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통영옻칠미술관장현대 옻칠의 산증인, 60년 되새기는 전시 열어'옻칠회화' 새 영역 구축, 현대화ㆍ국제화 앞장

'옻', '옻칠'은 요즘 현대인들에게 낯선 화석어처럼 들린다. 역사 이래 인류의 생활과 함께 해왔고, 우리와도 깊은 인연을 갖고 있는데 말이다.

한국에서 옻칠 역사는 선사 이래 나무나 토기로 만든 기물에 옻칠을 하거나 옻칠에 안료를 배합해 만든 채화칠기가 통일신라시대까지 계승발달했고, 이러한 칠기 미술은 고려시대에 정점을 이뤘다. 중국 사서에 기록될 만큼 뛰어난 고려의 나전칠기는 서양에까지 알려졌고, 조선의 나전칠기공예로 이어져 민중예술로 발달하였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칠기문화는 급속도로 쇠퇴했고, 6.25 전쟁에 이은 낙후된 경제 속에서 정체기를 맞았다. 현대에는 값싼 화학 칠인 캐슈(cashew)에 밀려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정작 우려되는 것은 '옻칠', '칠기'라는 우리 전통의 단절에 따른 고유하고 우수한 문화의 사라짐이다. 옻칠은 단순한 전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옻칠은 한국 문화의 보고이면서 오늘날 환경과 인간중심의 사회 패러다임과 가치관에도 부합하는 매우 실용적인 예술이자 생활이다.

이러한 가치를 지닌, 그러나 위기에 처한 전통 옻칠을 되살리는 데 일생을 바쳐온 이가 있다. 김성수(76) 통영옻칠미술관장이다. 김 관장은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12일까지 서울 인사동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에서 열리는 그의 옻칠 인생 60년을 되새기는 전시에 매일 나와 방문객을 맞고 있다.

옻칠회화 '동행', 2011
김 관장이 옻칠세계에 입문한 것은 1951년 경남 도립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1기생으로 들어가면서다. 그곳에서 김봉룡• 강창원•장윤성•유강렬 등 대가들로부터 전통 나전기법과 국내 최초의 서구식 디자인교육을 받았다.

김 관장은 1963년 국전 공모전에서 '문갑'을 제작, 공예부문 최고상인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한 데 이어 3년 연속 특선을 하면서 69년 홍익대 전임교수, 72년 숙명여대 교수로 안착해 후학을 양성하면서 '상감기법'을 창안하는 등 한국 옻칠의 현대화에 주력하였다.

1980~90년대에는 나전칠 회화작품으로 옻칠문화에 새로운 장을 열고, 대한산업미술가협회장(1982~1988)을 맡아 국제교류전을 추진한 것을 비롯해 전통나전칠기 작가와 옻칠관련 교수들로 '한국칠에가회'(1990년)를 조직해 초대 회장을 맡는 등 현대옻칠문화의 기반조성과 국제화에 앞장섰다.

김 관장은 1991~2000년 한국 옻칠문화의 저변확대와 세계화에 나서 '한-중칠예교류전'을 격년제로 열고 있으며, 96년 전통한국나전칠기의 복원과 한국칠예의 영역확장을 위해 400여 년의 전통을 이어온 통영에 사재와 연금으로 '통영옻칠미술관'을 건립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미국에서의 전시를 비롯해 '옻칠(Ottchil)'이라는 고유명사를 옻칠계에 통용시키는 등 한국 옻칠의 국제화에 힘쓰고, '옻칠회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구축, 확장하였다.

1994년 영국 대영박물관 소장 귀중품 함 '작은 숲'
이렇듯 한국 옻칠역사의 산증인인 김 관장은 전통 옻칠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미래에 대한 걱정도 숨기지 않았다.

"옻 이상의 재료는 지구상에 없다고 봅니다. 벌레도 끼지 않고 썩는 것도 방지해 주고 습도가 높으면 수분을 빨아들이고 낮으면 뿜어내요. 쇠 장식에 칠하면 녹이 안 슬고 가죽에 칠하면 부드러운 결을 유지시켜 줍니다. 미학적 특성으로 세상에 없는 '광채', 금속•사기•목재•섬유 할 것 없이 다 붙일 수 있는 '장식성'(점력), 공예적 '조각미'가 뛰어납니다."

이렇게 예술적, 실용적으로도 훌륭한 옻칠이 현대에 외면받는 이유는 뭘까?

"옻칠의 좋은 물성을 너무 많이 잊었습니다. 일제와 전쟁을 거치며 호된 가난 속에서도 다들 집에 옻칠한 상 하나 정도씩은 갖고 있었는데 화학 칠이 싸고 번쩍번쩍하니까 좋은 줄 알고 다 돌아선 것이죠. 화학 칠은 냄새가 많이 나는데 이게 옻칠 냄새인 줄 아는 분이 많아요."

김 관장에 따르면 서양에선 옻칠을 래커(lacquer) 칠로 오해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옻칠과 화학 칠인 캐슈를 구별하는 사람들이 드물다고 한다.

'체스트', 2007
옻칠이 배우기가 힘들고, 생업이 어려워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려는 사람도 줄어들어 학과가 페지되는 것과 같은 현실적인 사정도 옻칠이 외면받는 이유라고 김 관장은 설명한다.

그럼에도 김 관장은 옻칠이야말로 글로벌시대에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만한 문화예술이라고 강조한다.

"중국에 조칠(彫漆)이 있고, 일본에 마키에가 있다면, 한국은 나전칠이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자기 것을 세계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나전칠은 더한 장점을 갖고 있어 계승발전시키면 미래가 밝다고 봅니다."

한국 현대옻칠의 역사, 전도사인 김성수 관장에게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크게 세 가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우선 옻칠 회화의 뛰어난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둘째는 전통 옻칠을 계승할 수 있는 명장을 양성하는 겁니다. 셋째로 옻칠을 대중화하는 것에 주력할 겁니다."

김 관장은 "이 세 부분을 중심으로 옻칠이 한국의 대표문화가 됐으면 한다"면서 "이번 전시의 제목을 '다시 찾은 한국 옻칠'이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