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작가상' 소설가 전석순, '88만 원 세대' 곤궁한 현실 독특한 형식에 담아

사진 / 민음사 제공
출판사 민음사의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철수 사용설명서>의 재미는 이런 부분에 있다. 작가는 대한민국 20대의 보통명사 철수를 '제품 설명서'양식으로 소개한다.

도입부터 제시된 철수의 제품 규격과 사양 설명부터 말미에 첨부된 제품 보증서까지 설치방법, 전원공급, 청소방법, 주의사항, 알아두기, 제품 Q&A 등 설명서의 양식을 차용해 오늘의 20대를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88만원 세대'의 곤궁한 현실을 독특한 형식에 담은 '루저 문학'인 셈.

얼핏 소설 속 철수는 작가의 아바타처럼 보이기도 했다. 헐렁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그는 앳된 목소리로 기자의 질문에 열심히 대답했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소설가를 꿈꿨고, 대학도 문예창작과가 아니면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단다.

하지만 자신이 자란 강원도에는 문예창작과가 개설된 대학이 없었고 한때 대학을 포기할까 생각하다가 부모님이 '인(in) 서울' 대학에 붙는다면 유학시켜준다는 말을 듣고 대학갈 마음을 다시 먹었고, 명지대에 입학했단다.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지만 청탁받은 문예지는 전무했고 졸업 후 꼬박 2년 동안 춘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이 소설을 썼단다. 그러니 '29살의 취업 준비생 철수'는 수상 직전 작가의 모습과 일면 닮아 있다.

"대학졸업하고 부모님 도움 없이 소설을 쓰기로 했거든요. 30살까지만. 주말에 아르바이트하면서 소설 썼는데, 29살에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게 됐죠."

그렇다면 소설 속 철수는? 뭐하나 내세울만한 건 없지만 그래도 평균쯤은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29살 청년. 하지만 가족, 친구, 애인 등 주변인들에게 고장이나 불량이란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왔다. 어느 날 철수는 사람들이 멀쩡한 가전제품을 불량품 취급하는 걸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정말 고장이었던 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나를 잘못 사용해왔던 걸까?' 가전제품의 하자가 기실 사용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은 부주의 때문에 발생했던 것처럼, 철수는 자신의 문제도 주변인들이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고로 철수는 '철수 사용 설명서'를 쓴다.

"어느 날 전기면도기가 망가져서 짜증을 냈는데, 사용설명서를 찾아보니까 제가 면도기 충전을 안 해둬서 그런 거더라고요. 짜증은 전기면도기가 아니라 저한테 내야 했던거죠. 이런 오해가 사람과 물건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있을 수 있는 것 같았어요."

때문에 소설은 기승전결의 갈등이나 특별한 에피소드 없이 '철수가 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가'를 부모, 친구, 애인, 친인척 등 '사용자'들에게 열심히 설명한다.

규격화된 성능과 양식을 요구하는 사회, 29살의 구직자를 '구형 전자제품'으로 취급하는 사회, 이들에게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청탁이나 출판사 계약과 상관없이 한 달에 단편 한 편, 일 년에 장편 한 편을 쓸 만큼 성실하게 써온 이 작가는 첫 장편 인터뷰 일정이 끝날 때쯤이면 계획했던 단편을 마무리 하고 싶단다.

"장편은 재밌고 유쾌하고 잘 읽히는 작품, 단편은 문학적 밀도가 높은 작품을 쓰고 싶어요. 장르와 순수문학 구분 두지 않고 모두 쓰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