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니에 여름축제' 김갑수 총감독

심드렁한 표정, 그러나 매서운 눈빛, 시선의 끝을 알 수 없는 흐릿한 초점. 심중을 쉽게 읽을 수 없는 연 김갑수의 복잡미묘한 표정들이다.

심사위원(오디션 프로그램 <기적의 오디션>) 자리에 앉아 있을 때도 그의 이런 모호한 매력은 여지없이 돌출된다. "연기 잘 봤습니다"라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지원자를 안심시키다가도 잠시 후 "당신의 꿈을, 캐스팅하지 않겠습니다"라면서 뒷통수를 치는 그의 표정은 일면 사악해 보이기까지 한다.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인물에서 우스꽝스러운 캐릭터까지, 배역과 관계없이 항상 존재감을 과시하는 그의 저력은 연극 무대에서 비롯됐다. 1977년 극단 현대극장 1기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김갑수는 지금도 대학로에서 소극장과 극단 배우세상을 운영하는 연극인이다. 말하자면 대학로는 그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 아니라, 실제로 몸을 담고 있는 '현주소'인 셈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본격적으로 '대학로인'으로서의 선언을 하고 나섰다. 대학로를 상징하는 곳,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마로니에 여름축제'의 총감독을 맡아 대학로 활성화의 선봉에 선 것이다.

그는 "100개가 넘는 소극장들이 있는 대학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문화의 명소이지만, 현실은 저질 공연들과 지나친 상업화의 흔적만 남아 있는 곳이 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며 "이번 축제를 통해 젊은 관객들을 대학로로 끌어들여 다시 한번 이곳을 젊음의 거리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대학로에는 이미 연극과 무용을 중심으로 한 문화축제들이 저마다의 존재 가치를 뽐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하나의 축제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만의 독특한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 김갑수 총감독이 생각하는 마로니에 여름축제의 성격은 뭘까.

"축제라는 게 일회성으로 끝나거나 보여주기 위한 이벤트에 그쳐서는 소용이 없다. '마로니에'라는 젊음과 자유로움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최첨단의 공연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존의 대학로에 대한 '올드'한 생각은 다 버리고 무조건 재미있는 축제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일을 진행했다."

이런 김 총감독의 생각은 이번 축제의 프로그램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타 장르와 융합된 연극과 무용 공연을 비롯해 힙합 댄스 배틀, 블록 파티, 재즈 콘서트, 인디밴드 공연, 심지어 플라멩코와 국악뮤지컬 공연까지 예정돼 있다.

물론 이런 행보는 많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연극의 메카로서 기능해온 대학로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도전처럼 보일 수 있다. 특히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힙합 공연이나 인디뮤직, 재즈 공연들은 언뜻 홍대 거리와의 차별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갑수 총감독은 "그럴 수 있다"고 수긍하면서도 "대학로가 원래 연극만 있던 거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문화 활동을 위해서는 '대학로 가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예전의 대학로는 다양한 문화예술이 있었던 '원조 젊음의 거리'였다"라고 부연한다.

"예전에 마로니에 공원에서 춤을 추던 청소년들은 지금은 국제 무대에서 명성을 높이는 세계적인 비보이가 됐다. 폭주족들은 레이서가 됐다. 나도 배고픈 연극배우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꿈을 꾸는 젊은이들에게 대학로는 중요한 곳이었다." 김 총감독은 그래서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을 통해 젊은이들의 열정과 자유로움이 숨 쉬는 대학로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야외공연의 특성상 무료로 진행될 공연을 두고 실무진과 오랫동안 갈등을 빚은 것도 젊은 아티스트들의 열정과 노고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다. 그는 "나는 '무료'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저가나 공짜 공연들은 작품 수준이나 나아가 대학로 문화 활성화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 밤 8시부터 10시까지는 야외공연은 안 하기로 한 것도 동시간 때 주로 공연하는 대학로 소극장들의 열악한 방음 여건을 배려한 프로그램이다.

축제 사무국에서는 원래 홍보대사를 제안했지만 본인이 총감독을 자청해 공연작의 비디오 심사와 개폐막식 사회자(김제동) 섭외, 협찬까지 발벗고 나선 김갑수 총감독은 "첫 축제이기 때문에 시행착오는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거 다 하자는 생각으로 했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는 "지금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그 흔한 기타 치는 사람도 보기 어려워졌는데, 이번 축제가 그런 대학로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홍대, 신촌, 명동, 이태원, 가로수길 등 다른 '젊음의 거리'에 젊은이들을 빼앗기고 침체된 대학로가 이번 축제를 통해 다시 예전의 매력적인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김갑수 총감독이 승부수를 던진 가운데 그 변화의 움직임이 8월 첫날부터 2주간 마로니에 공원 일원에서 시작될 예정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