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의 변승욱 감독쉽게 키우고 버리는 애완 문화 비판 공포보다 더한 울림

혼기가 꽉찬 남녀가 만나 연애를 한다.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이들이지만, 독신인데다 만나는 사람도 없던 이들은 어느 날 눈이 맞아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하는 사이가 된다.

로맨틱 코미디라면 이들의 집안 배경이나 출신 성분을 가지고 갈등 구조를 만들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현실 자체가 갈등의 요소가 된다. 여자는 아버지가 남긴 수억 원의 빚 때문에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 결혼은커녕 연애마저도 그녀에게는 사치스러운 감정이다.

남자는 정신지체가 있는 형의 존재만으로 결혼을 거의 포기한 상태. 이런 이들의 이야기는 멜로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나 TV드라마 속 가난한 청춘의 초상 같다.

데뷔작인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2006)에서 변승욱 감독은 뻔한 로맨스 대신 현실의 무게에 초점을 맞추면서 색다른 연애물을 만들었다. 그는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가족의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을 파고들었다. 중산층의 고충을 담은 리얼한 연애사는 5년 전 영화임에도 지금의 사회면 뉴스를 보듯 씁쓸한 공감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 그가 호러영화로 돌아왔다. '고양이'라는 영물(靈物)을 모티프로 한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이하 <고양이>)이 그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점에서 의외처럼 여겨진다.

우선 전작과 너무나 다른 장르라는 점에서 의외다. 전작이 그냥 평범한 멜로 드라마였다면 이해가 갈 만도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연애'라는 현상을 사회 구조와 그에 따른 개인의 좌절로 읽어내는 그의 독특한 시각은 관객에게 새로운 멜로를 기대케 하는 요소였다.

두 번째는 고양이를 전면에 내세운 호러물이라는 점이다.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의 중의적인 콘셉트에 비하면 <고양이>는 일면 너무 게으른 발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이미 <검은 고양이>, <캣츠 아이>, <주온>,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즌2 - 검은 고양이> 등 이미 고양이를 소재로 한 많은 호러영화들이 있다.

더군다나 한국적 정서에서 그 이상의 극적인 공포가 나올 수 있을까. 이렇게 <고양이>는 변 감독에게 시작부터 '고양이 공포영화'의 관습에 도전하는 영화가 됐다.

하지만 이 점에서 그는 오히려 전작과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연애가 달콤한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니듯, 고양이도 마냥 사랑스럽기만 한 애완동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호러영화로서의 <고양이>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공포스러운 존재와 사랑스러운 존재로서의 고양이의 이미지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애완 문화'라는 현상을 바라보는 변 감독의 시각의 창이 된다.

"보통 호러영화들의 존재들이 그냥 공포의 대상일 뿐이지만, 이 영화에서 고양이는 무서운 존재이자 불쌍한 존재다. 기본적으로는 다소 무섭게 다뤄지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사연들이 밝혀지면서 그 두 가지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이중적인 고양이의 이미지를 원동력으로 하여, 변 감독은 의문의 연쇄 사망 사고를 공포 드라마의 기본 전개로 삼는다. 너무나 전형적인 설정임에도 일단 피해자들의 비명과 그에 이어지는 고양이 눈(혹은 악령)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공포의 장치로서 충분한 효과를 발휘한다.

물론 고양이와 고양이의 혼이 씌인 것 같은 의문의 소녀의 반복 등장은 <주온>을 떠올리게 하고, 전체 이야기는 <링>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변 감독은 "정서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영화를 참고하기보다는 영화 전반에 흐르는 긴장감을 이야기와 어떻게 결합시키는가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한다.

이런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는 주인공의 폐소공포증도 한몫을 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무기력해지는 주인공의 트라우마는 비슷한 상황에 놓인 피해자들과 맞물리며 끝까지 주인공과 관객을 심리적인 불안으로 몰고 가는 장치가 된다.

하지만 제작진이나 배우들 모두에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역시 '고양이 배우'들의 통제에 관한 것이다. 잘 길들여지지 않는 고양이의 습성상 촬영장에서 고양이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변 감독도 "알다시피 고양이는 조련이 어려운 동물이어서 미리 공부하고 시작했어도 어려움이 많았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영화에서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비단이 역의 터키시 앙고라 고양이도 다섯 마리나 동원될 정도였다.

그래서 그 특유의 표정이나 몸짓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CG가 필수였다. "한 장면에서 호흡을 맞추는 게 어렵기 때문에 고양이를 따로 촬영해 배우나 배경과 합성했고, 그것도 어려울 땐 아예 컴퓨터에서 만들어서 나중에 화면에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처럼 공포의 대상으로서 다루어지는 고양이는, 애묘가들에게는 그 자체만으로 탐탁지 않은 시도일 수 있다. 언뜻 보면 <고양이> 역시 고양이를 불길한 존재로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의 생각을 강화할 수도 있는 영화처럼 보일 여지가 있다.

변 감독의 걱정도 같은 지점에 있었다. 그래서 영화에서 유독 강조되는 것은 '길냥이'들을 내쫓으려는 아파트 주민들의 이기적인 마음과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잔인하게 죽어가는 동물들의 모습이다.

변 감독은 "1년에 수만 마리의 동물들이 버림받고 있고, 이들은 길거리에서 살아가거나 유기동물 보호소로 보내진다. 법적으로 7일이 지나면 안락사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운명을 생각해보면 공포보다 더한 울림이 있을 것"이라고 영화의 숨은 의도를 설명한다.

다소 전형적인 제목을 통해 이면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솜씨는 이처럼 5년 전 데뷔작 때 보여줬던 그 수법과 비슷하다. 당시 영화에서 연애의 양면성을 파헤쳤던 것처럼, 변 감독은 이번 <고양이>를 통해서도 여전히 쉽게 키우고 쉽게 버리기도 하는 지금의 애완 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작이 색다른 연애영화였던 것처럼 이번 영화 역시 단순한 공포영화는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포 동물애호영화' 정도가 적당할 듯하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