 청년, 3부는 소년의 시기다. 작가의 현재에서 정확히 역순으로 경험과 그 시절 감성을 담았다. 마지막에 실린 시 '면목동'은 그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화를 상상해 써내려 간 시다.

'(…) 별이 떠 있었다 유월 바람이 불었다 지난 시간들, 구름이 되어 흘러갔다 가로등이 깜빡이고 누가 노래를 불렀다 (…) 그때 그게 전부 나였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건 남편과 아내뿐이었다 마음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시 '면목동' 중에서)

열리는 순간 닫히는

시동인 '작란'의 멤버 중 그는 세 번째로 시집을 낸 사람이다. 조만간 정한아의 첫 시집이 출간되면 동인 모두 시집을 내게 된다. 이 모임은 동인들끼리 시 합평이나 비평은 하지 않고, 쓴 시를 들고 오면 '응원만 해주는 게' 특징이다.

4명 이상이 모이면 차 한 대로 이동하기 힘들어 더 이상 멤버 영입은 생각하지 않는다. 동인들의 성격처럼 이들이 쓴 시도 까칠하거나 냉소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미래파가 예의 독특함으로 기성의 시쓰기와 차별화를 두었다면 이후 세대인 포스트미래파의 시는 미래파의 특징과 서정성을 함께 갖고 있다.

예컨대 유희경의 시는 미래파의 시가 그런 것처럼 행과 연 구분을 통해 화자와 화자가 말하는 시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노래하는 시가 아니라, 글쓰기로서 완성되는 시를 선보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시다.

'(…) */나는 물 아래로 흘러갔다/ 그때 나는 얼굴이 없었다/ 얼굴이 없어 눈물도 없었다/ 표정은 우리의 오해일지도 모른다/ 내가 점점 멀어져갔을지도 모른다// (…) // */나는 물속에 앉아 있었다/ 파쇄된 리듬처럼 굳어버렸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번질 수 있는 것이 남지 않았다' (시 '深情' 중에서)

그는 "시에서 공간적 측면이 있는 건 희곡을 써왔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가 단번에 미래파의 시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들의 시에는 통일된 서사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유희경은 일련의 서사 위에 90년대 이성복, 기형도 식의 서정성을 담고 있다. 모더니즘 이후 나온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의 속성을 부인하면서도 그 속성을 끌어안는 '닫히면서도 열리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포스트미래파로 거론되는 유희경 역시 미래파 시인들의 특징을 이어가면서도 또 다른 감각을 선보인다. 시집에 해설을 쓴 평론가 조연정의 말처럼 유희경이 쓰는 시와 희곡은 '소년의 눈물과 청년의 사랑에서 배어나오는 슬픔, 고독, 자책, 안타까움, 벅참, 절망 등'을 80년대 생의 감각으로 드러내고 있다.

최근의 젊은 예술가들은 무얼 하며 지낼까? 이들의 감각은 어디서 오는가? 이 감각은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는가? 유희경의 작품들은 2010년대 신(新)서정을 드러내고 있다.

'수십 개의 단어와 한 사람을 동시에 떠올리는 일/ 나는 아직도 이런 일을 생각한다.' (시인의 말)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